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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우리 엄마는요 / 08 밥이 제일 중요해

“늙은이 밥도 안 챙겨주냐?”

엄마는 삼시 세끼 밥때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역정을 냅니다. 아침 8시, 점심 12시, 저녁 6시는 칼같이 꼭 지켜져야만 합니다. 오전 10시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출근합니다. 그래서 직장생활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과 저녁 식사는 제가 챙겨야 합니다. 일부러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회사로 취업했습니다. 그 때문에 급여가 많이 줄었지만, 다른 대안은 없었습니다. 

일찍 퇴근했지만 차가 막혀 늦어집니다. 집에 오니 6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오는 퇴근길. 요일에 따라 교통량이 들쭉날쭉합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저녁상을 차립니다. 새로운 반찬 할 재료도 시간도 능력도 없습니다. 부랴부랴 상 차리면 한소리 들려옵니다.

“가뜩이나 입맛 없는 노인네, 반찬도 없이 아침, 점심 먹던 거 그대로 삐죽 주면 다냐?”     


저녁 식사 후, 밥통에 밥이 없으면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밥해야 합니다. 저녁에 밥을 해놓아도 되겠지만, 아침이면 입안이 더욱 까슬하다는 엄마에게 갓 지은 밥을 드리고 싶어서이지요. 유독 아침잠이 많은 저는 밥 한번 하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남은 치아 하나 없이 틀니에 의존하는 엄마는 국이 없으면 식사하기가 힘듭니다. 최근 가뜩이나 입맛 없어 잘 먹지 못해서 5kg이나 줄었습니다. 앙상한 몸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반찬이라도 더 잘해 드려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얻어먹기만 했지,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반찬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인터넷을 보고 해도 되지만, 까다로운 엄마 입맛에 저의 형편없는 솜씨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요리를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엄마 말대로 ‘사다 나르기’는 잘합니다. 대형상점에서 사골국, 우거지탕, 갈비탕 등등 상자로 사들여 쌓아놓고, 근처 반찬 가게에서도 밑반찬을 사 나릅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홈쇼핑으로 주문하고 냉동고에 쟁여 둡니다. 즉석식품이지만 만두, 떡갈비, 떡국떡, 닭고기꼬치 등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해 둡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저의 식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엄마의 고향은 전라도입니다. 못하는 요리가 없을 정도로 음식을 맛있게 잘합니다. 엄마의 김치와 깍두기는 동네 사람들도 맛있다며 얻어가곤 했습니다. 작년까지도 된장, 고추장, 간장까지 담갔던 엄마입니다. 약수동 먹자골목이 집 근처입니다. 맛집이라 소문나서 찾아간 곳들은 엄마 음식솜씨를 따라가지 못해 매번 실패하곤 했었습니다. ‘돈 받고도 이런 건 못 먹겠다!’, ‘이런 걸 비싼 돈 주고 사 먹냐?’ 몇 번의 외식 실패 후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외식하지 않았습니다. ‘장금이 엄마’는 맛있다는 표현이 아주 인색합니다. 그러니, 저의 밥상은 아주 초라하기 짝이 없는, 줘도 먹기 싫은 밥상일 겁니다.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반찬은 ‘간장게장’입니다. 엄마는 간장게장을 유독 좋아합니다. 가격대가 조금 나가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엄마의 밥공기를 비워주는 것은 간장게장뿐입니다. 치아 하나 없이 틀니로 꽃게 다리를 ‘아작아작’ 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까지 합니다. 흠이 있다면, 밥상이 꽃게 때문에 지저분해진다는 겁니다. 꽃게살은 먹을 것 없고 딱딱한 껍질만 수북하게 쌓입니다. 딸인 나와는 밥을 잘 먹다가도 사위와 함께 식탁에 앉는 날에는 ‘눈치’가 보이는지 깨작깨작 드십니다. 

어떤 날은 식사하다가 시작된 딸꾹질이 멈추지 않고 지속됐습니다. 밥을 먹다가 재채기 한방에 밥상이 초토화 되기도 하고요. 힘이 없어 숟가락과 젓가락을 자주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조금이라도 찐득한 반찬이 올라오는 날엔 틀니가 제멋대로 빠져나오기도 합니다. 

오래된 반찬이 아깝다며 새로운 반찬을 같이 섞는가 하면, 남은 고기도 찌개로 재탕이 들어갑니다. 조금 남은 김치는 버리려 해도 국물 먹겠다며 버리지 말라 합니다. 그렇게 먹어야 할 만큼 형편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엄마가 겪은 전쟁과 식민지 생활, 그리고 보릿고개가 모든 것을 귀하게 만들었겠지요. 보기에 너무 지저분해 보여, 엄마가 하는 일에 간섭이라도 할라치면 불처럼 화를 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두고 보기엔 속이 답답합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엄마 마음에 들어야 하니, 도리가 없습니다. 제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 갑니다.      


지난주, 겉절이를 먹고 싶다던 엄마는 옛날 생각에 배추 두 개를 노인 보행기에 태워 밀고 왔습니다. 꽤 무거웠을 텐데 그 정도 힘은 남아있는 듯해서 다행이라 위안했지요. 함께 만들자고 했지만, 엄마는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혼자 김치를 담그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게 한마디 않다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는지 다음날에서야 엄마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제 잔소리 듣기 싫어 숨겼던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고 주사 맞고 왔습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마음 상할까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다 나도 모르게 독한 소리가 나와버렸습니다.

“엄마! 넘어져서 다치면 엄마 입원해야 해. 엉덩이관절 다치면 1년 안에 돌아가신대. 제발 좀!”

속상한 마음에 큰소리로 협박하고 말았습니다. 좋게 말하면 듣지 않으려 하니, 더 세게 말합니다. 엄마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다 해 먹었지, 네가 했냐? 할 줄도 모르면서 말만!”

몇 년 전만 해도, 제 말을 큰 목소리로 받아치던 엄마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습니다. 

엄마의 기세등등한 목소리를 다시 찾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밥을 잘 챙겨야지 다짐합니다.     


노모는 식사를 잘하지 못해 매번 최저몸무게를 갱신합니다. 팔다리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힘이 없어 자주 넘어집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챙겨주던 엄마는 이제는 제가 깨워야만 기운을 차립니다. 자는 엄마의 어깨가 들숨 날 숨 잘 움직이는지 한참 쳐다봅니다. 이쯤 되면 식탁이 지저분해지든, 반찬을 섞어 먹든, 딸꾹질이 나든 일단 식사만 한다면 만사형통입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저를 위해 요리 솜씨를 발휘해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겼습니다. 없는 살림에 같은 재료로도 여러 종류의 반찬을 만들었던 엄마입니다. 그동안 받아먹었으니 이제라도 잘하고 싶은데, 마음같이 않는 자신이 답답하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음식 못하고, 따뜻한 말도 못 하는 불효녀라 미안하기만 합니다. 이제라도 미안한 마음을 담아 엄마의 밥상에 최선을 다해 도전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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