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성찰 에세이
교사로 살면 살수록 더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유명한 선생님들의 연수를 들었다. 협동학습, 비쥬얼씽킹, 교육연극, 그림책 읽기, 감정코칭, 학급긍정훈육법 등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다고 하는 연수는 열심히 찾아 들었다. 연수는 유익했고 실제로 교직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연수를 듣고 또 들어도 여전히 마음이 공허했다. 내가 정말 좋은 교사일까? 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교사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오리엔테이션 날이라고 기억한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왜 대학원에 입학했는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이야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다들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고 좋은 교사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렇게 5학기를 함께 공부했다. 대학원 수업은 대학교 수업과는 매우 달랐다. 교수님께서 정해주신 책을 읽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논제를 제시하고 토의 토론하는 수업이 주를 이루었다. 교수님들께서 제시해주는 책은 주로 고전이었다. 플라톤의 대화편,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 불교의 대승기신론 등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책들이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해나갔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 교육이 비판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식 교육이 문제라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AI가 교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초등교육과 중고등 교육은 무엇이 다른가? 교사와 학생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아이들의 흥미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교육과정과 아동 간에 균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다. 다만 질문을 구체적으로 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우리들의 질문은 매우 광범위하거나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질문을 쪼개고 다듬어야 했다. 논문을 쓰는 것은 결국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쓰는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좋은 질문을 하는 훈련이 필요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질문의 중요성이었다. 우리는 답만 찾아 헤매지만 사실 질문이 없다면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현명한 질문을 했을 때 현명한 답이 따라온다. 그동안은 남들이 찾은 답에만 몰두했었는데 대학원 수업 이후에는 내 질문에 집중하게 되었다.
단연 내가 궁금한 것은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결국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나보다 앞서 이 질문을 고민했던 듀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듀이는 ‘지식 교육과 삶의 괴리’라는 생각을 학문적 논의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는 전통적인 지식 교육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원론을 분석하고 최종적으로는 이론과 실제, 앎과 삶의 괴리를 ‘경험 이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지식을 아동의 삶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가르쳐 지식과 삶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아동의 삶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르치고 아동이 직접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고 본 것이다. 나는 듀이의 아이디어가 꽤 마음에 들었다. 교육을 앎으로 제한하지 않고 삶에서 앎, 그리고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좋았다. 듀이의 생각을 듣고 있자니 그동안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교수학습법과 아이들의 흥미를 끌만 한 교수학습자료를 찾아 헤맸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듀이의 경험 이론에 관해 논문을 쓰고 그렇게 대학원을 졸업했다.
교육은 사전적 정의로 인간을 기르는 일을 의미한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교육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교육을 사유하게 하는 일로, 어떤 사람은 공동체에서 살아갈 시민을 기르는 일로, 어떤 사람은 미래역량을 키우는 일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삶에서 앎, 그리고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교육도 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육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또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과 함께 경험을 공유하고 교사로서 가지고 있는 고민을 나누고 싶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육자로서의 지평을 계속해서 넓혀가기를 소망한다.
이현아 선생님은 그림책 수업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사실 책을 학습자료로 하여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은 많다. 하지만 이현아 선생님의 수업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그녀는 자신을 ‘문장 수집가’로 소개했다. 아이들이 교과서나 공책 끄트머리에 적은 사소한 문장들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그 사소한 문장들에 아이들의 진심이 담겨 있기에 그것들은 쉽게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그림책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아이들이 그림책을 만들면서 제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아이들 저마다 지닌 생각들을 마음껏 표현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제 연수를 들을 때면 강사분들이 교육에 관해 어떤 고민을 하셨길래 이런 참신한 교수학습법을 고안하셨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교육 철학에 호기심이 생긴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꼭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은 너희에게 선생님의 세계를 보여줄 뿐이야. 그러니 너희들도 너희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렴.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질문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그렇게 너희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렴.” 누군가가 나에게 교사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면 교사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