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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우리 엄마는요 / 07 쌈짓돈이 목돈이 되어 돌아오다

식모살이로 집에 메어있어야 했던 엄마는, 평소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겠다며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아 가며 소소한 일거리를 찾았습니다. 지우개 포장하기 2원, 붕어빵 봉투 붙이기 한 장 5원, 귀걸이 포장 3원, 상자 접기 1원, 인형 눈붙이기 3원. 가끔 우리 처지를 아는 분이 파출부를 시켜준 가장 비싼 일이 한 달 3만 원이었습니다. 나이 많고 기술 없는 육십 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런 것뿐이었습니다. 밤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일해도 손에 쥐어지는 돈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나를 학교에 보내려 매일 일과 고군분투하는 엄마를 보며,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어떻게든 엄마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어서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5시간. 감자를 튀기고, 햄버거를 만들고, 핫도그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모든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자, 앉지도 못하는 서비스업에 다리에 쥐가 나고 허리도 아파서 힘들었습니다. 서서 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습니다. 종업원을 위한 의자는 없었고 손님이 언제 방문할지 몰라서, 사람이 없어도 테이블에 앉지 못했습니다. 밤이 되면 다리가 띵띵 부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았습니다. 초보 아르바이트생 시급 1,250원. 돈 버는 일이 참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버는 금액보다 내가 버는 금액이 더 크니 포기할 수 없었었습니다.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한 돈 삼십만 원을 봉투에서 꺼내 보지도 않고 엄마에게 주었습니다. 엄마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고 힘든 일들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방학 때마다 엄마를 도와 일해야겠다고 결심이 섰지요.

겨울 방학 땐, 한 달씩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설거지했습니다. 당시 벼룩시장 신문을 열심히 뒤져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주방 아주머니가 장난감 같은 고운 손으로 설거지할 수 있겠냐며, 학생이 왜 일하려 하냐며 의아하다며 물었습니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지만, 집안 형편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학원비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릇 열댓 개는 깼지만, 씩씩하게 해냈습니다. 손바닥 습진이 생겨 물건을 잡을 때 쓰라려 연고를 바르면 괜찮았습니다. 햄버거집 아르바이트가 경력이 되어 시급 몇백 원 더 받게 되었습니다. 모두 엄마에게 드렸지만,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전, 동네 버스 종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격일 24시간, 한 달 내내 근무하고 받은 오십만 원 조금 넘는 월급으로 시작해서 결혼 전까지 나름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번다고 벌어도 나아지지 않는 살림은 나를 지치게 했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아끼고 우리 집은 가난했습니다. 사는 게 지치고, 답답하고, 절망스러웠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회사에 나가는 것과 돈 없어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습니다. 내 삶이 나아질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직장생활을 접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친구가 직장을 소개해 준다 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다단계에 빠졌습니다. 허황한 꿈에 빠져 빚만 잔뜩 늘어났습니다. 피라미드 회사에 쏟아부은 돈과 수입이 없으니 돌려막기로 쓰던 카드로 버티지 못해 크게 연체되었습니다. 은행에서 온 전화를 받은 엄마는 8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에 충격받았습니다. 스물두 살의 딸에게 몽둥이를 들었고 ‘호적을 파라’ 했습니다. 지난 시간, 엄마에게 드린 돈의 몇 곱절이나 되는 돈을 써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엄마를 다시 ‘돈 빌리러 다니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일해서 돈을 벌 때는 그렇게 힘들더니 나갈 때는 허망하게 단번에 사라졌습니다. 숫자의 개념이 이렇게 허무한 거구나 처음 깨달았습니다. 십만 원, 이십 만 원 할 때는 크던 돈이 백, 이백, 삼백 계속 늘어나니 얼마나 큰 금액인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돈이 우리,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우리의 삶을 망쳐 놓았구나! 상심했습니다.      


엄마는 평소에도 돈을 안 씁니다. 아니, 못 씁니다. 태어난 시대를 잘못 만나 아끼고 아끼는 시간만 보냈습니다. 그래도 늘 배고프게 지냈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800만 원은 얼마나 무서운 숫자였을까요?      

일하면서 엄마에게 크지는 않지만, 매월 용돈을 드렸습니다. 가정을 꾸리는 데에는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우리 네 식구 식비와 생활비, 용돈 그리고 세금과 보험료 등등 생각보다 많이 들어갑니다. 갑작스럽게 가전제품이 고장 나거나 생각 못한 수리에 써야 하는 금액들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작년 겨울, 갑자기 고장 난 보일러는 통째로 교환해야 했고 화장실 변기에서 물이 새서 도기도 교체해야 했지요. 멀쩡하던 텔레비전이 갑자기 나오지 않는 등 오래된 집은 말썽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목돈으로 척척 내놓으셨습니다. 제가 드린 적은 돈이 목돈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더 드리지는 못할망정 거절하지 못하고 받는 마음이 죄송합니다. 없는 현실이 부끄러움을 이겨버리니, 미안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어려운 살림에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벌어왔다고, 그래도 나름대로 할 도리는 했다고 자신만만했던 마음이 죄스러웠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모니까 당연한 걸로만 생각했습니다. 빚쟁이 빚 맡겨놓은 것처럼 당당하게 받으려고만 했습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아무리 내리사랑이라 해도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딸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중에 다 갚아!”

“나중에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볼 거야!”

하며, 들어간 돈을 계산해보자며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엄마에게 그런 비슷한 말이라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끼다 똥 된다고 먹을 거, 입을 거 아끼지 말라고 늘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는 남은 날이 많지 않고, 우리는 많으니까 좋은 건 엄마 다 하라고 해도 도통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용돈 모아 손녀딸에게 다시 용돈을 주고, 혹여라도 돈 때문에 힘들까 도움이 되려고 아끼고 또 아낍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서 ‘진짜 사랑’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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