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두려움은 내 삶을 바꾸라는 신호였다.(7-3)
두려움은 여전히 매일 찾아온다.
'혹시나'라는 불안이 '역시나'가 되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달린다.
몇 년 전, 길거리에서 무료급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고성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마주쳤다. 소란스러운 소리 속에선 절박함이, 그들의 눈빛 속에선 살아남아야 한다는 처절함이 비쳤다.
'나이 들어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라고 안 될 이유가 있나? 지금은 신랑의 어깨에 기대 살지만, 만약 혼자가 된다면? 나는 뭐가 잘나서 저런 미래를 피할 수 있다고 믿는 거지?'
그 순간, 무능력함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도 나이만 먹는 어른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정작 나를 위한 성장의 행동은 하나도 하고 있지 않았다. 저분들도 자신들의 미래가 저럴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다면 나라고 다를까?
그날 이후, 나는 뭐라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려움은 나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책을 펼쳐드는 손이 내 인생의 첫걸음이 되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나는 계속 달려왔다. 해마다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들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성공에 가까워지는 마음, 해냈다는 성취감, 단단히 뿌리내리는 내면의 감각. 시간이 흐를수록 그 행복과 감사함은 더 커졌다.
나는 [사랑의 언어]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봉사, 선물, 스킨십 -
가운데 특히 '인정하는 말'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크게 와닿는다. 누군가에겐 선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봉사나 스킨십이 더 큰 의미일 수 있다.
나에겐 말 한마디가 오래 남는다. 그래서 자존감이 흔들릴 때면 작은 말 한마디를 곱씹는다. 특히 가장 가까운 신랑이 직설적으로 말할 때는,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신랑이 말실수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내 마음을 더 깊게 찌른 셈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인정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외동딸로 자라면서 부모님은 웬만한 아들들보다 독립심 강하게 키우셨다. 특히 아빠와는 성향이 비슷해서 자주 부딪혔다.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표현이 달라 의견충돌로 이어졌다.
엄마는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 둘이 같은 말 하고 있는데 왜 싸우는 거야" 와하하하~ 하며 웃음을 터트리셨고, 그렇게 부녀는 휴전을 하며 늘 웃음으로 끝났지만, 내 안에는 늘 작은 멍울이 남았다. '아빤 왜 따뜻한 한마디조차 해주지 않을까.' 그 서운함이 오랫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 역시 아빠만의 사랑방식이었다. 더 빨리 배우고 덜 돌아가라고 하신 거였다. 물론 나는 직접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결국 돌아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 인정받지 못하는 말의 두려움이 지금까지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신랑과의 대화에서도 같은 상처를 반복하는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오기가 발동해 결국 해내고야 마는 청개구리 습성도 있다.
처음엔 두려움이 발판이었지만, 지금은 도전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안엔 늘 도전적인 기질이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당찬 포스를 풍긴다고 말했다. 그 자체가 내 본모습이었다. 한동안 육아와 가정에 묻혀 잊고 살던 나의 기질을 다시 깨워낸 것도 '두려움' 덕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찾은 지금의 내 모습이 더욱 소중하다.
나는 두려움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이 사라진 삶이 더 무서웠다. 그만큼 도전은 내 본능이자 숨결이었다.
두려움은 어디서든 내 곁에 찾아왔다. 시시때때로, 불쑥불쑥. 그것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했다. 깊숙이 받아들이면 삶을 삼켜버리고,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면 금세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사랑에서도, 일상에서도, 또 새로운 도전을 앞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투자라는 무대 위에서도, 두려움은 같은 얼굴로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두려움은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행동의 원동력이었다.
투자할 때, 위기의 뉴스가 터질 때, 주가가 요동칠 때마다 두려움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공부했다. 경제 흐름을 살피고, 기록하고, 배우며 눈을 넓혔다.
오를 땐 욕심을 다잡고, 내릴 땐 흔들림을 붙들었다. 두려움이 오히려 나를 공부로 재촉했기 때문이다. 계좌에 파란 불빛이 켜질 때면 숨이 막혔지만, 그 속에서도 배움은 늘 있었다. 돈이 돈을 벌어줄 때의 짜릿함은 여전히 설레게 했다.
아직은 많이 벌지 못했지만, 작은 단련이 모여 목표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무지 속에선 두려움이 커지지만, 노력 속에선 두려움이 경고등이 된다. 멈추지 않게 붙잡고, 무모하지 않게 막아준다. 나는 두려움과 함께 걷는다.
요즘은 가까운 이들과 공부를 나누며 배우는 시간이 늘고 있다. 본업은 달라도 좋은 정보와 경제 소식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한다. 철없던 시절 늘 모여 웃고 마시던 친구들이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해졌다. 물론 만나면 여전히 옛날로 돌아가지만, 그 또한 소중하다. 함께 성장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서로에게 든든한 활력소가 된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내 글을 읽고 응원해 주는 마음들 덕분에 나는 매일 감사로 벅차다. 신랑도 직장 생활을 하며 자신을 위해 성장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지금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미래의 초석이다. 가끔은 2035년쯤 우리 가족의 미래를 그려본다. 어떤 모습일까? 분명한 건, 그 미래는 지금의 우리 노력 위에 세워질 거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하려 한다.
두려움이 길잡이가 되는 순간, 그 길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나는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더 멀리 걸어가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