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버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자기를 낳아 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나온다.
간단히 말하면 아이를 낳은 남자다. 그렇기에 사전적인 의미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엄마가 아이를 낳아주는 순간 남자는 자동적으로 아버지가 된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길고 힘든 과정을 거치는 엄마에 비하면 관습적인 노력과 제대로 된 인지가 없다면 그냥 꽁으로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엄마는 아이를 낳는 순간 이미 "진짜" 엄마가 되지만 아빠가 "진짜" 아빠가 되는 건 조금 다르다.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거창하게 들리지만 대부분 자연스럽게 아빠가 된다. 뱃속의 아이를 기다리며 앞으로 어떤 아빠가 될 거야 라거나, 태어나면 무엇 무엇을 해줘야지 하는 다짐들 모두 이런 과정에 있다. 그걸 지켜나가는 건 또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또한 아내의 임신 기간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 아이가 태어난 후에 확 바뀌는 아빠들도 있다. 그렇게 대부분의 아빠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나 역시도 첫째가 아내 몸 안에 찾아오고 점점 커가는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수없이 많은 다짐을 했다. 그리고 여러 공약(公約)들을 내던졌다. 연애할 때는 몸만 오면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던가, 임신 기간에는 나오기만 하면 내가 다 키울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낳기만 해라는 공약(空約) 같은 것들 말이다.(예비 아빠 애송이들. 할 수 있든 없든 이런 말은 임신 기간 내내 주야장천 던지도록). 기분 좋으라고 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일지라도 초음파 사진 속의 곰젤리 같은 아기를 처음 보던 날,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아내를 배를 통해 아이의 꿈틀거림을 느끼는 순간에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내가 아내에게 절대 못 하겠다고 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똥기저귀를 가는 일이었다.
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외모와 성격이 참 다르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난 키는 작지만 좀 땅땅한 이미지에 눈꼬리가 매섭게 올라가서인지 운동선수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러면서 같이 따라오는 이야기가 술 담배도 잘하고 털털할 것 같다는 말이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운동선수 같다는 말은 운동을 잘할 것 같다는 뜻보다는 산적 같은 이미지를 에둘러 좋게 포장해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난 술 담배도 안 하고 예민하다. 미니멀 라이프 편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우선 물건들 줄 세우기나 물건의 수량을 유지한다거나(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밤을 꼬박 새도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잠을 못 잔다거나, 다른 사람이 숟가락 댄 음식은 잘 못 먹는다거나(특히 국물요리) 비슷한 맥락으로 다른 사람이 입 댄 음료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도 손을 대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겠지만 내 외모를 만나면 조금 어색하고 신기한 일인가 보다.
이런 것 중에 하나가 똥과 관련된 것인데, 난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화장실을 편하게 못 쓴다. 아주 가까운 사람과도 마찬가지여서 함께 한지 햇수로 5년이나 된 아내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여행을 가게 되면 숙소도 화장실이 2개가 있는 곳을 예약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호텔 로비 등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한다. 아주 번거롭고 바꿔볼 법도 하지만 여전히 똥에 관련되서는 뭔가 예민하다. 이런 내 성격을 잘 아는 아내도 다른 건 내가 다 할 테니 똥기저귀는 좀 갈아달라고 부탁하는 날 보며 크게 웃으며 알아다고는 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다.
그리고 정확하게 아이가 산후 조리원으로 옮긴 다음 날,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나고 딱 3일이 지난날 궁주의 똥기저귀를 갈았다. 맨손으로 황금 변이 잔뜩 묻은 궁둥이를 휘저으며... 아이가 시큼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힘 없이 우는데 옆에는 아직 부기도 채 빠지지 않아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아내가 있었다. 조리원 이모님들 부르면 됐지만 왠지 이건 내가 해야 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손이 나갔다. 지금은 덜 그렇지만 신생아의 울음소리는 부모를 굉장히 불안하게 만든다. 똥이 더럽고 자시고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아기 울음부터 그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왼팔 전완근 위에 아이를 얹고 왼손으로 엉덩이를 감싸면서 왼쪽 허벅지를 살짝 잡았다. 너무나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아이의 다리를 혹시라도 너무 세게 잡아 부러지진 않을지, 혹시라도 너무 살살 잡아서 아이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온 몸이 긴장됐다. 아기를 지탱하는 승모근과 어깨, 팔에는 있는 대로 힘을 주고 다리를 손에는 최대한 힘을 빼고는 조심스레 오른손으로 아이의 엉덩이에 묻은 것들을 물로 닦아냈다. 똥 가제 수건이라고 표시해놓은 가제수건으로 엉덩이에 물기를 닦아 내고 조심스레 기저귀 갈이대에 아이를 눕혔다. 엉덩이 밑으로 기저귀를 넣어야 되는데 도대체 엉덩이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 보면 아이들 발목을 잡고 다리를 번쩍 치켜들곤 하던데... 혹시라 관절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 다른 사람 몰래 방석 밑으로 쌈짓돈 찔러주듯 슬그머니 엉덩이 밑으로 기저귀를 밀어 넣고는 더듬더듬 찍찍이를 붙여 마무리를 했다.
옆에서 아내는 "왜~ 똥기저귀는 못 갈겠다며~"라고 말하며 미소와 함께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때 내가 진짜 아빠가 됐다고 느꼈다.
아이를 만나기 전에는 정말 죽어도 못할 것 같은 일이었는데 새빨간 얼굴로 우는 아이를 보니 그런 내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빠들 몸이 먼저 움직인다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겨우 똥기저귀 하나 갈아놓고 너무 앞서 나가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진짜 똥은 못 만질 것 같았다니까...
첫째를 낳고 한동안 고생했던 아내의 팔목 상태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후 똥기저귀는 내가 담당이 됐다. 그리고 한동안 딸아이가 변비로 고생을 하면서 똥 싸는 걸 무서워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조금 편하게 볼 일을 보도록 그 이후로 지금은 똥을 쌌다고 하면 우리는 온 가족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정말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매번 빠짐없이 그런다. 사실이다. ("똥 쌌어요~ 똥 샀어요~ 궁주는 똥 쌌어요~ 똥~쌌~어~요~ 궁주는 말랑말랑한 똥을 쌌어요!!!"라는 가사의 노래인데 맨날 부르다 보니 마지막에는 약간의 화음도 들어간다.) 내가 똥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숟가락 닿은 음식도 꺼려하던 내가 지금은 장난으로 아이 입에 있는 음식을 꺼내서 먹기도 한다. 먹다 남은 거 먹는 건 일상이 돼버렸다.(아.. 이래서 살이 안 빠져...)
절대 못할 것 같았던 많은 일들이 아이를 만남으로 인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변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것들이 편해진 건 아니다. 난 여전히 똥이 더럽고 비위도 약하고 누가 근처에 있으면 화장실 사용을 못 한다. 다만 아빠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싫든 좋든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 나갈 뿐이다. 뭐 딸내미 똥이라고 생각하면 엄청 더럽지 않긴 하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사람들이 자주 쓰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라는 말이 있다. 가끔 아이와 장난을 치다 눈이 찔리고 하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말은 과장이 너무 심한 것 같다. 하지만 눈 하나 빼줘야 할 상황이 된다면 아무리 아파도 어금니 꽉 깨물고 일말의 고민 없이 빼줄 수 있는 게 아빠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