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위해 카페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개 오전 11시다. 일과 중 두 번째에 해당한다. 7시나 8시쯤 고양이 옆에서 잠이 깨면 한 시간 동안 외출 준비를 한다. 아침은 뜨거운 물을 데워 대충 커피 가루를 탄 미지근한 커피 한 잔. 뜨거운 커피는 겨울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잠에서 깨기 위해 엄마가 할머니와 말씨름하는 것을 지켜보며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비우고 간단히 샤워한다. 약속이 있는 날이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바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지만, 보통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때가 많다. 그러나 약속이 없는 날에도 눈화장은 포기할 수 없다. 카페 사장님이나 직원들 혹은 카페에 오가는 수많은 손님을 신경 쓰는 건 아니지만, 아이쉐도우와 아이라인, 립스틱을 바르지 않으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하루를 조금이나마 더 나를 사랑하며 시작하고 싶은 작은 몸부림이다.
카페 문엔 귀여운 종이 달려있다. 문을 열면 경쾌한 종소리가 들리고 사장님이나 직원들은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하면 느릿느릿 카운터에 다가선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주문할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을 눈 뒤로 느끼며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방을 놓고 오늘은 어떤 빵이 있는지 둘러보는 척을 한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카운터로 다가간다.
“잠봉 바질 파니니 하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카페엔 여직원과 남직원이 오전마다 번갈아 출근한다. 내가 주문하면 여직원은 보통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음식이 준비되면 곧 불러드리겠다”라고 답하지만, 남직원은 늘 말없이 진동벨을 내민다. 이곳 남직원은 조금 시니컬한 편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불편한 기색 없이 도와준다. 저번에 여자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아 그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함께 밖으로 나가 아이에게 알려주듯 열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요청한 사용법만 딱 알려주며 여전히 불필요한 말은 전혀 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그는 분명 MBTI의 T 성향일 거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단골 카페지만, 다른 빵들은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주로 잠봉 바질 파니니와 치킨 바질 파니니를 주문한다. 맛있어서라기보단 이 두 가지 메뉴엔 늘 빠짐없이 토마토가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토마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방울토마토와 토마토(말하자면 큰 도마도? 흔히 불리는 발음을 생각해보자면) 중에선 큰 토마토를 좋아하는 편이다. 방울토마토는 햄버거나 샌드위치 안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이 작기에 더더욱 정이 가질 않는다. 방울토마토를 재료로 사용해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만든다면 빵 패티를 아주 조심스레 잡아도 아래로 내용물이 다 흘러내려서 옷을 버릴 것만 같다. 아무튼 과일이나 토마토 종류를 잘 찾아 먹지 않는 나는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면 반드시 토마토가 들어간 메뉴를 골랐다.
토마토. 어째서 ‘토’이고, ‘마’이고, 그다음에 다시 ‘토’가 오는 것일까. 입속으로 나지막이 되뇌어 보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그 발음이 나는 또 갑자기 신기하다.
토마토.
대부분 과일이 그렇듯 둥그런 모양이지만 토마토를 잘라보면 생긴 모양도 이름만큼이나 독특하다. 빨간색과 주황색을 섞은 듯한 노란빛이 마치 꽃 모양 같다. 빵과 여러 채소와 뒤섞인 채 슬라이스 된 토마토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 순간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겉과 속은 빨간데 그 안에 은밀하게 하얀 또는 연두색 빛을 띤 씨앗들이 가지런히 존재감을 뽐낸다. 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신비함을 알 수 없다. 시간을 들여 자른 토마토 안을 본 적도 없으면서 자기는 토마토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자른 토마토 안이 어떤 모양인 줄 아냐고.
물론 모든 과일이 저마다 각자 그만의 신비한 내부를 안고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주로 간단히 먹는 음식 속에 토마토가 들어있기에 토마토에 대해 좀 더 골똘히 생각할 기회가 많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름이 ‘토.마.토.’여서.
카페 직원들은 내가 오늘도 토마토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파니니를 주문한 지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파니니 메뉴가 사라진다면, 나를 위해 다른 빵 메뉴에도 재료로 토마토를 넣어주었으면 하고 속으로 바랄 뿐이다.
토마토가 든 파니니를 한 입 베어 물으며 나도 이 토마토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전혀 다른 음절이 들어있긴 하지만, 앞 음절이 마지막에 한 번 더 발음되어 세 살 어린아이도 그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토마토처럼. 또 밋밋하리만치 둥글기만 한 겉모양을 가르면 그 속은 다채롭게 채워진 토마토처럼.
어린 시절부터 난 굉장히 솔직했다. 비밀도 없이 모든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애.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
“너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어.”
“난 너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
그래, 내가 감정을 잘 들키긴 하지….
그게 싫어서 오랜 시간 동안 표정을 숨기는 연습도 해보고 표정 연기도 해봤지만, 이건 나에겐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생각이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열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토마토도 그러지 않을까. 둥글기만 한 겉모양 속에 그리도 다채로운 속을 품고서,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자신을 다 안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에게 묵묵히 침묵을 지키면서. 그래서 지난주처럼, 어제처럼 나는 내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토마토에게 다시 한번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이었다.
“어머,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네가 이렇게 예쁜 줄도 모를 뻔했네!”
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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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위 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