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습관에 대한 고찰
명분 대신 뼈 때리는 깨달음을 얻다.
의지적인 달리기를 시작하고 가장 달라진 점은 장거리도 웬만하면 걸어 다니게 된 것이다. 이제 3km 정도는 힘들이지 않고 거뜬히 걸을 수 있다. 몸이 살짝 가벼워지고 교통비도 줄었다. 유익한 습관이 하나 추가 된 셈이다. 나는 2년 전 Atomic Habit이라는 책을 읽고부터 단기성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하나씩 늘려가는데 집중하게 됐다.
습관의 다른 말은 자동화 시스템이다. 습관은 복잡한 뇌신경계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하게 되는 일련의 행동들이다. 그래서 습관적인 행동을 할 때는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는다. 좋은 습관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번아웃에 잘 빠지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사소하지만 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습관들은 다음과 같다.
-자기 전에 책상, 식탁정리
-샤워 전에 화장실 청소
-집 청소 다 해놓고 여행 가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세수/양치/기본 화장
-아침 공복에 레몬수 500ml 원샷
-가방에 펜, 수첩 챙기기
-3km 이내는 도보 이동
특히 청소에 대한 부분은 내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진화된 습관이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차리려는데 식탁에 잡동사니들이 늘어져 있거나, 여행을 다녀왔는데 침대에 이불 정리가 안 되어있고 옷이 널브러져 있으면 힘이 빠지면서 예민해진다. 이렇게 습관 속에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과 성향이 고스란히 녹아들게 된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MBTI보다 중요한 것이 평상시 그 사람의 생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습관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는 이유는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걸어 다니는 습관은 잡혔는데 여전히 집 밖을 나가는 것이 힘들어서다. 왜 나가는 습관은 잡히지 않는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물론 요일을 정해서 '무조건 몇 시에 달리기'라고 규칙을 정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안에 알맹이가 없다.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확실한 명분이 없는 것이다. 내 일상에 자리 잡은 습관들은 거의 다 스트레스 줄이고 싶다는 강력한 동기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내가 달리려는 최초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집에만 있으려는 아이와 밖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취미를 공유하려는 거였다. 그런데 매번 나갈 때마다 갈등을 하는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왜 달려야 하는가?”
집 밖을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서 나 자신과 싸울 때, 그래도 나가는 쪽을 선택해야 할 동기는 무엇인가?
이까지 질문을 하고 보니 이상하다. 처음엔 그냥 닥치고 무조건 나가자고 외치던 내가 왜 명분을 찾고 있나.
이 글을 써나갈수록 내가 명분을 찾는 이유가 조금씩 명확해진다.
(나는 지금 브런치 연재글을 쓰면서 혼자 질문하고 답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명분에 집착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달리기 싫어서"다. 왜 달려야 하지?라고 묻는 건 달리기를 그만 둘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짓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명분을 못 찾으면 그 핑계로 달리기를 그만하고 이전처럼 집에서 편안하게 안주하려는 개수작인 것이다. 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한다.
새벽에 아파트 헬스장에서 러닝 뛰는 사람들은 대단한 명분이 있어서 거기 있는 게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달콤한 아침잠의 유혹을 이겨내고 운동하는 건 습관이 아니다. 늘 힘든 자기와의 싸움이다. 나의 유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솔까 안 해도 그만이다. 집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는 나가서 달리는 게 스스로에게 더 나으니까 하는 것이다. 나의 불편함을 줄이려고 시작된 이전의 습관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명분을 찾는다? 생각이 많아진다? 그건 뭔가 하기 싫을 때 교묘하게 합리화하려고 잔머리를 굴리는 거다.
이번 글을 통해 자아성찰을 하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줄은 몰랐다. 글 제목을 <잔머리를 굴릴 때 하는 질문>으로 바꿀까 싶다.
오늘의 깨달음: 나의 유익을 위해 뭔가 시작했다면 명분이고 나발이고 그냥 하는 게 이득이다.
동기가 없어 보여도 더 나아질 나를 기대하며 작정하고 노력하는 모든 것들에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큰 명분이 이미 존재한다.
입꾹닫 하고 달리자.
(삭제하고 싶은 글이지만 또다시 나태함이 찾아올 때 핑계치 못할 증거로 남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