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분부족을 극복해 보자
고3 때 처음으로 헌혈을 시작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주사를 좋아했다. 예방접종 하는 것도 좋아하고 한의원 가서 침 맞는 것도 좋다. 그렇게 헌혈의 맛(?)을 알고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헌혈을 하고 있다.
여성들은 한 달 중 2~3주는 헌혈이 어렵다. 그래서 헌혈 가능한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얼마 전 남편이랑 같이 헌혈을 갔다가 나만 실패했다. 남편은 헌혈 가서 퇴짜 맞는 나를 이해 못 한다.
철분수치가 12.5를 넘어야 전혈 헌혈이 가능하고, 12.0이 넘어야 성분 헌혈이 가능하다. 이 날 나는 11 근처가 나왔다. 그리고 곧 마법이 시작되었다. 아 마법 전이라 그렇구나. 2주 정도 지나고, 다시 헌혈 가능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엔 헌혈의 집이 없다. 헌혈의 집 하나만 생겼으면 좋겠다!! 헌혈버스가 관공서에 방문하는 날을 노려야 한다. 마침 헌혈차가 온다길래, 아침 챙겨 먹고 수영하고 헌혈하러 갔다. 이번엔 꼭 헌혈을 하리라 싶었는데 또 11.5가 나왔다. 헌혈불가.
기분 읽기
계획한 일은 계획한 데로 마무리 짓고 싶다. 헌혈도 나에겐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데, 자꾸 헌혈이 미뤄지니 짜증 났다. 요즘 수영하느라 아침도 더 잘 챙겨 먹는데! 안 하던 운동도 하는데! 왜 헌혈수치가 자꾸 낮게 나오는지, 속이 답답했다.
대학생 때, 헌혈을 주기적으로 열심히 했다. 전혈이 잘 안 될 때가 많아서 성분헌혈을 할 때가 많았다. 덕분에 헌혈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남편은 얼마 전 헌혈 30회가 되어 은장을 받았다. 은색 상패와 표창장을 받고 무척 뿌듯해했다. 헌혈 횟수가 나보다 적었던 남편은 갈 때마다 실패 없이 헌혈에 성공하며 차곡차곡 횟수를 쌓고 있다. 나는 헌혈에 진심인데 헌혈로 남편한테 질까 봐, 남편이 앞질러 갈까 봐 마음이 불안하다.
현실 직시
중학생 때부터 어지러움을 자주 느꼈다. 빈혈인가 싶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애들 낳고 기립성 저혈압인가? 싶을 정도로 앉았다 일어나면 심하게 어지럽다. 밥때를 놓치면 심하게 팔다리가 후덜덜 거리고 기운이 빠진다. 체력부족인지 빈혈인지 모르겠다.
헌혈의 집에서 읽어보라고 주신 자료에 의하면, 혈색소 수치가 12 미만인 것을 저혈색소라고 한단다. 혈색소량이 헌혈하기에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저혈색소가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수치가 낮게 나온다면 빈혈과 연관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빈혈은 몸속 철분 부족으로 생기는 빈혈증상이 가장 흔하다고 한다. 젊었을 때도 혈색소 수치가 낮아 헌혈을 못하거나, 성분헌혈만 가능할 때가 많았다. 갑작스러운 증상은 아닌 것이다.
긍정회로 돌리기
건강의 문제라면 개선이 필요했다. 마침 아이들 진료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약국에 들렀다. 약사에게 철분제 추천을 부탁했다. 알약과 액상약이 있었다. 액상형은 흡수가 잘 되어서 효과가 빠른데 가격은 알약보다 2배 정도 비쌌다. 맘먹었을 때 먹어보자 싶었지만, 헌혈 때문에 영양제 챙겨 먹는 게 조금 웃겼다. 비싼 액상형은 차마 손이 안 가서 알약 철분제를 구입했다.
내 돈 주고 영양제를 사본적이 없어서, 생각보다 비쌌게 느껴졌다. 아주 오랜만에 나를 위한 투자를 했다. 헌혈 열심히 하려면 먹어야지. 평소 당 떨어지면 어지러웠던 것도 철분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니 이번에 잘 챙겨 먹고 효과를 보고 싶다. 철분수치 올려서 조만간 다시 헌혈하러 가야지!
카드사용 문자를 본 남편이 전화가 왔다. 약국에서 뭘 그렇게 많이 샀냐고. 애들 약이랑 비타민간식이랑 철분제까지 꽤 큰돈이 결제됐다. "나 철분이 부족해서 또 헌혈 못 했어 ㅠㅠ" 그래서 큰맘 먹고 영양제를 샀다고 말했다. "맨날 어지럽다고 하더니 잘했네!!"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지금까지 44번의 헌혈을 했다. 50번 채워서 금장받을 때까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