‘남이 씌워줄 땐 늦습니다’라는 직설 어법의 공익 광고 포스터가 서울 도서관 외벽에 설치되었습니다. 이 공익 광고는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지속되고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1차 방역 장비인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기 위한 캠페인입니다. 2단계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고 계시지요? 여전히 확진자 관련 문자가 폰을 계속 울리는 요즘 가을을 만끽하던 예전의 모습이 마냥 그리울 뿐입니다. 야외에서도 조심해야 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는 곳곳의 불안 가득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턱에 마스크를 걸치고 러닝을 하시는 분들 자전거를 타며 마스크 미착용 상태로 노래를 크게 부르시는 분들,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나와서는 시원하게 마스크를 벗어던지는 학생들이 종종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우리끼리는 괜찮다는 의식으로 혹은 너무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잠시 내리셨겠지요. 서울시도 이러한 잠깐의 방심이 야기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은 공격적인 문구로 포스터를 제작한 듯합니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은 집합 금지로 막고, 동네 쉼터 및 정자 등은 주변에 테이핑 해서 모임을 방지했습니다. 그럼에도 집 앞 놀이터를 사랑방 삼아 모이시는 어르신들은 언덕 중턱이나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로 삼삼오오 모이셔서 일상의 갑갑함을 수다로 풀고 계셨습니다. 금지된 한강을 벗어나 도심 속 하천을 중심으로 조성된 산책로 곳곳에서 젊은이들은 맥주캔을 뜯었습니다. 또한 신앙을 가지신 분들은 자신의 믿음에 따라 혹은 그분들의 지도자의 주장에 따라 억척스럽게 곳곳에서 모이기도 하더군요. 본인 의지와 달리 방역지침을 어기고 감염된 분들은 역학조사를 방해하는 거짓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서울시는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넋 나간 가족’이라는 홍보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심하게 앓고 있는 가운데 자연재난과 사람을 향한 다른 사람들의 폭행이 자행되는 또 다른 안타까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와 인간과의 사투를 넘어 산불과 홍수와 같은 재해와 그릇된 우월성에 기인한 인종차별을 바탕으로 각종 폭력사태도 곳곳에서 빈번하고 잔인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비난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지요. 뉴스를 볼 때마다 참으로 암담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픈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지금 현실이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옥’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입니다. 그의 <신곡>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용과 모방을 낳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단테도 당대 가장 무서운 감염병인 흑사병에 걸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묘사한 지옥의 모습으로 인해 중세 가톨릭 신자의 수가 증가했다고도 하네요.
영화 <신과 함께>는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나 <신곡> 혹은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연상시킵니다. 어쩌면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악귀들의 판이 작금의 여러 사태들과 이렇게도 닮아 있을까요?
구스타브 도레는 단테의 지옥편을 매우 상세하게 판화 삽화집을 제작했었습니다. 이외에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로 유명한 보티첼리 역시 지옥도를 남겼습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 여행을 바탕으로 글에 충실하여 지옥을 묘사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지옥은 링의 형태로 땅으로부터 지구의 중심을 향해 파인 동굴 모양입니다. 각각의 링은 단테가 설명한 지옥의 단계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링까지는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지 못한 인간들이 가는 지옥입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종교적 이단이나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 여덟 번째 아홉 번째는 사기나 배신한 사람들이 가는 지옥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옥에는 마녀, 연금술사도 있지만 부패한 정치인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대에도 정치인들이 모두 청렴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또한 부패한 정치인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이었나 봅니다.
지옥의 세부사항을 너무나 정교하고, 잔인하게 묘사한 덕분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자 종교로 달려갔던 것 같습니다. 감염병은 과학을 바탕으로 예방하고 치료해야 하는 것임에도 당시의 사람들은 지금과 달리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고자 서로를 독려했던 것 같습니다. 이 역시 근자의 뉴스에서 본 내용과 같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당시엔 종교적 모임을 지속해서 감염의 원인을 차단하지 못해 마을 주민이 모두 사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익숙하고 귀여운 이 노래도 중세시대 흑사병에 걸리면 생기는 흑점을 장비 빛으로 묘사하고 결국은 모두 쓰러져 죽는다는 내용을 담은 무서운 노래입니다. 발랄하고 귀여운 노래 뒤 가려진 아픈 역사는 지금도 되풀이되는 듯하네요.
온라인에서 넘치는 많은 시각적 자료와 자극적인 콘텐츠들로 인해 보티첼리나 도레가 묘사한 지옥도나 위협적인 문구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막 지옥의 문이 열렸을 뿐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나의 부주의로 혹은 지금의 답답함을 참지 못해 자신과 가족, 나아가 이름 모를 누군가를 감염시킨다면 그 이후의 사황은 아마도 지옥의 심연에 자리 잡고 우리를 기다리는 루시퍼와의 만남이 될 테니까요.
아이들이 이 무서운 사태를 마냥 해맑은 모습으로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중세와 같이 종교의 힘으로 이겨내겠다는 비과학적 사고로 인한 집단감염 사태는 2020년에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신앙과 믿음의 힘은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비대면의 상황에서도 그 강인함으로 얼마든지 힘을 발휘하여 서로를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배려하려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스스로를 먼저 지키려 노력한다면 또 자신에게 부끄러운 거짓을 삼간다면 이 사태도 곧 막을 내리겠지요.
부디 코로나도 인해 아픔을 겪고 계시는 모든 분들의 쾌유를 바라며, 홍수와 산불, 피부 색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계시는 모든 사람들이 안녕과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