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되면 4~5살 아이들 집에서는 슬슬 유치원 공부가 시작된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아이들 수에 비해 유치원 수가 워낙 적은 편이라 꽤 많은 공부가 필요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엄마들 사이의 교류가 조금 더 활발해진 느낌이다.(난 낄 자리가 아닌지라...)
아내도 자료들도 수집하고 유치원 몇 곳의 설명회를 다니고 있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비슷한 상황의 엄마들을 만나게 되서인지 처음 본 사이에도 이야기를 쉽게 나누게 되나 보다. 하루는 어린이집 설명회를 다녀온 아내가 웃으며 한 마디를 건넸다.
"나보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냬~ 어디서 그런 남편 만났냐고."
상황을 들어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얼마 전에 둘째를 출산한 이야기를 했나 보다. 그러다 자연스레 산후조리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내는 내가 둘째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걸 다해서 특별히 힘들지 않게 산후조리가 끝났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거기에 벌서 3년 째 반 육아휴직 같은 생활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이야기를 곁들였겠지. 그랬더니 그런 남편이 어딨냐고 부럽다는 이야기를 그 어머니가 하셨단다. 아마 약간의 과장도 섞어서 말했겠지. 낯간지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어쨌든 듣기는 좋다. 좋은 남편이자 아빠로 칭찬받았다는 것보다 내가 아내에게 자랑거리가 됐다는 사실이 좋다.
첫째를 낳고 아내의 조리원 동기들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몇 번 듣긴 했었다. 그 이후에도 종종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슷한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둘째를 낳고 난 이후에 유독 자주 듣긴 한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예전에는"우리 애 아빠는 애를 같이 잘 봐줘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둘째 덕분에 "애 아빠가 애를 거의 혼자 다 봐요"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두 문장이 주는 어감 차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도와줘요'는 아빠와 아내의 육아 비율이 1:9 든 5:5든 다 뭉뚱그려 말할 수 있지만 "혼자 봐요"는 아무리 생각해도 최소한 8:2 이상은 책임지는 느낌이라 그런 게 아닐까.
간혹 아내를 거쳐서가 아니라 직접 그런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그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기가 조금 곤란하다. "네 제가 좀 잘하죠!"라고 말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렇게 잘한다고 생각도 하지 않을뿐더러 간혹 '내가 이건 좀 잘하고 있는 건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도 한국인 정서상 겸양을 떨어야 좋은 이미지가 유지되는 거니깐. 그렇다고 별거 아니라는 듯 "특별할게 뭐 있나요. 아빠들은 다 이 정도 하잖아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좋지 않다. 누구나 다 하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너무 많은 아빠들을 적으로 만드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아마 ##네 아빠도 저와 비슷한 상황과 여건이면 아마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실 거예요." 정도의 반응으로 유야무야 넘어간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은 아내가 다른 엄마들에게 하는 자랑에는 SNS의 폐해와 같은 약간의 오류가 있다. 현실 중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들어낸 프레임만 남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이 말이다. 내가 아이를 다 본다는 것부터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내가 둘째를 하루 일과 중 2/3 정도는 끼고 있는 건 사실이고 첫째와도 자주 놀지만 그건 아내가 그 시간만큼 다른 한 명의 아이를 돌봐주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거기다 시간을 많이 뺏기지는 않지만 경제활동도 한다. 그렇기에 큰 틀로 두고 봤을 때 아무리 좋게 쳐줘도 아내와 내가 육아에 쓰는 시간은 1:1 비율을 넘어갈 수 없다. 내가 아이를 다 본다는 건 "둘째"만 놓고 봤을 때는 얼추 그럴싸하지만 크게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육아가 편하다는 건 굉장히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거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육아도 그렇다. 옆 집에서 독박으로 아이 둘을 일주일 내내 보는 집과 우리 집을 비교했을 때 얼핏 보면 내 아내가 훨씬 편할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 느끼는 피로도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맨날 9시까지 야근하던 사람이 7시에 퇴근하는 것과 늘 6시에 퇴근하던 사람이 7시까지 1시간 야근했을 때 같은 7시 퇴근이지만 느끼는 피로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종종 조금 길게 운동을 나가기 위해 허락을 받을 때의 아내의 표정을 보면 아무래도 내 말이 맞는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아빠가 꼭 좋은 아빠이자 좋은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통 아이와 잘 있는 아빠 = 다정한 남편이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듯한데 이건 사실 별개의 문제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는 데드 샷이라는 살인청부업자 캐릭터가 나온다. 직업 상 쉽게 사람도 죽이고 아내와도 이혼했지만 딸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다정해지는 사람으로 극 중에서도 결국 딸의 눈물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천상 딸바보로 나온다. 내가 뭐 극악무도한 일을 하거나 아내와 이혼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세상 속에서의 나와 아이들 앞에서의 나는 큰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나는 직설적이고 시니컬하고 딱딱하다.(어제도 이것 때문에 아내에게 혼났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의 나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말랑말랑하다. 예전에 일 때문에 우리 집에 놀러 온 회사 직원이 놀러 온 적이 있다. 아이와 다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아이와 노는 걸 보더니 놀래서 동영상을 찍어 직원들끼리 돌려본 적이 있다. 신기했겠지...
이렇듯 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않고 아내에게 헌신적이지도 않다. 그렇기에 아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라는 말은 확실히 무리가 있다. 적당히 괜찮은 남편하고 사는군요 정도가 부담이 없다. 간혹 세상 까칠한 나와 별 탈 없이 살아주는 걸 보면 내가 운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런 주위 사람들의 과대평가가 부질없다거나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엄마들의 반응에 아내의 어깨가 조금이라도 으쓱거린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확실치는 않지만 집에서 그런 이야기 하는 아내의 표정이 대체로 밝은 걸 보면 내가 어디 가서 부끄럽진 않은가 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도 있다.
난 개인 블로그 프로필에 내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양 O, 질 X)만큼은 대한민국 상위 1%인 아빠라고 써놓았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지만 아마 사실일 거다. 내 주변을 봐서는 그렇다. 육아 휴직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집창촌이 세상에 몇 개 있다면 모르겠지만 내 표본집단이 그렇게 엉망이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실제로 내가 상위 1% 인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건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나 부러움도 그렇다. 아내가 포장을 해서 말했든 아니든 중요하진 않다. 난 내가 계속 아내의 자랑거리인 남편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궁주와 멋 주가 조금씩 커서 조금 더 주위를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때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아빠였으면 좋겠다. 그리니 전생에 나라 구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타이틀은 목에 고스란히 걸어두고 거기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육아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