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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신 Feb 21. 2024

마라톤 10km - 첫 도전

뛸수록 안 힘든 아이러니


토요일 아침 7시 반 기상, 마라톤 준비로 분주하다. 러닝앱에서 주최한 비대면 마라톤 10km에 도전하기로 한 날이다. 도전은 5km부터 하프(21km)까지 가능하다.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목표한 거리를 달리면 된다. 정식 마라톤 대회도 아닌데 긴장감이 감돈다. 10km는 달려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 힘들지 가늠이 안 된다. 이번엔 남편도 동행하기로 했다. 평소에 운동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인지라 살짝 불안하다.


준비물은 풀충전 된 폰과 러닝벨트, 간식, 장갑, 목도리, 이어폰이다. 물론 달릴 때 듣기 좋은 음악도 전날 밤 다운 받아서 각자의 폰에 저장해 두었다. 토토의 귀에 맞는 헤드셋도 준비했다. 지칠 때 좋은 음악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느끼게 해 주려고 헤드셋은 신경 써서 골랐다. 토토가 완주 과정 속의 크고 작은 위기를 이겨내도록 도와주고 긍정의 힘을 키워 주는 것이 이번 마라톤의 최우선 순위이다.


이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토토 녀석은 또 나가기 싫다며 소파에 누워 버렸다. 역시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 최대 난관이다. 주말 아침에 10km를 달리러 나가자고 하니 당연히 부담스럽고 싫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싫은데 토토는 오죽할까. 그래도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다. 때론 마음이 당기지 않아도 닥치고 그냥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게 우리에겐 마라톤이다.


“토토야 10km 도전하기로 했잖아.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나가자”


토토는 겨우 두 발을 딛고 일어나 꾸역꾸역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토토의 앵두 같은 입술에서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불평이 터져 나왔다. 오늘도 스타트가 만만치 않다. 토토를 부드럽게 타이르던 남편의 음성이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점점 높아진다.


“뛰어야 안 춥지!


어디서 많이 듣던 멘트다. 오늘은 토토를 남편과 번갈아가며 감당할 수 있어서 부담이 덜하다. 남편이 너무 욱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 집에서 한강변을 따라 63 빌딩까지가 5km 지점이다. 우리는 63 빌딩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10km를 달릴 것이다.


나와서 10분쯤 걷자 토토는 몸이 풀렸는지 표정도 풀어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운동은 하러 나가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막상 하면 참 좋은 것이다. 오늘은 평소 러닝 때마다 내리던 눈도 안 내리고 심지어 춥지도 않았다. 러닝을 하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우리 셋은 일렬로 서서 가볍게 뛰었다. 남편은 토토 옆에서 호흡을 어떻게 해라, 팔은 이렇게 흔들어라 등등 말이 많았다. 말이 많다는 것은 남편도 컨디션이 좋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토토와 남편은 참 많이 닮았다. 기분이 좋으면 말수가 많아진다.


한강 변에 다다르자 러닝 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벌써 1km 왔어!”


토토가 기뻐한다. 남편은 이렇게 좋은데 진작 뛰러 나올 걸 그랬다고 아쉬워한다. 흠.. 다시 말하지만, 뛰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문 밖을 나서는 게 제일 힘든 것이다. 일단 나오면 뭐라도 하게 되어 있는데 몸뚱이를 일으켜 나가는 게 열라 힘들다. 누가 매일 아침마다 우리를 강제로 깨워서 한강에 데려다 놔줬으면 좋겠다.


토토는 달렸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나름 페이스 조절을 했다. 남편이 토토의 옆에서 속도를 맞춰 달려줘서 나는 내 속도대로 원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할 줄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러닝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곳곳에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원으로 서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운동 동호회 모임인 것 같았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새벽시장이나, 아침 운동을 나올 때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보며 자극을 받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뛰다 보니 어느덧 4km다. 아직은 몸이 가뿐했다. 뒤를 돌아보니 토토와 남편이 나를 따라잡겠다며 뛰어 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리며 숨을 골랐다. 토토는 기다리고 있는 나를 스쳐 가면서  말했다.


