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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n 04. 2022

힘든 숙제

내가 암이라니...어떻게 알려야할까.

가끔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죽을병에 걸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상상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왜 내가? 왜 하필 내가??

눈물도 나오지 않고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마트에 다녀온다고 집을 나섰으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눈에 초점이 반은 나간채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국인이니 물으며 거울로 나를 보는 택시기사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택시 기사도 슬쩍 한번 나를 보고는 더 이상 말이 없다.

덜덜덜 손이 떨리기 시작하는 나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필 퇴근 시간과 겹쳐 택시가 움직이지 않았다.

신호 대기 중인 도로에서 내리겠다고 말하고 금액을 지불하고 걸어 나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남편 목소리를 듣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엉엉엉, 나 암 이래..."

벌써 결과가 나온 거냐고, 확실한 거냐고, 그만 울라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남편.

아닐 거라고 나에게 확신을 심어줬던 남편의 리액션도 고장이 났다.

전화를 통해 울고 위로하며 한참을 통화하다 눈물을 닦고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겨우 진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소한 걸로 다투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아프면 우리 아이들 중재는 누가 해줘야 하나 싶은 생각에 또 눈물이 났다.

빨래 건조대에 걸린 아이들 속옷을 정리하다 이렇게 작은 팬티를 입는 어린것들을 두고 내가 아파서 어떡하지,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하다 이렇게 챙겨주지 못해서 어쩌지,

수학 문제집 체크도 못해주겠구나 생각하며 숨죽여 울었던 며칠이었다.

사소하고 귀찮다 여겨졌던 일들이 내가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pixabay


보통의 날들이 귀하다 했지만 어쩌면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프다는 말을 듣고서야 지금 이 순간들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

어쩌면 이 사소한 날들을 다시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한편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더 착하게 살걸..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인지 억울하고 서러웠다.


우리 아이들은 어쩌지,

남편은 어쩌지, 부모님은 어쩌지,

나는 어쩌지….

그러다가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오진입니다.'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눈앞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아무리 느린 암, 착한 암, 거북이 암이라지만 정확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이곳에서 암 수술을 받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는 결정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가장 빠른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가 치료받기를 강하게 원했다.

우선 서류 문제와 아이들 학교, 한국에서의 병원 일정 등을 고려해 출국 날짜를 정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소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하는 것이다.


암 확진을 받고 가장 힘든 첫 번째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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