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갖기로 결심한 이유
처음 친구들에게 아이가 생겼다고 말했을 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딩크인 줄 알았어".
한 번도 딩크라고 결심한 적은 없었지만 전에는 임신이나 출산 같은 주제가 나오면 부정적인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몸이 달라지는 것도, 커리어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가장 걱정이 되었던 건 '내가 과연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였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회사에 다닌다. 결혼 전부터 다니던 회사를 아직까지 다니고 있는 엄마는 어린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서 본인 시댁, 나의 할머니댁에 어린 언니와 나를 맡겼다. 당시 우리 집에서 할머니댁까지는 차로 3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거의 매주 주말에 시댁에 갔다고 한다. 나는 너무 어릴 때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엄마는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꺼내면 미안하다는 말부터 한다.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과 본인이 키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참 많이 울었다고 한다. 야속하게도 아빠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다는 몰랐던 것 같다.
유튜브나 각종 매체들을 통해서 보면 요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육아에 참여하는 남편들이 늘어나고 지원 사업도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육아의 주체가 되는 건 대부분 '엄마'인 것 같다. 아이를 돌보느라 경력이 단절되고 그렇지 않으면 발을 동동 구르며 돌봐줄 사람을 찾는다. 어렵게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아도 '그래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같은 말을 듣기도 하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죄책감에 빠진다. 아빠들이 더 육아에 참여하고 싶어도 휴가 제도나 편의시설 따위는 엄마들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러다 보니 일하는 엄마들이 제일 먼저 도움을 청할 곳은 시댁이나 친정인데 어른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육아 가치관으로 고생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데에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점이 가장 크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여자, 남자 화장실을 제외한 가족용 화장실이 있어서 엄마 아빠 상관없이 아이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대부분의 식당에도 아이용 의자가 있다. 아직까지 바를 제외하고는 노키즈존을 본 적이 없고 어린아이들과 외출을 하는 가족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주위 사람들 아무도 떠드는 아이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주위에 피해가 갈 만큼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기만 하는 부모도 없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5년 정도 미국에 살고 있는 내가 본 풍경은 그렇다.
미국이 좋은 점은 또 있다. 미국에서 나에게 의지할 사람은 남편 밖에 없다. 둘 다 아이를 낳아본 적도, 키워본 적도, 심지어 별로 본 적도 없어서 아주 고생을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둘만 의견을 조율하면 그만이다. 동네를 다니다 보면 엄마든 아빠든 유모차를 밀며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아이가 없어도 조깅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 절대 그게 내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다녀도 주위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다. 시댁도 친정도 모두 한국에 있고 여기에는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주실 이웃분들도 없다. 그게 힘든 점도 되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장점이다.
나와 남편이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면서 한 약속이 하나 있다. 아이가 태어나도 절대 서로를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부르지 말고 지금처럼 이름으로 불러주기. 서로를 존중해 주기. 엄마랑 아빠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미국이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 살기로 결심을 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