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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별 Sep 14. 2022

교사 7년 차

초등교사 성찰 에세이


친절한 교사                                



 교사 5년 차에 이어 7년 차에 다시 한번 2학년 담임에 도전했다. 나에게는 나름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5년 차에 2학년 아이들에게 무참히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이쮸 젤리에 의존하며 살았다. 2학년 아이들은 나와 다른 사람 같았다. 마치 별에서 온 그대라고나 할까나? 분명 내 인생에도 2학년이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도저히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젤리 따위에 의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내가 5년 차에 실패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역사책을 보면 훌륭한 장수들이 여인의 아름다운 미모에 홀려 전쟁에서 패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내가 5년 차에 처참히 실패한 원인은 2학년 아이들의 귀여움에 현혹 당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6학년을 가르치다가 곧바로 2학년을 가르쳤기에 더더욱 아이들에게 홀려있었다. 저학년의 귀여움은 가히 치명적이다. 몸도 손도 발도 옷도 가방도 모든 것이 다 작다. 등교하는 순간부터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와 보드라운 볼에서 퍼지는 로션 냄새가 내 코를 간지럽힌다. 교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면 정말이지 귀여워서 괜히 한번 건드려 보고 싶다.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할 때면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고 내 마음은 다 녹아내린다. 친구와 싸우면 입이 삐쭉거리다가 결국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데 그것마저 사랑스럽다. 저학년과의 생활은 요즘 말로 심쿵의 연속이다.


  저학년을 가르칠 때 중요한 것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학교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 생활 습관을 잡아주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규칙들을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훈육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훈육에는 재능이 없었던 모양이다. 귀여운 것은 귀여운 것이고 그것과 구분해서 잘못했을 때는 올바르게 가르쳐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을 훈육하다가도 마음이 약해져서 봐주기 일쑤였고 아이들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대신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아이들이 청소할 때 유독 마음이 약해졌다. 저학년은 만들기 수업이 많아서 수업 후에는 교실이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게다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활동해도 좋다고 했으니 교실은 전쟁이 난 것처럼 더러웠다. 손이 빠른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활동을 마치고 정리도 끝냈지만, 문제는 신중하고 느긋한 아이들이었다. 속도가 느린 아이들이 어느 정도 활동을 마치고 정리를 할 때면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뛰어놀고 싶은데 청소를 해야 하니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이 순간, 나는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끝까지 활동을 마무리한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했고,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충 큰 쓰레기만 주우면 밖에 나가서 놀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쉬는 시간 동안 청소기를 돌렸다. ‘그래, 아이들이 청소하면 10분 걸리지만 내가 하면 1분이면 끝나잖아!’ 나의 청소 실력은 갈수록 늘어갔고 아이들은 청소하는 법을 잊어갔다.


  아이들은 나를 친절한 교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친절한 교사로 불리는 게 좋았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교사 같았기 때문이다. 상냥하고 배려심 많은 교사! 내가 생각하는 멋진 교사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문이 들었다. 과연 친절하다는 말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해도 될까? 친절한 교사라는 말에는 아이들을 편하고 즐겁게만 해준다는 뜻이 내포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나는 아이들이 불편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참 세심하게도 배려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런 행동이 아이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아이들이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울 기회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대신 청소해주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속도를 높여 제시간에 활동을 끝내거나 청소를 빨리하는 법을 터득하거나. 나는 아이들이 모험하고 탐구하도록 기다려 주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침묵으로 가르치기의 저자 핀 캘 교수는 교육의 의미를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그의 교수법은 독특하다.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 가르치자는 것. 교사는 아이들이 중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고 아이들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돕자는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에 따르면 교사는 수업을 계획하는 데에 분주해야 하고, 아이들은 수업 시간 내에 분주해야 한다. 모든 아이를 가르칠 때 필요한 말이지만 특히 저학년을 가르칠 때 이 점을 더더욱 명심한다. 귀여움에 현혹되어 아이들의 배움의 기회를 뺏지 않도록 말이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사랑스럽지만, 진정 아이들을 위한다면 그 마음을 조금은 감춰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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