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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별 Sep 14. 2022

교사 4년 차

초등교사 성찰 에세이


안녕? 외계인                      



  교사들의 새 학년 배정은 12월부터 시작해서 2월 즈음에 마무리된다. 교사들이 제일 피하고 싶은 학년은 단연 6학년. 교사들 사이에서 6학년 담임을 연거푸 맡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교사 4년 차에 드디어 6학년 담임이 되었다. 나 스스로 6학년을 지원하긴 했지만, 막상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자니 꽤 긴장되었다. 봄방학 내내 선배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고 연수를 찾아 들으며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기대와 걱정으로 아이들을 만났다. 20명 남짓 되는 아이들과 마주 보고 서자니 확실히 이전에 가르쳤던 아이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4학년과 5학년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면, 6학년 아이들은 무슨 말 하나 들어보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와 아이들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는 듯했고 이 벽은 생각보다 단단해 보였다. 이전에는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내 책상 주변으로 몰려들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6학년은 자기네들끼리 놀기에 바빴다. 쉬는 시간에 고상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편했지만, 마음은 교실에 홀로 외로이 있는 작은 섬 같았다.


  6학년 아이들은 바로 아래 학년인 5학년과도 전혀 다른 특성을 보였다. 교사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명체. 마치 외계인 같았다. 사춘기를 겪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나와 아이들 간에 느껴지는 이 거리감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6학년 아이들은 다른 학년 아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6학년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런 궁금증으로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외계인 관찰이랄까. 아래는 내 나름대로 적어본 외계인 관찰 보고서이다.



  첫째, 외계인들은 학습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한 차시에 생각보다 많은 양의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 외계인들은 교사보다 친구를 더 좋아한다. 짝을 지어 수학 문제를 풀게 했더니 효과가 좋다.

  셋째, 외계인들은 아이돌에 관심이 많다. 외계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이름 정도는 알아두자. 그리고 아이돌에 대한 비판은 절대 삼갈 것.

  넷째, 외계인들은 주장은 있는데 근거가 없다. 근거가 있더라도 자기중심적이다. 외계인들을 설득하려면 꽤 논리적이어야 한다. 변호사처럼 준비할 것. 

  다섯째, 외계인들은 하루 사이에도 관계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여자 외계인들의 미묘한 변화를 잘 읽을 것!

  여섯째, 외계인들은 교사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이들 앞에서는 순간의 표정도 조심할 것.

  일곱째, 외계인들은 교사와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 것.

  여덟째, 외계인들은 손들어서 발표하지 않는다. 교사의 질문에 대답이 없다고 속상해하지 말 것. 대신 글쓰기를 하면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아홉째, 외계인들은 영상편집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 가끔은 학습 결과물을 영상으로 요구할 것!

  열째, 외계인들은 쉬는 시간에 교실에 없다. 자기들만의 비밀 장소가 있는데 종이 치면 다시 돌아오니 너무 걱정하지 말 것!

  최종결론! 외계인들을 가르칠 때는 최대한 설명을 줄이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줄 것. 외계인들은 자기주장이 강하니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되 잘못된 주장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설득할 것. 외계인들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되, 간섭하기보다는 중재자 역할을 할 것. 외계인들은 생각보다 교사에게 관심이 많으니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가 관계 맺을 것!



  부모들의 멘토로 불리는 오은영 박사를 좋아한다. 교사와 부모는 비슷한 점이 많아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녀의 아이디어를 참고할 때가 많다. 오은영 박사에 따르면 부모는 아이를 섬세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주기를 원하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부모가 아무리 사랑을 줘도 아이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내가 만약 6학년 아이들을 기존의 방식대로 사랑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지치고 나는 나대로 서운해 감정의 골만 더 깊어졌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새 학년을 시작하기 전에 교육과정을 작성한다. 교육과정은 아이들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신규교사 때는 아이들의 특성을 분석하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취 기준이 이미 주어져 있고 교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르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6학년 담임 이후,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달았다.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 방식대로만 가르치는 것은 허공의 메아리나 다름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직 만나지 못한 외계인들이 있다. 나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교사 10년 차까지 모든 외계인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제는 외계인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할 것이다. 안녕? 외계인, 만나서 반가워. 너희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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