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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신 Jan 26. 2024

난 이제 하고 싶은 게 없어

한때 취미 부자였던 그 남자의 슬럼프  


그는 자주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했다.

공부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멍을 때렸다. 언제부턴가 자기 머리카락을 꼬는 습관이 생겼다. 하도 꼬아서 얽히고설킨 머리카락이 그의 뒤통수에 늘 뿔처럼 솟아나 있었다.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 놀고 싶은 친구 없어?”라고 묻는 말엔 좀처럼 답이 없었다. 길을 걷다 친구를 마주치면 ‘안녕’이라 나직이 중얼거리고 다시 흘끔 돌아볼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짙은 한숨과 함께 인상을 구겼다.


“학교 가기 싫어”

“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난 내가 싫어”

“죽으면 그만이야”


그런 토토의 얼굴에 생기가 도는 유일한 순간은, 닌텐도 게임을 할 때와 달리기를 할 때였다.


나랑 달리기 시합하자!”

내가 닌텐도 가르쳐 줄까?”


토토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랑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에게 강요당했던 대표적인 취미로는 상어 종류별로 그리고 오리기(톱상어, 망치상어, 백상아리 등), 곤충 채집, 종이접기(특히 드래곤), 포켓몬스터 띠부씰 모으기, 캐릭터 그리기 등등이 있다.


꽃이 피고 지듯, 시간이 지나자 그 많던 취미들도 점점 사그라져 갔다. 토토는 이제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물론 게임 빼고) 3학년 겨울 방학이 되자 원래 집돌이였던 그는 더더욱 집에만 있으려고 했다. 집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수학, 영어 문제집을 푸는 것 밖에 없었다. 힘없이 연필을 들고 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다른 한 손으로 부산스럽게 머리카락을 꼬고 있는 토토가 안쓰러웠다.


“토토야, 나가서 좀 놀아”

“추워... 나가면 친구들도 없고”

“..... 그럼 엄마랑 놀까? 엄마랑 같이 하고 싶은 거 있어?”

“축구”

“다른 건?”

“젤다” (닌텐도게임)

“태권도를 배워볼래?”  

“아니”

“복싱 배워볼래?”

“아니”

“배드민턴 배워볼래?”

“아니”

“줌바 같이 할래?

”아-니“

“요가 같이 할래?”

“이쒸..”

“달리기 같이 할래?

”어 “

“그럼 우리 아침마다 같이 달릴까?”

“어”


많은 후보들 중에 달리기가 낙찰됐다. 나에게도 축구나 게임보다는 달리기가 더 현실성이 있었다. 그래서 토토와 같이 달리기로 했다. 내가 자발적으로 토토와 취미를 공유하는 건 처음이다. 토토가 좋아할까?


일단 해보자.  

눈썹 올리고, 심호흡 한 번 하고, 후우우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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