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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별 Sep 14. 2022

교사 6년 차

초등교사 성찰 에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교직 6년 차에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를 떠나 두 번째 학교로 전근을 하였다. 5년마다 학교를 옮기게 되니, 만약 정년까지 교사 생활을 한다면 약 여덟 개의 학교를 거쳐 가게 될 것이다. 그중 두 번째 학교였다. 두 번째 학교는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괜스레 미운 마음이 올라왔다. 정들었던 첫 학교를 떠나는 것이 내심 속상했나 보다. 마치 친정집을 떠나는 느낌이랄까?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두 번째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직 기간이 짧지만 그래도 교직 생활 중에 힘든 순간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학교를 옮기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똑같이 교육을 담당하는 곳인데 각 학교는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누어 준 교과서 말고는 모든 것이 다 다르다. 경력이 많으신 베테랑 선생님께서도 학교를 옮기시면 다시 처음부터 배우셔야 하니 꽤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근을 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일할 때면 항상 듣는 말이 있었다. ‘이 학교는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 마치 우리 학교를 남의 학교 말하듯 하셔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았는데 학교를 옮기고 보니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에 온 느낌이었다.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듯이 학교마다 고유의 학교 문화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생활 방식, 소통하는 방식, 집중하는 영역, 특별한 행사까지! 첫 번째 학교에서는 교직 경력이 전혀 없다 보니 그 학교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 번째 학교에서는 나에게도 기준이 생겨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멈칫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꾸 첫 학교와 비교하게 되었다.


  두 번째 학교에서 처음 맡았던 업무는 학생 자치 교육 활동이었다. 학급 임원과 전교 임원을 선출하고 전교 학생 회의를 지도하는 일이었다. 첫 학교에서는 전자투표 방식을 사용했는데 두 번째 학교는 종이투표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전자투표 방식과 종이투표 방식은 둘 다 장점이 있었지만 나는 효율성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나에게 익숙한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결국, 종이투표 방식을 폐기하고 전자투표 방식을 새롭게 도입했다. 예전에는 전교 임원을 뽑을 때 강당에 모여 후보자들의 연설을 듣고 곧바로 투표와 개표를 했다고 한다. 전자투표를 진행하니 한 곳에 모일 필요가 없었다. 각 반에서 방송으로 후보자들의 연설을 듣고 전자투표 프로그램으로 투표와 개표를 빠르게 끝냈다. 나 스스로 복잡한 일을 잘 끝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왜 갑자기 투표 방식이 바뀐 것이냐며 질문을 했다. 그전에는 우리가 직접 투표도 하고 개표도 했는데 왜 이번에는 그런 시간이 없었냐며 아쉽다고 했다. 내가 익숙한 것을 그리워하였듯이 아이들도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두 번째 학교는 첫 학교와 다르게 한 학년에 두 학급에서 세 학급밖에 없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투표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다 모여도 1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종이투표 방식으로 전교 임원을 선출해 온 것이었다. 물론 아이들이 선거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는 교육적인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학교라는 특성이 이러한 문화를 만드는 데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종이투표는 낡은 것이고 전자투표는 혁신이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왜 이 학교에 이러한 문화가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빠르고 편하게 업무를 끝내고 싶었다. 1학기에는 종이투표 방식으로 진행하고 2학기 때 전자투표를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전자투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오랜 시간 이런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에게 예의 없이 군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인가 새롭게 시도해 보는 것은 좋았지만 조금 더 겸손해야 했다. 


  이후 가을 운동회에서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운동회는 레크레이션 업체가 와서 규칙을 설명하고 곧바로 경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학교도 이와 같은 방식이었으나 줄을 서서 입장하고 퇴장하는 것은 일주일 정도 연습했다. 그러나 두 번째 학교는 사전에 아무런 연습을 하지 않았다. 리허설 없이 바로 라이브로 진행된 것이다. 학부모님들도 오실 텐데 아이들이 우왕좌왕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첫 경기로 우리 학년의 게임이 진행됐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줄을 세워 내보내려고 했다. 급히 아이들을 불러 모으려는데 아이들이 엉덩이 한번 털고 알아서 경기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이 끝났다는 신호에 맞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첫 번째 학교에서는 운동회를 할 때마다 줄을 세워 내보내고 들여보내는 게 일이었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두 반이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서 경기하는데 굳이 줄을 설 필요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줄을 서서 입장하고 퇴장하는 것이 번거롭고 불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운동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그저 넋을 놓고 한참을 구경했다. 


  문화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문화란 그 환경에 적응한 사람들이 살다간 흔적이자 역사이다. 단순히 내 기준으로 다른 문화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기존의 문화를 비판 없이 수용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기존의 문화를 바꿀 것이고 시대 변화에 맞춰 개선해 나갈 것이다. 다만, 문화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왜 이러한 문화가 만들어졌는지 호기심을 갖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것을 대할 때는 겸손의 미덕이 필요하다. 앞으로 몇 차례 더 학교를 옮길 것이다. 그때마다 두 번째 학교에서 느꼈던 것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야호! 난 지금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를 모험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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