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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별 Sep 14. 2022

교사 2년 차

초등교사 성찰 에세이

 

자다가도 벌떡                              



  1년 차에 이어 다시 5학년 담임이 되었다.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 똑같고,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의 특성도 비슷하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첫해 미숙했던 점들을 보완하며 점차 교사 생활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1년 차에는 퇴근 시간을 넘겨 가며 교실에 남아 있던 날도 많았으나 2년 차에는 매일 정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봄바람이 불던 나날에 구름이 끼기 시작한 건 5월쯤부터였다. 한 아이가 화가 나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교사마다 가르치기 힘든 아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감정 통제가 안 되는 소위 욱하는 아이들이 가장 힘들다.


  욱하는 아이에 대한 공포는 1년 차 때부터 생겼다. 1년 차에도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를 가르쳤는데 매일 전쟁이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분노했고, 나는 나대로 소리를 질렀다. 서로의 말은 허공에 맴돌기만 했고 서로의 가슴에 상처만 남겼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욱하는 아이에 대한 첫 단추를 단단히 잘 못 끼운 것이다.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다. 무력감이 나를 가득 채웠고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도하고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해서 맞은 2년 차 교사 생활이었으나 결국은 욱하는 아이를 또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1년 차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화가 나고 답답하고 다시 무력감에 휩싸여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때 알았다.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런 아이들을 계속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마다 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교사의 삶을 계속 살 것인지 멈출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나는 계속 교사로 살고 싶었고 욱하는 아이에 대한 공포를 직면하기로 선택했다.


  1년 차 때의 기억을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다양했다. 급식실에서 친구를 놀리자 밥 먹는 아이를 붙잡고 이십 분 넘게 혼냈던 일. 교과 시간에 수업을 방해하여 담임인 나에게 보내졌을 때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해버린 일. 한겨울에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온 아이가 덥다며 선풍기를 틀자 네가 옷을 벗으라며 싸우던 일. 등교하면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게 예의라고 억지로 인사시켰던 일.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아이와 싸우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왜 교사인 나는 아이를 가르치지 않고 아이와 싸우고 있었을까? 이 질문이 나를 강하게 붙잡았다. 감정코칭법으로 유명한 미국의 가트맨 박사는 아이의 감정을 지도하기 전에 교사의 감정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교사가 아이의 감정을 코칭 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먼저 코칭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더 솔직하게는 그 아이가 너무 미웠다. 왜 그 아이가 미웠을까? 나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를 좋은 교사로 인정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욱하는 아이 하나 통제 못 하는 무능력한 교사였다. 그 아이가 나에게 반항할 때 다른 아이들이 쳐다보는 눈빛이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미웠다. 내 감정을 읽는 순간, 그 아이와 상관없이 내 마음은 호수에 묵직한 돌멩이가 가라앉듯 편안해졌다.


  감정을 읽은 뒤로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관념들에 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왜 나는 좋은 교사로 인정받고 싶은가? 누구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 타인의 인정이 중요한가? 아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교사는 무능력한가? 내가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온 관념들을 살펴보는 것은 꽤 흥미로우면서도 힘든 일이었다. 어떨 때는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꼭 껴안아 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거울을 보듯 나라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고, 나를 마주하는 일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욱하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은 어렵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뿐. 다만 1년 차 때처럼 아이와 목청 높여 싸우지 않는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템플스테이에서 스님과의 대담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어떤 분께서 직장 상사 때문에 괴롭다고 넋두리를 하셨다. 한참을 듣고 계시던 스님께서 직장 생활 몇 년 하셨냐고 물으시더니 ‘그 정도 직장 생활했으면 그런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야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공감과 위로의 말씀을 해주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따끔하게 혼을 내신 것이다. 그 순간 스님이 얼마나 냉정해 보이시던지! ‘모든 것은 내 마음으로부터’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한없이 원망스러운 말 같지만, 결국에는 두 다리에 힘주어 다시 걷게 만든다. 교사로 살면서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것이다. 교사의 삶을 멈추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왜 내가 교사로 살고 싶은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학교에 있을 때 즐겁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 신이 난다. 교사로 살기로 다짐했기에 앞으로 만나게 될 장애물들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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