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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별 Sep 14. 2022

교사 1년차

초등교사 성찰에세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선생님으로 정식 발령받은 첫해, 5학년 아이들의 담임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하얀 도화지 같은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으나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 무기라고는 임용고시를 보느라 달달 외운 교육과정과 교육대학교에서 배운 교수법과 교생실습생 시절 곁눈질로 익힌 약간의 기술들뿐이었다. 결국, 신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작정 이것저것 해보는 것뿐이었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우리 반 아이가 이렇게 말했을까. “신규 선생님 반은 한눈에 알 수 있어요. 교실에 뭐가 덕지덕지 붙어 있거든요.”


  3월 한 달 동안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이들 행동 하나하나가 다 문제처럼 보였다. 왜 상대방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할까? 왜 발표할 때 목소리가 이렇게 작지? 왜 5학년이 1학년처럼 일기를 쓰는 걸까? 나는 아이들을 둥글고 예쁜 조약돌처럼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는 하기 싫었다. 고심 끝에 몸이 힘들긴 하겠으나 아이들을 감동하게 할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 스스로 좋은 교사라며 뿌듯해했다. 아이들도 편지를 받고 좋아할 것이라고 편지를 쓰는 내내 얼마나 설렜나 모른다. 아이들 스스로 성찰하고 문제 행동을 고치게 해야지! 앞으로 생활지도 때문에 머리 아플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행복한 상상이었다. 


  편지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 누구는 수업 중에 산만하더구나. 선생님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보렴. 우리 누구는 수줍음이 많더구나. 자신감을 가지고 큰 목소리로 발표해보렴. 우리 누구는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잘 지내더구나. 다만 학습에도 더욱 신경을 쓰렴.’ 아름답게 포장해서 편지이지 사실은 아이들의 단점이 가득 담긴 충고였다. 편지를 받은 아이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차라리 잔소리하시지!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이들의 불편한 감정을 읽지 못했고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달 아이들의 단점을 적어 편지를 썼고, 심지어 편지를 책상에 붙이고 매일 들여다보면서 노력하라고 말했다. 


  그러다 학년이 끝나갈 때쯤 캔 블랜차드가 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라는 이야기이겠거니 하면서 책을 읽는데 이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보세요. 그러면 칭찬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있어요.’ 그 순간 온 세상이 멈춘 느낌이었다. 그동안 줄곧 아이들의 부정적인 면을 봐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가 문제였다. 아이들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도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아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 느린 게 아니라 신중한 거구나. 아, 융통성이 없는 게 아니라 규칙을 잘 지키는 거구나.’ 생각해보니 사람의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끝없이 단점에만 집중했을 뿐! 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보는 시선이기도 했다. 그동안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채찍질하며 살아온 나 자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시큰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아이들의 단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선생님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 우리 반에서 단점이 가득 담긴 편지는 사라졌다. 아이들은 편지에 관해 묻지 않았다. 아마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대신 진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겨울 방학 내내 아이들의 장점을 떠올리고, 고마웠던 점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학년을 마무리하며 헤어지는 날 아이들을 안아주면서 편지를 나눠주었다. 그렇게 단점이 가득 담긴 편지는 고마움의 편지가 되었다.


  교생실습생 시절 30년 경력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매일 아침 학교에 오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해. 아이들과 전쟁을 하러 갈까, 아니면 사랑을 하러 갈까. 그러다가 다짐해. 오늘도 사랑하고 와야지.” 이제 서야 이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일이 너무나도 어렵기에 30년 경력의 교사도 매일 아침 다짐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   해를 거듭할수록 교사와 아이들 간에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교육의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몸소 실감한다. 그렇기에 3월부터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을지라도.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첫 관문은 교사가 아이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면서 이렇게 말해야지. ‘오늘도 사랑하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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