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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우리 엄마는요 / 06 칭찬은 뒤에서만

돈 없어서 맛있는 간식을 못 먹고, 친구들이 과자나 초콜릿을 먹을 때 ‘한 입만’을 외치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내가 안쓰러우면서도 용돈을 주지 못하니 속상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 찬장 속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댄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먹는 캐러멜을 너무 먹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의 지갑에는 지폐와 동전이 있었는데 동전을 모조리 꺼내서 친구들과 캐러멜과 과자를 사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위가 나쁜 습관으로 반복될까 봐 겁이 난 엄마는, 연탄 부지깽이로 나를 한참을 때렸습니다. 다시는 돈이나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하고 난 후에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이후 다시는 엄마의 지갑이나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일은 없었습니다. 

먹고 싶은 게 많았던 것에 비해 부족한 살림은 엄마를 더 짠순이를 만들었습니다. 잔치에 다녀온 날은 나를 위해 잡채와 고기, 맛있는 과자며 음료수를 싸 와서 따로 챙겨주었습니다. 한여름에 목이 말라도 음료수 한번 사 먹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돈을 썼습니다. 한 번쯤 당신을 위해 돈을 쓸 법도 하건만, 못 먹고 못 입어도 나를 위해서 아끼고 또 아껴서 학교를 보내고 교재를 사주었습니다. 엄마 눈에는 온통 나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의료기기 체험장에 다닐 때, 적은 액수의 물건들은 살 수가 있었지만 큰 금액의 물건을 엄두가 나지 않아 고심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엄마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게르마늄 침대와 알칼리 이온정수기, 그리고 전기치료 기계를 사드렸지요. 당연히 의료기기라 값이 꽤 나갔습니다.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받은 것이 많으니 하나도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들을 사서 엄마가 건강하게만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습니다. 의료기기 체험장에서는 효녀를 두었다며 다른 할머니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나는 엄마가 고맙다며 칭찬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먼저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이거 내가 엄마 건강히 지내시라고 사주는 거야!”

“당연히 사줘야지. 내가 건강한 게 너도 좋은 거야!”

칭찬할 줄 알았는데 엄마의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칭찬은 인색한 엄마입니다. 잘한 건 당연히 잘해야 하는 일이고, 못하는 일은 마땅히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아가 집에 늘 먹을게 끊이지 않게 건강식품이며 간식거리며 부족함 없이 먹을 걸 잘 사다 날라. 그게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지. 하는 건 잘해.” 

때때마다 고모와 외숙모가 엄마의 안부 전화를 걸어옵니다. 일부러 엿듣는 건 아니지만 엄마 목소리가 큰 탓에, 가만히 있어도 다 들립니다.

2층 할머니와 요양보호사도 내가 듣는 데서는 칭찬하지 않는데, 뒤에서는 가끔 나에게 고마움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감정표현을 하는 것이 서툰가 봅니다.      


“엄마, 나 사랑해?”

딸이 와서 묻습니다. 

“당연히 사랑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않냐며 따져 묻습니다.

“할머니 닮아서 그래!”     


엄마에게 왜 뒤에서만 칭찬하고 직접 얘기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칭찬하면 잘하는 줄 알고 버릇이 나빠진다고 했습니다. 엄마를 가르친 어른들에게 그렇게 배웠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아이를 엄하게만 키워온 우리 옛날 조상님들의 말쯤으로 생각됩니다. 엄마와 나의 세대 차이는 실로 너무 오래된 44년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음속 깊이 가족들을 사랑합니다. 한 번도 ‘사랑한다.’ 먼저 말해본 적은 없습니다. 나도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 내가 딸처럼 나를 사랑하냐 물으면 마지못해 들은 말이 전부였습니다. 엄마도 내 마음과 같다는 것을. 딸을 키워보니 그 마음 알겠습니다. 

딸은 내가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아서 불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막상 표현하려면 쑥스럽습니다. 굳이 그걸 말로 표현해야 하나?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거로 생각했습니다.

엄마를 닮아 칭찬을 잘하지 못합니다. 나 역시 딸에게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 못하는 일은 잔소리 들어야 하는 마땅한 일이라 생각한 걸까요. 나의 모습을 통해 딸을 보니, 정말 나는 엄마와 판박이로 닮아있습니다. 내 서운한 마음이 딸에게도 똑같이 전달된 것 같아 미안하고 짠합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나 또한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통틀어 세 번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딸은 내가 용돈을 주어도,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가족여행을 가도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곤 합니다. 

엄마 나이 아흔한 살, 엄마를 사랑할 날이 얼만 남지 않았나 봅니다. 이제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살가운 딸처럼 사랑한다고 말하고, 표현하고 행동해야겠습니다. 내가 먼저 엄마에게 다가가면 엄마의 쑥스러운 마음도 조금은 느슨해질 거로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에 고쳐지진 않겠지만 우리 삼대 모녀의 사랑을 위해 같이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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