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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Oct 19. 2021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엄마와 딸의 우선순위에 관한 아빠의 개똥철학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문제가 있다. 어렸을 때는 당연히 닭이 있어야 그 닭이 달걀을 낳으니까 먼저인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어디선가 진화론 상 언제부터가 닭인지를 명확하게 답변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것이 먼저인지 정할 수가 없다는 글을 보고는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뭐 이런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주장 이외에도 여러 철학적인 의견들도 많이 있는데  워낙 복잡한 이야기라 내가 간단하게 언급하기에는 부족하니 그냥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주장을 꼽으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가 중요하지 않으니 연구하지 말자"라고 말하는 실용주의 정도다.


닭도 맛있고 달걀도 맛있게 잘 먹고 있으니 뭐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걸 육아에 대입시키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엄마를 닭, 아이를 달걀에 비추어봤을 때 둘 중에 뭐가 먼저일까.


개똥철학이지만 나 나름대로 과학적 철학적 분석을 보면 내 경험상 당연히 닭이다. 엄마가 먼저다.


우선 과학적으로 분석을 해보자. 기존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은 개체가 아닌 하나의 종 전체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갔다. 하지만 하나의 개체인 내 아내와 딸아이를 놓고 보자면 당연히 엄마가 먼저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걸 내가 봤는걸... 이건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때도 분명 엄마와의 트러블로 우는건데 이럴 때도 엄마 품이 좋단다. 아이들은 이렇다.


아빠 입장에서 철학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복잡해진다.(개똥철학이라도 나름의 논리는 필요하니까.)

아내와 딸의 대립으로 굉장히 불편한 집안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자. 대부분의 가족 내 불화가 그렇듯 별다른 이유는 없다. 최근에 종종 있는 일이다. 아이의 허락을 안 받고 장난감을 정리해서 아이는 화가 났고 엄마 역시 화난 아이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불쾌한 상황이다. 아이는 자기 물건인데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손을 댔다는, 그리고 정리의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거기에 반해 엄마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었다면 알아서 정리를 잘하거나 가족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있었여야 함을 들어 논리를 펼친다. 둘의 논리는 막상막하다. 가족에게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려는 엄마의 주장이 일견 훨씬 타당해 보이지만 아이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나름 최선을 다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주체성이 커지고 있다는 걸 생각했을 때 딸의 의견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럴 때 가운데 끼어있는 아빠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 것인가.


아마 이런 상황이 극으로 치달으면 보통 아이가 울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아빠는 엄마를 놔두고 아이를 들쳐 안기 마련이다. 좋은 선택이다. 아이와 아내 모두 잠시 휴전을 하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니까. 잠시 후 아이 마음속의 불 같은 기분이 조금 사그라들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에게 가서 화해와 위로를 받으려 할 것이다. 사실 이건 평소에 아빠가 아이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아빠가 주 양육자가 아니라면 거의 십중팔구 그렇다. 아이는 몸이든 마음이든 불편할수록 좀 더 편하고 오랜 시간을 보낸 상대를 찾는다. 이건 아이가 아닌 어른도 그렇다.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아이가 적당히 불편하거나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있다. 아빠가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던 9개월을 지워버릴 만큼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굳이 그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빠가 보조 양육자인 가정의 화목은 엄마에게 달려있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의 정서발달 역시도 엄마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달걀이 깨질까 조심스레 보살피는 동안에도 닭이 먼저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닭이 없으면 달걀은 부화할 수 없다.


아빠 육아라고 하면 아빠가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대부분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신이 아이에게 100의 에너지를 쏟는 게 엄마가 아이에게 50의 에너지를 쏟는 것만도 못할 때가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쉽고 효율적인 육아는 아이에게 쏟는 관심과 아내에게 쏟는 관심의 비율이 적절할 때 가능하다.


어렸을 땐 꽃다발 들고 다니면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그런 남자 보면 멋있어 보인다.


이쯤 해서 내가 생각하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좋은 아빠 육아 방법을 하나를 이야기 보겠다.


평소 평일에는 일에 치여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빠가 있는데 오늘 때마침 아이가 자기 전까지 1시간 정도 함께 보낼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지갑을 보니 3만 원 정도의 여유돈이 있다. 이걸 어떻게 쓰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


퇴근길에 30분 정도를 투자해 근처 꽃집에 가서 2만 원 정도 하는 꽃다발을 하나 산다. 그리고 그 옆 서점에 가서 6000원짜리 스티커 북을 사고, 나머지 4000원으로 맥주 2캔을 사자. 그리고 집에 가서 꽃다발을 아내에게 전해주고 스티커북으로 아이와 30분 정도를 신나게 놀아주자. 실제로 스티커북 하나면 몇 시간은 놀 수 있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기분 좋은 선에서 마무리를 한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사온 맥주로 아내에게 하루 종일 힘든 일은 없었는지 물어본다. 만약 아빠가 주어진 시간과 돈을 아이에게 올인했다면 그날 하루가 화목했겠지만 이 방법이면 그 꽃이 저물 때까지 은은하게 화목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아내가 꽃다발을 보고 돈 아깝다고 그런다고? 꽁꽁 얼은 얼음이 녹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몇 번 더 해줘 보고 다시 이야기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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