“엄마, 멈추면 안 돼. 계속 뛰어야지. 알았어?”


엥? 토토가 나한테 뛰라고 하다니. 순간 황당하면서 웃음이 났다.


“네, 토토님. 시키는 대로 할게요”


토토는 스멀스멀 상승하는 나의 입꼬리를 보고 멋쩍은지 따라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긴 것이다. 어느새 63 빌딩 앞에 다다랐다. 그동안 연습한 게 있어서인지 5km까지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63 빌딩을 지나고부터 토토는 조금 지쳐 보였다.


“토토야! 노래 들을래?”


이때다 싶어서 토토에게 헤드셋을 씌우고 스티브 바라캇의 ‘flying'을 재생시켰다.’flying'은 학창 시절 내가 즐겨 들었던 띵곡이다. flying은 들을 때마다 어딘가를 자유롭게 달려가는 이미지가 그려지곤 했었다. 토토는 낯선 듯 헤드셋을 요리조리 조정하더니 말없이 었다. 예민한 녀석이 10분이 지나도록 헤드셋을 벗어던지지 않는 걸 보니 싫지는 않나 보다. 나도 Ellie Goulding의 How long will I love you를 들으면서 같이 달렸다. 지칠 때 듣는 음악은 초콜릿보다 더 강력한 에너지원이다.


해가 점점 높이 뜨면서 우리의 얼굴은 직사광선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해를 마주 보며 달릴 경우, 얼굴 가리개와 모자는 꼭 필요하다. 토토는 '7km다, 8km다' 하면서 10km가 임박하자 출발할 때보다 더 쌩쌩해졌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토토에게 장하다며 사탕을 나눠 주셨고, 러닝 동호회 사람들은 토토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박수를 쳐 주었다. 낯선 사람들이 보내준 격려와 응원은 토토를 놀랍게 변화시켰다.


“우와! 달릴수록 더 안 힘드네?”

“엄마! 하프 마라톤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토토는 말이 많아졌다. 아이 입에서 나오는 긍정의 말들은 내게 더 힘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선순환이 계속된다면 우린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까? 문득 설렜다.


드디어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마음이 좋아서 그런지 몸이 가뿐하고 날아갈 것 같다. 10km를 더 달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종착지인 맥도널드 앞에서 남은 200m를 채우자 러닝앱 음성 가이드 아저씨가 10km 완주를 격하게 축하해 준다. 총 소요 시간은 1시간 49분, 전체 87명 중에 82등을 기록했다. 토토, 남편과 맥도널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토토야! 엄마 지금 너어무 행복하다. 진짜 너무 좋아”


토토가 거기다 무어라 말을 하긴 했는데 내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어서 잘 들리지 않는다. 상관없다. 난 그 순간의 기분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 눈을 감았다. 토토가 다가왔다.


“토토야! 기분이 어때? 엄마 난생처음 마라톤 해봤어. 다 달리고 나니까 행복해”


그러자 토토가 내 귀에서 이어폰을 확 빼면서 말했다.


“아, 똥 마렵다니까! 똥 마렵다는데 자꾸 뭘 행복하다고 난리야”

“아.. 똥.. 그렇구나. 미안, 아빠랑 갔다 와”


토토는 토토다. 이번엔 맥도널드에서 마라톤 완주 자축파티를 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물어봤다.


“토토야, 2월에도 마라톤 도전할 거야?”

“........... 2월 말에 하자”


토토는 별 말이 없었지만 이미 말투와 몸짓에 자신감이 한 스푼 들어가 있었다. 달릴 때는 힘든 줄 몰랐는데 집에 다 와서야 양쪽 새끼발가락이 물집이 잡힌 듯 쓰라렸다.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있는데 토토가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노래인지 계속 흥얼거렸다. 행복은 토토의 흥얼거림처럼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것이다. 굳이 언어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다음에는 21km 도전을 해볼까?

아니다. 심호흡 한번 후우우,

파이팅 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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