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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별 Sep 14. 2022

교사 3년 차

초등교사 성찰 에세이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교직 3년 차에 꿈의 학년이라 불리는 4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저학년처럼 몸이 힘들거나 고학년처럼 정신이 힘들지 않기에 많은 선생님께서 중학년을 선호한다. 그러나 학년 발표가 있던 당일, 부끄럽게도 교장 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었다. 이유는 우리 반에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짝을 바꿀 때 얼굴에 모든 감정이 드러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짝을 만났을 때는 입꼬리가 씰룩거리지만, 자신이 싫어하는 짝을 만났을 때는 입이 툭 튀어나온다. 아이들에게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랬던 나는 입이 툭 튀어나오는 것도 모자라 엉엉 울어버렸다.


  3월 2일. 드디어 그 아이를 만났다. 아이를 어디에 앉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맨 앞자리에 앉혀야 하나, 맨 뒷자리에 앉혀야 하나, 뽑기로 아무 데나 앉혀야 하나. 결국, 가장 뒷자리에 혼자 앉혔다. 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였다. 나와 이 아이 사이의 심리적 거리이기도 했으리라.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폐증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교육대학교에서 장애 아동에 관해 배운 적이 있으나 실제적인 경험은 없었다. 


  한 교실에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건 흡사 전쟁과도 같다. 가르쳐야 할 것은 많고 아이들마다 배우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어떨 때는 몸이 열 개 아니 팔이라도 열 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장애가 있는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돌발 행동을 하면 수업이 중단되기 일쑤였다. 일반 학생과 장애 학생이 한 교실에서 함께 배우는 것을 통합 교육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통합 교육에 대한 의구심만 쌓여갔다. 우리가 함께했을 때 이 아이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오히려 서로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서 나는 그 아이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아이는 생리적 욕구나 자신의 감정 정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든지, 피곤해서 자고 싶다든지, 소리가 시끄러워서 불편하다든지 이런 것들은 간단한 단어와 문장으로 말할 수 있었다.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책상에는 항상 빈 종이와 색연필이 한가득하였다. 특히 병아리를 잘 그렸는데 어미 닭 뒤로 작은 병아리들을 그린 그림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울거나 화를 냈고, 울다가도 갑자기 웃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감정이 롤러코스터만큼이나 시시각각 변했다.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특정 행동을 반복해서 하는데 이를 상동 행동이라고 한다. 이 아이의 상동 행동은 구멍만 보이면 물건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하교한 뒤 교실을 청소할 때면, 교실 이곳저곳에서 색연필이며 지우개 등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듯했다. 급식은 항상 내 옆자리에서 먹었는데 김치를 정말 좋아했다. 그 아이만 보고 있자면 오늘 가장 맛있는 메뉴가 고기반찬이 아니라 김치인 것 같았다. 


  자폐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과 같은 상태를 일컫는다. 그래서 사회적 교류나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최소한 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보다 이 아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지의 세계였던 자폐증에 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나와 너였던 관계가 우리의 관계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에게 한 계절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우리’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우리 학교, 우리 교실, 우리 반 아이들. 처음 내가 우리 반을 맡고서 엉엉 울었던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우리라는 범주에 이 아이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낯섦과 그리고 선입견이 더해져 우리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가 된 것이다. 게다가 교육을 ‘지식을 전달하는 일’로 한정 지어 생각했기에 통합 교육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것을 배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계속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물론 통합 교육에서 시스템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은 많다. 그러나 통합 교육의 필요성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YES라고 답할 것이다.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되어 가는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멋진 일이었기에!


  언젠가 버스를 탔을 때 옆자리에 자폐증이 있는 고등학생이 앉은 적이 있다. 그 학생은 큰 소리로 말했고 웃다가 울다가 화내기를 반복했다. 솔직히 덩치가 큰 학생이 이런 행동을 하니 겁이 나고 혹시 나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 순간 그 아이를 떠올렸다. 울다가 웃다가 감정이 시시각각 변했던 그 아이.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던 그 아이. 그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만약 그 아이를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버스에서 자리를 옮기거나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탔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한다고 해서 도대체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던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 처음에는 눈물로 얼룩졌던 만남이었지만 헤어질 때는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운 인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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