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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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넷플릭스를 다 보고 나서 자러 갈 때면 꼭 선풍기를 끄고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아직 거실에 남아있는데도. 난 사람 취급 안 하는 건가?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선풍기를 다시 켤 생각이 없다. 우습지만 의자에 앉아있다가 다시 일어서서 선풍기를 작동시키러 가는 것도 귀찮기 때문이다. 아, 선풍기와 나의 거리는 1미터도 안 된다, 참고로.


귀찮음!


귀찮음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시간은 지금과 같은 밤시간이다. 참고로 지금은 오전 1시 34분. 고양이도 자러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도 잠을 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면 이 순간 나에게 잔소리를 할 사람은 아무도,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즐긴다. 피곤하지만 어쩌면 더 오랫동안 깨어있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사실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지금처럼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든지, 밤새 기획안과 카피를 쓰고 있다든지, 연애 유튜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든지 혹은 애절한 목소리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든지. 이 밤중엔 혼자 노래를 들으며 울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왜 우냐고 이유를 묻는 사람만큼 귀찮은 이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왜 우냐고? 나도 모른다. 울어야 하기에 운다. 그냥 당연한 건데….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울고 싶었지만, 울지 못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 서른이 넘어간 나는 울고 싶던 때도 울고 싶다는 내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적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상대방에게 충분히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면, 우는 행동이 적합하지 못하다는 현실은 굉장히 각박하다. 그래서 나는 하루의 가장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이 순간, 억지로라도 운다. 그래야 내일 아침, 눈을 뜨고 다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인생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철칙을 어느 순간부터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유 없이 밤에, 최선을 다해 울어야 할 때 온몸의 슬픔을 남김없이 쥐어 짜내 운다. 상당히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과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정열적으로 살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왜 나는 아무것도 허투루 할 수 없는 것일까.


지금 이 집에서 나와 함께 깨어있는 건 모기뿐이다. 아무리 모기 채를 휘두르고 보이는 순간 손으로 움켜잡아도 그는 나를 놀리듯 빠져나간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그녀. 우리 집엔 고양이 빼곤 남자가 없다(고양이도 네 명이나 되는 여자들의 히스테리를 견디느라 진이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 피를 빠는 그 모기도 암컷이라니…. 참, 징그럽고도 징그럽다. 모기, 그녀는 가끔 일부러 내 귀 곁을 일부러 지나다니며 앵앵 우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그 순간, 참 우리 집 여자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앵앵 울면서 피를 찾아다니는. 정열적으로. 그냥 피를 찾아다닐 수도 있지만 그녀들은 늘 앵앵앵- 울고 울부짖으며 몸서리치면서 자신이 미리 계산해둔 거리를 맴돈다.


“울지마.”


천장 어딘가에 거꾸로 매달려 있을 그녀에게 말해보지만, 그녀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난데없는 내 목소리에 엄마 옆에서 자던 동생이 “나 안 울었는데…”라며 잠꼬대했다.


처지를 생각하자면, 봐줄 만도 하지만 참을성이 없는 나는 전기 모기 채를 들고 온 방을 서성이다가 모기가 보이자마자 바로 내리쳐버린다. 타닥타닥, 전기 모기 채에 부딪힌 모기가 타버리는 소리를 들리면 나는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모기 채를 탁탁, 털어버린다.


“이제, 그만 자라.”


시끄러운 소리에 할머니가 잠이 깨신 건지 큰 소리로 외치셨다. 하나의 울음소리가 멈추면 다시 다른 울음이 터져 나온다. 귀찮음에 굴복하고 싶지만, 그 누구 어느 하나도 굴복할 수 없는 지금, 이 계절은 여름이다.



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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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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