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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 하려고 회사 다니세요?

초대합니다, 미지와 혼돈의 세계로

by angie 앤지
이런 초대장이라면 귀여웠을 텐데



제목: Congratulations!

내용: 축하합니다. 1분기 어쩌구 TF* 멤버로 선정되셨습니다.


*TF: Task Force, 내가 경험한 것은 정확히는 프로젝트에 더 가깝지만 내부에서는 TF로 통용해 이로 표기한다.


회사가 성장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곧 직원들에게 새로운 미션이 더 많이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회사가 그랬다. 조직이 커질수록 다양한 TF가 불쑥불쑥 생겨났다. 어느 날 갑자기 '콩그레츄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축하 메일이 오면 자동 찜꽁 당한 거였다. 미지와 혼돈의 세계, TF 프로젝트 팀의 멤버로. 난 특히 축하를 많이 받은 사람 중에 하나였던 거고


3년 차, TF 초대장(?)을 처음 받았을 땐 뭔가 설렜다. 잘은 모르겠지만 약간 정예 조직 같고 이름도 멋있어 보이고.. 난 여기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걸까? 설레는 마음으로 노트를 들고 미팅에 갔다. 그리고 첫 회의만에 느꼈다. TF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일단, 뭘 해야 하죠?"

TF의 모든 것은 정답이 없는 일이었다. 커다란 백지에 내용을 채워 넣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에 가까웠다. 미션이 오프라인 매장 프로젝트라면, 공간을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 안을 어떤 제품, 서비스, 콘텐츠로 채울지 직접 고민하며 한 땀 한 땀 만들어나가야 했다. 시장/고객 조사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로 구현이 가능한지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그 후에는 보고 형태를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며 변수를 관리하고.. 정해진 틀이 없고 과정은 복잡하니 혼란은 가중됐다.


"잠깐, 이건 누가 하죠?"

더 힘들었던 것은 이 모든 혼돈에 기준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각 부서의 담당들로 구성된 TF는 마치 팀플처럼 모두에게 권한은 있지만 확실한 책임자가 없었다. 물론 프로젝트 리더가 있었지만 그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도 복잡한데 의사결정도 복잡하다니.. 어린 연차에는 특히 그게 너무 힘들게만 느껴졌다.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갈등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아 그냥 누가 이래라저래라 땅땅해 주시면 안 되나요?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 나는 TF를 할 때마다 점점 더 마음이 괴로워졌다.


"어, 어떻게 이걸 다 하죠?"

업무량도 큰 부담이었다. 내 팀은 따로 있고, 실무도 그대로인 채 새로운 일을 더 해야 했으니까. 전사적으로 TF 미션이 더 우선 일 때가 있으니 개인이 밸런스를 잘 잡아야 했지만 영 쉽지 않았다. TF 멤버들과 모여 한참을 씨름하다 다시 내 자리에 앉으면 이미 저녁이었다. 허둥지둥,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도 무거웠다.



"제발 TF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주니어 시절, 언젠가의 1:1 면담에서 그런 말을 했다. 미로처럼 꼬여버린 일과 턱턱 쌓이는 책임, 그리고 압박감. 언제 어떻게 얼마나 내 의견을 피력해야 좋은 건지, 애초에 내 의견이 맞는 방향인 건지 조차 확신할 수 없어 자꾸만 미궁에 빠지던 날들. 내가 왜 TF 멤버로 초대된 걸까. 그냥 내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잘하면 안 되는 걸까. 별게 다 억울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금의 나: 그렇다고 우니? / 그때의 나: 그니깐요ㅠ)


하지만 찔찔 짠 게 무색하게 나는 그 뒤로도 쭉- 각양각색의 TF 초대장을 받았다. 역시 회사란


그중 가장 힘들었던 TF 하나가 기억난다. 우리와 함께 할 브랜드 섭외부터 해야 하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프로젝트였다. 솔직히 인하우스 마케터로 일하면서 외부에 제안서를 쓸 일은 거의 없다. 보통은 우리의 기반을 토대로 고객에게 다가갈 수단을 찾으니까. 하지만 이 때는 내부와 외부 모두를 설득해야 해서 더 쉽지가 않았다.


