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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y 26. 2022

비바람이 없어도.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통역해주는 간호사는 검사실로 들어가 누울 곳이 있냐고 물어봤고 직원 사무실의 휴식용 베드에 겨우 누울 수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병원에 누울.곳이 직원 사무실이라니정신없는 와중에 그런 생각 했었던걸 보면 정신을 정말 놓지는 않았었나 보다.

간호사는 나에게 마실 물이 있는지 물어봤고 챙겨 오지 않았다고 하니 밖에 나가 뜨거운 차를 얻어왔다.

근처에 정수기도 없고, 차가운 물은 즐기지 않는 중국인들의 취향이 그대로 보인다. 차가 식을 때까지 누워 눈을 감고 혼자 주문을 걸었다.

'괜찮다, 다 끝났다, 난 이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괜찮다...'


나름 큰 일에는 담대하다 생각했던 나인데 담대는 얼어 죽을,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구나...

아마도 내가 담대하지 않고 겁이 많다는 것은 나만 모르고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으로 괜찮지 않았는데... 왜 나는 괜찮다고만 할까...

나를 왜 이렇게 몰라주고 혼자 속으로 삭히려고만 했을까... 무섭다, 힘들다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에게 꽤 어려운 일이다.




한참 누워있으니 땀이 식은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떠 네모 반듯한 석고보드 천장을 보며 담대한 척했던 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들어오는 햇빛을 쬐며 창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거짓말 같은 이 상황을 떠올리며 멍하니 누워있었다.

내가 눈을 뜨니 간호사는 조금 전 내가 저혈당이 온 것 같다며 초콜릿이라도 먹어야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저혈당이 아니라 긴장이 풀린 것이라 확신했지만 우선 뭐라도 입에 넣고 진정시킬 필요는 있었다.

그사이 뜨거운 차는 마시기 좋게 식었고 병원 진료를 보러 왔던 지인에게 부탁한 초콜릿바와 시원한 생수도 도착했다.

한입씩 삼키고 숨을 고른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춘절 휴일이라 집에 있어야 했던 아이들은 잠시 볼 일 보고 온다는 말에 둘이서 잘 기다려 주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몸살이라도   같아 한숨 자고 나오겠다 했더니 자유시간을 얻었다며 좋아한다. 이유야 어떻든 엄마 감기 기운 있다고 조용히  닫고 나가줄 만큼 컸네...

하지만 아무리 컸다 해도 누워있으며 생각만으로도 목이 메어오는 존재, 아이들을 떠올리다 보니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훌쩍거리다 보면 검사 부위가 불편해 잠도 오지 않고 한참을 뒤척였다.

음악으로 마음을 위로받아본 적이 별로 없는데 뭐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한동안 즐겨 듣던 노래를 나지막이 틀었다.

'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노래덕분인지 피로했는지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났다. 아이들 저녁은 챙겨야지...

마트 다녀올게! 하고 나섰는데 '딩동' 메시지가 왔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조직 검사는 당일이 되어서야 불가능하다 해서 사람 속을 2주 넘게 애태우더니 3일 걸린다는 결과는 당일에 나오다니?!

검사 결과지는 자동 발급기에서 직접 프린트를 해서 진료를 보러 가야 하는 시스템이라 의사와 만나기 전 먼저 확인이 가능했다.

아... 어쩌지? 금요일 진료 날 결과지를 받아볼까, 아니면 지금 가서 결과지라도 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택시를 잡아탔다. 문자를 본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집 근처 병원으로 가는 길, 왔다 갔다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마트 갔다 시장도 들렀다 온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진료 시간이 끝난 후라 자동 발급기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 환자 카드를 넣고 검사 결과 인쇄 버튼을 누르자 A4용지 한 장이 인쇄되어 나왔다.

온통 중국어였지만 간단하게 한 문장이 쓰여 있길래 “양성 결절로 확인되었습니다.” 일거라 생각하며 번역기를 돌려보았다.

그 한 문장을 읽는 몇 초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번역 완료,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

"조직검사 결과 유두암으로 진단되었습니다."


다시 번역기를 돌렸다.

다시 돌렸다.

다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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