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제 하고 싶은 게 없어
한때 취미 부자였던 그 남자의 슬럼프
그는 자주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했다.
공부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멍을 때렸다. 언제부턴가 자기 머리카락을 꼬는 습관이 생겼다. 하도 꼬아서 얽히고설킨 머리카락이 그의 뒤통수에 늘 뿔처럼 솟아나 있었다.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 놀고 싶은 친구 없어?”라고 묻는 말엔 좀처럼 답이 없었다. 길을 걷다 친구를 마주치면 ‘안녕’이라 나직이 중얼거리고 다시 흘끔 돌아볼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짙은 한숨과 함께 인상을 구겼다.
“학교 가기 싫어”
“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난 내가 싫어”
“죽으면 그만이야”
그런 토토의 얼굴에 생기가 도는 유일한 순간은, 닌텐도 게임을 할 때와 달리기를 할 때였다.
“나랑 달리기 시합하자!”
“내가 닌텐도 가르쳐 줄까?”
토토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랑 꼭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에게 강요당했던 대표적인 취미로는 상어 종류별로 그리고 오리기(톱상어, 망치상어, 백상아리 등), 곤충 채집, 종이접기(특히 드래곤), 포켓몬스터 띠부씰 모으기, 캐릭터 그리기 등등이 있다.
꽃이 피고 지듯, 시간이 지나자 그 많던 취미들도 점점 사그라져 갔다. 토토는 이제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물론 게임 빼고) 3학년 겨울 방학이 되자 원래 집돌이였던 그는 더더욱 집에만 있으려고 했다. 집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수학, 영어 문제집을 푸는 것 밖에 없었다. 힘없이 연필을 들고 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다른 한 손으로 부산스럽게 머리카락을 꼬고 있는 토토가 안쓰러웠다.
“토토야, 나가서 좀 놀아”
“추워... 나가면 친구들도 없고”
“..... 그럼 엄마랑 놀까? 엄마랑 같이 하고 싶은 거 있어?”
“축구”
“다른 건?”
“젤다” (닌텐도게임)
“태권도를 배워볼래?”
“아니”
“복싱 배워볼래?”
“아니”
“배드민턴 배워볼래?”
“아니”
“줌바 같이 할래?
”아-니“
“요가 같이 할래?”
“이쒸..”
“달리기 같이 할래?
”어 “
“그럼 우리 아침마다 같이 달릴까?”
“어”
많은 후보들 중에 달리기가 낙찰됐다. 나에게도 축구나 게임보다는 달리기가 더 현실성이 있었다. 그래서 토토와 같이 달리기로 했다. 내가 자발적으로 토토와 취미를 공유하는 건 처음이다. 토토가 좋아할까?
일단 해보자.
눈썹 올리고, 심호흡 한 번 하고, 후우우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