어렵게 어렵게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실무로 들어가자 프로세스와 시스템, 기준, 리드타임 등에서 변수가 더 많이 발생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건사고가 터졌다. 그래도 10년 차쯤 되면, 대부분의 리스크는 어느 정도 예측한 범위 내에서 생기기 마련인데.. 그땐 정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만 계속 생겼다. 어느 날은 제품이 잘못되고 어느 날은 배송이 잘못되고 어느 날은 소통이 잘못되고.. (자세하게 적을 순 없지만 다시 돌아봐도 아찔한 순간이 참 많았다)


우리 TF 멤버는 고작 네 명이었다. (왤케 적음) 하지만 책임감은 회사의 1/4 조각만큼의 무게였다. (왤케 큼) 그 인원으로 조직의 모든 기능을 소화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했다.



"앤지님은 TF 하려고 회사 다녀요?"


프로젝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막심했던 어느 날. 잔뜩 지쳐있는 나를 보면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오묘한 웃음이 터졌다. 그니깐. 회사 몇 년이나 다녔다고 이렇게 많은 티에프를 해보게 된 건지. 뭔가 허탈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자조적인 마음도 들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땐 TF 멤버들이 초조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이슈가 터졌다고 했다. 한가하게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론칭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여기저기 통화를 하며 방법을 수소문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하나하나 뒤집어엎어가며 다시 점검했다. 처음 겪어보는 위기였다. 원래의 내 업무만 했다면 결코 맞닥뜨리지 않았을 위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고자 애를 썼다. R&R의 범위를 넘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방법을 찾았다. 이 팀 저 팀 의견을 구하고 차근차근 수습을 해나갔다. 그러다 또 사고가 터지면 가끔 얼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보다가도 이내 웃고 말았다. 사실 반쯤 미쳐서 웃은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우당탕탕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제품이 무사히 출시되었다. 실물을 받고 홍보 포스터를 붙이는데 그야말로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그래도 좀 컸다고 눈물이 말라서 떨어지진 않았다ㅎ)



근데 또 돌아보면.


회의실에서 모여서 머리 싸매고 아이디어 나누고, 이리저리 발로 뛰면서 좋은 영감을 수집하고, 가끔은 다투듯이 치열하게 의견을 내고 보고 자료를 최종_진짜최종_찐막_끝 버전까지 만들던 기억. 제안서가 담긴 노트북을 들고 발 동동하던 순간과 길어지는 미팅에 바짝 긴장하고 가슴 졸이던 기억. 매장 오픈 전날 직접 목장갑을 끼고 제품 까대기하고 조심스럽게 DP 하던 기억. 이벤트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며칠 내내 고객들을 직접 맞이하면서 '와 이거 진짜 재밌다', '예쁘다', '사고 싶다'.. 쏟아지는 생생한 감상을 귀기울여 들으며 몰래 뿌듯했던 기억..


결국 우리는 그런 기억으로 또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제는 TF로 만들었던 몇 개의 매장도 없어졌고, 멋있게 세팅했던 전시 공간도 사라지고, 출시했던 한정판 제품도 단종되고, 그 힘든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이직을 하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모든 기억들은 여전히 내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때, 함께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들 덕분에 또 새로운 일로 한 발 나아갈 용기를 얻었던 거겠지. 이젠 기력이 없어서 TF 때문에 울 일도 없지만 주로 고요하게 분노하는 편 만약 가능하다면,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소통하고, 새로운 일에 부딪칠 수 있어야만 네 세계가 넓어지는 거라고. 그게 너의 더 단단한 10년을 만들어 줄 거라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그 모든 순간이 빛나는 기억이 되기를. 너덜너덜해진 여러 개의 초대장을 빌어, 진심으로 바라본다.



*05화 넌 무슨 헤어지자는 말을 출근길에 하니,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나요!






작가 소개

필명은 angie(앤지). 11년 차 뷰티 마케터이자 쓰는 사람.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기록을 시작했고, 회사가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글을 썼다. 가능한 오래 피고용인과 작가 사이를 줄 타고 싶다. 아이돌, 야구, 뮤지컬 등 오만가지 좋아하는 것을 동력으로 살고 있다.


@angiethink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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