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 필요해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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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5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어느 순간부터 칠판이 안 보인다고 했나? 안경을 맞추러 간 경위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 손을 붙잡고 안경점에 갔던 그 날의 날씨와 온도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하늘이 맑고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이었다. 한 번도 안경 쓴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안경을 쓴다고? 안과에 먼저 들렀던 우린 이제부터 안경을 써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곧바로 안경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엄마의 걱정스러운 말투가 불안을 더했다.


“이제 안경 쓰면 평생 벗기 어려울 텐데….”


그때까지만 해도 라식이나 라섹 수술은 굉장히 생소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반 친구 중에서도 갑작스레 안경을 쓰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안경 쓰는 아이들이 점차 많아지자 시력이 좋은 아이를 둔 다른 엄마에게 ‘애들 눈 관리는 어떻게 하냐’라고 묻는 대화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나도 어제까지만 해도 안경을 쓰지 않았던 친구가 어울리지도 않는 빨간 뿔테의 안경을 쓰고 와서 놀란 적이 있다.


“너 안경 써?”

“응, 이제 써야 한 대….”


교실에서도 평소 곧잘 얘기하고 같이 놀던 친구의 안경 쓴 얼굴이 이상해서 그날은 종일 친구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이젠 안경을 써야 한다니…. 침울했다.


안경점에 들어와서 색색의 수많은 안경테를 구경했다. 엄마도 처음 안경을 쓰는 내게 어떤 안경을 골라주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엄마는 우선 내 마음에 드는 안경테를 골라보라고 했다. 계속 진열대 사이를 오갔지만 나는 아무 안경테나 집어 들고 얼굴에 대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고 있으니 남자 직원이 몇 개의 안경테를 골라 들고 내게 다가왔다. 내키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써본 뒤 엄마와 직원이 그나마 잘 어울린다고 말했던 안경테를 구입했다. 렌즈를 맞춘 후 낯선 시야를 견디며 집으로 가는 길이 어색했다. 콧등을 누르는 안경 코받침판을 계속 찡긋찡긋 코를 움직여 밀어 올렸다.


안경이 싫어도 공부해야 하거나 무언갈 자세히 보려면 안경은 계속 써야 했고, 나이를 먹을수록 눈은 점점 더 나빠졌다. 그 사이에 안경테도 뿔테와 가는 테 그리고 현란한 색을 오가며 다양한 형태의 안경을 써왔다. 중학생이 되었을 땐 보랏빛이 도는 투명한 뿔테를 썼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검은색 가는 테의 안경을 썼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구릿빛이 도는 가는 테의 커다란 알을 지닌 안경을 썼다. 지금의 내 안경이다.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안경을 쓴 내 얼굴이 싫었다. 괜히 더 못나 보여서. 그래서 맛있는 음식 앞에서 친구들과 셀카를 찍을라치면 또는 단체 사진을 찍거나 남자친구와 둘이서 사진을 찍을 때도 “잠깐만! 잠깐만!” 다급하게 외치며 안경을 벗곤 했다. 그래서 20대 초중반의 사진을 보면 늘 안경을 쓰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진마다 안경을 벗은 모습이다. 때로는 사진을 찍는 순간에 제때 안경을 책상 아래로 숨기지 못해 한 손엔 안경이 들린 채로 어정쩡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을 여러 장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다 20대 중반이 넘어가고 나서부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안경을 벗는 것을 포기했다. 언제나 가장 예쁜 모습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서둘러 안경을 벗어내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턴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폰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안경을 벗어내는 것이 귀찮아졌기 때문에. 네이버박스를 열어보면 24살 즈음부터 안경을 쓰고 찍은 사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엔 그 사진을 보면서 ‘참 안 예쁘게도 나왔네.’라고 속상한 마음을 맘속으로 삭이며 ‘에이, 원래 안 예쁜 걸 뭘 어떡해…. 생긴 대로 살아야지.’ 속삭였다.


24살의 앳되어 보이는 내가 큰 안경을 쓰고 활짝 웃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신기한 건 이제 그런 사진 속의 나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번져 오른다는 것이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은 밖에서 안경을 벗는 일이 좀처럼 없다. 가끔 집에서만 벗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젠 안경 벗은 내 모습이 어색하다. 언젠가부터는 안경 쓴 내 얼굴이 예뻐 보이는 마법에(?) 걸리고 말았다. 어릴 적보다 살이 한가득 오른 나는 동글동글한 안경을 쓰고 함박웃음을 지을 때 눈이 살에 묻혀 사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젠 나는 이 얼굴이 아니면 전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요정이 나타나 누가 봐도 예쁜 얼굴로 바꿔주겠다고 하면 난 왠지 좀 오랫동안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막 새치가 나고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나도 여자로서 누군가 더 예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그 말에 잠시 혹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30년이 되는 세월 동안 외적으로나 또는 내적으로나 나의 모습으로서 살아온 나날들을 생각해보자면, 전혀 다른 ‘나’가 된다는 것은 오히려 더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버릴 것 같다. 나의 외모나 성격이 아무리 못났어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로서 살아갈 때 가장 의미 있다. 뭐, 누가 악의를 가지고 내 외모를 평가한다면 그날은 좀 속상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제 난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면 못 산다. 그렇게 나는 내 스스로에게 전우애마저 느끼고 말았다.


나에게 어떠한 단점이 있는지 이젠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러나 그 단점이 있다고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안경 벗은 뽀로로의 생얼만큼 어색한 얼굴은 아니다. 안경을 벗으면 오히려 수수한 모습이지만, 앞으로도 나는 안경을 벗어젖히고 사진 찍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내 얼굴 또는 지금의 삶이 100퍼센트 만족스럽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안경점에 처음 발을 내디딘 12살, 안경을 맞추러 온 어린아이가 온 힘을 다해 살아내고 만들어놓은 세상이다. 커다란 안경을 쓰고 멀뚱멀뚱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가 열심히 헤쳐온 길, 나는 다시 바통을 이어받아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안경 쓴 아이는 저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고 있다.


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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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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