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머니상으로 회자되는 배우 김혜자, 그분의 광고 등장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Mom’s Touch의 새로운 광고는 내레이션부터 남다릅니다.
‘우리 아들’의 속을 든든하게 해 줄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는 버거는 한 입의 포만감을 선사하기도 전에 눈으로 배를 부르게 합니다. 간식 정도로 치부되었던 버거가 식사로 인정받은지도 오래되었지요.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지만 수많은 프랜차이즈 광고로 매일 접하는 메뉴가 되었네요.
2008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개최된 개인전 <선전공화국> 전시장에서의 김기라 작가와 그의 정물화
음식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는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버거’를 소재로 유명세를 떨친 작가들도 있지요.
김기라 작가는 마이너리티의 감성으로 동시대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현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21세기형 바니타스(vinitas)인 일명 패스트푸드 정물화를 제작했습니다. 덧없음과 허무함,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담은 이 정물화는 17세기에 주로 성행했습니다. 김기라는 패스트푸드와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진 것들을 의도적으로 화면에 배치하여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작가는 우리가 소비하는 그 대상 자체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광고 이미지나 이 사회가 만들어낸 ‘소비가치’로써 대상이 존재하고 소비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조금은 유머감각을 가미해서 작품에 담았습니다. 나아가 그는 만들어진 ‘소비가치’의 이면에는 대기업들의 자본권력이 지배하며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그들의 로고를 통해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허상을 쫒는다면 그 결과는 영화 <슈퍼 사이즈 미>가 이미 알려주었지요?
런던 사치갤러리의 <코리안아이 2020: 창조성과 백일몽> 전시에 출품된 김은하의 작품
김은하 작가는 햄버거를 소재로 또 다른 시각에서 사회를 조망했습니다. 그는 버려진 옷을 활용하여 거대한 햄버거를 제작했습니다.
PCA(Parallel Contemporary Gallery)의 설립자는 러시아의 예르미타시 미술관에서의 전시 중 김은하의 작품이 대표적이라며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천으로 제작한 매우 익숙한 오브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김은하의 작품은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대상을 작품으로 제작하되, 매우 큰 사이즈로 변형시켜 익숙한 것들을 매우 낯설게 만드는 재주가 남다른 작가가 바로 올덴버그입니다. 청계천 광장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지요.
클래스 올덴버그, <Floor Burger>, 1962.
작가에 의해 대상이 지닌 본래의 성질이 변형된 오브제들은 일상에서 주요하게 치부되지 않던 것들이었습니다. 올덴버그는 버려지거나 무가치한 것들을 작품으로 제시하면서 대량소비문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대 미국의 팝아트는 산업사회, 물질사회, 소비문화 등을 꼬집으면서 동시에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위계구조까지 비판적으로 시각화했습니다. 김은하의 햄버거는 버려진 천들을 소재로 거대 햄버거를 제작했다는 점에서 올덴버그와의 연계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동시대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지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요.
<이미지_로지컬>이라는 제목의 5개 퍼포먼스 중 하나인 <건빵 먹기>
‘그림의 떡’으로 제시된 작가들의 햄버거는 말 그대로 작품이기에 한 입도 먹을 수 없지요. 이와는 반대로 음식을 그대로 먹음으로써 작품이 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즉, 위의 두 사례가 먹을 것을 먹지 못 하는 것으로 제시하면서 소비사회의 이면과 허상을 쫒는 소비자에게 일침을 가했다면, 먹는 행위를 통해 또 다른 것들을 고발하는 작가가 다음의 사례가 되겠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미술계의 거장 이건용 작가입니다. 1975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에서 건빵을 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신체의 조건과 일상의 행위, 이 둘의 관계를 조명했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매우 단순해 보입니다. 작가는 건빵을 먹으면 되는 것이었고요. 보조자는 작가의 신체를 손과 손목부터 가슴에 이르기까지 한 부위씩 각목을 대어 붕대로 감으면 되었습니다. 매우 단순한 일상의 ‘먹는 행위’가 신체의 제약이 따르자 불가능한 것으로 좁혀지게 되었습니다. 이건용은 당시 아방가르드 미술그룹인 ST(Space and Time)의 일원으로 한국의 권위주의가 당시 미술에 가하는 제약과 미술그룹의 도전을 건빵을 먹는 퍼포먼스를 통해 제시한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먹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과감히 먹고 “대단히 맛이 있었다.”로 일축한 해외 사례도 있었지요. (아래 글을 참조해 주세요.) 김혜자 선생님이 우리 아들은 아무거나 안 먹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아무거나’는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가격의 작품이었으니 말입니다.
음식, 일상, 먹는 행위는 자본화된 사회에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며 세부적 사항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과 상업 광고 모두에서 늘 소재로 활용되고 있겠지요. 인간의 일상은 개인적인 차원을 벗어나 모이고, 뭉치면 사회적, 문화적 합의로 향하게 됩니다. 때문에 광고와 미술은 그 지점을 늘 지적하려 하고요. 스치듯 또 유머스럽게 제시하는 그들의 언어를 우리는 한번 더 뒤집어서 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야 개인이 아닌 요즘 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사회적 부조리, 대기업의 술수 등을 꿰어볼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