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성찰 에세이
발령을 받고 쉼 없이 달려왔다. 알게 모르게 몸과 마음이 꽤 지쳐있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간이었다. 결국, 잠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문화 교육 관련 파견 교사직을 신청했고 감사하게도 필리핀에 갈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멈추는 바람에 나의 꿈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적의 노래 당연한 것들의 가사처럼 봄바람 살랑이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장기전이 되었고 학교는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해가며 혼돈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1학기는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온라인 수업에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수업 방식이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기분이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어느 정도 코로나19 상황에 익숙해지자 내 마음 한편에서는 올해 하고자 했던 일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 바로 성찰.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살아왔던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이 걱정되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점은 무엇인가? 내 주변에는 누가 있는가? 내가 질문을 던지고 내가 대답을 했다. 이 정도면 혼자 놀기의 고수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왜냐하면, 정답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싸하고 남들이 수긍할만한 답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답을 찾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만의 답을 만들어 가야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영혼을 치유하는 의술’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습관대로 살지 말고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길 희망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실천해 본 시간은 꽤 만족스러웠다.
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고민의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학교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글로 남겨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는지 또 그런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했다. 이 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최대한 솔직하게 적으려고 노력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핑계로 아름답게만 묘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교사로서 살아온 8년이라는 시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별이 되는 과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 부딪히고, 폭발하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결국엔 아름답게 빛나는 일. 그동안 나라는 세계에만 갇혀 살다가 타인을 통해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은 혼란스러우면서도 끝내는 달콤한 맛이었다.
나무는 처음 싹을 틔우고 약 5년 간은 성장을 멈춘다고 한다. 위로 쑥쑥 자라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5년씩이나 성장을 하지 않는다니 참 의아했다. 알고 보니 그 시간 동안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 내리는 일에 집중한다고 한다.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야만 몇백 년을 사는 튼튼한 나무가 될 수 있다고. 지금까지 교사로 살아온 8년은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십 년을 교사로 살기 위해 꼭 필요했던 시간. 단단한 교사로 성장하기 위해 나에게는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교사로서 여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어진 것에 적응하기 바빴다면 앞으로는 내가 꿈꾸고 원했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 보고 싶다. 교사로서 봄이라는 시간은 숨 가쁘게 달려오기 바빴다. 옆도 뒤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래서 앞으로 주어진 여름이라는 시간은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가고 싶다. 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다. 교사로 움틀 수 있어서 행복했고, 교사로 꽃 피울 날이 기대되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