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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임 Oct 22. 2021

늘 부족한 엄마인걸 알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자, 엄마니까.

세상에는 어려운 것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꼽은 가장 어려운 일은 육아이다.


완분(완전히 분유만 먹인다는 뜻)의 길을 꿈꾸던 나. 조리원 퇴소 후, 배앓이를 하느라 얼굴 터질 듯이 아기가 울고, 우연히 병원에서 들은 턱관절이 작다는 소리에 언제 완분을 꿈꿨냐는 듯 자연스럽게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얌전히 잘 먹질 않고 수유를 거부하고 온 몸으로 난리를 치는 아기를 안고서 아기도 울고 나도 울었다. 유축은 유축대로 잘 되지 않아서 출산 후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미역국과 돼지족 우린 물을 먹었다.


미역국은 이제 쳐다도 안 본다.


아기 100일 즈음. 복직 후에 자연스럽게 단유를 하면서 완분의 길로 들어서자, 약간의 수월함이 생겨서 여유가 좀 붙었었다. 그러다가 아기 손톱을 깎아준답시고 너무 자신 있게 딱! 딱! 깎아주다가 그만 아기 손톱 밑 살을 집어버렸네.


바닥에 내 이마를 찍으며 "내가 미쳤지"를 수도 없이 되뇌었다.


아파서 우는 아기를 보며 뭐 이런 한심한 엄마가 다 있나 했다. 그 뒤로는 손톱깎이는 꼴도 보기 싫어졌고, 손톱을 갈아주면서 정리해주고 있다. 아직까지도 아기용 손톱깎이 세트는 꺼내지도 않는다.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서 눈을 찔끔 감는다.


아기가 200일이 한참 지났을 때, 제대로 일이 터졌다.


튼튼이가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아침에 조용히 일어나서 혼자 침대를 넘어와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아기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자다가 두 눈이 번쩍 뜨였고,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울음을 내는 튼튼이를 안고 있을 때, 내 심장은 찢어질 것 같았고 나는 미친 여자처럼 꺽꺽 울었다.


119 구급차로 응급실에 다녀와서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놀란 가슴의 팔 할은 가라앉혔는데, 몇 주가 지났어도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이 벌렁거려서 머릿속이 하얘진다. 아기가 이유 없이 울거나 보채면 혹시 그날 다쳐서 그런 거 아닌지 머릿속이 엉키고 설켰다.


그 뒤로 튼튼이 얼굴을 보면 내 스스로를 패고 싶다.


분명히 튼튼이의 움직임이 너무나 활발해지고 낙상의 전조증상이 있었는데도 대처를 미루고 있던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싫었다. 응급실에 다녀온 후 아기 침대 매트리스를 빼버렸는데, 그러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아기는 이미 다쳤는데, 이제와서야 내가 이러고 있네...


모성애가 엄청난 것도, 아기 보는 일을 너무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기를 잘 지켜내는 것도 아니고. 난 도대체 엄마 자격이 있는 건가, 뭐 이렇게 형편없는 엄마가 다 있나 싶은 생각에 분노가 뒤섞인 눈물을 하릴없이 흘렸었다.


그렇게 육아 공포증이 생긴 나에게 선배 엄마들의 말은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고, 아기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있으니 이젠 털어내고 아기를 더 잘 지킬 수 있도록 정신을 다잡으라고 한다. 죄책감을 너무 많이 가져도 아기에게 그 마음이 전해지니까 미안하다 하지 말고 고맙다고 말해주라 한다. 더 큰일이 절대 생기지 않도록 이번 일을 계기로 아기를 잘 관찰하고 또 관찰하라고 한다.


그리고 아기를 키우면서 이보다 더 한 일들이 수도 없이 생기니, 심장을 단단하게 만들으라 한다.


'그래, 튼튼이는 내가 필요해. 그런데 내가 정신 못 차리고 끈을 놓아버리면 우리 튼튼이는 누가 지켜? 단단해지자, 엄마니까. 난 엄마다. 원했든 안 원했든 이젠 엄마야.' 아직도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니지만, 안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내 자신을 다스려보고 있다.


일련의 사고들 뿐만 아니라, 나보다 시터 선생님을 더 좋아라 하는 아기를 볼 때나, 남편에게 더 안기려는 아기를 보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일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끔 느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부족함을 일하는 엄마라는 이유와 결부시키지 않기로 했다.


일을 하는 엄마여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저 늘 부족한 초보 엄마라는 걸 인정하고 두 번 세 번 더 생각하고 아기를 대하려고 한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아기에게 아무 일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내 부족함에만 집중하고 아기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기 옷을 고르느라 집중하는 시간보다는 아기의 온몸 구석구석을 더 관찰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퇴근하고 힘들다고 입 다물고 있지 않고 '튼튼아, 오늘 엄마 일 다녀올 때 뭐하고 놀았어?' 하며 눈 맞추며 이야기하기로 했다. 내 몸이 편하기보다 아기가 안전하기 위해 뭘 더 해야 하는지 생각나면 바로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튼튼이에 대한 단 1초의 걱정보다는, 그 시간에  함박웃음을 한 번 더 크게 지어주자는 결심을 했다.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엄마지만, 사랑만은 넘쳐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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