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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Mar 03. 2024

아프지 않다면, 자궁쯤이야 드릴 수 있죠

생리통에 혹사당한 30년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나는 30년 동안 이 노래를 바꿔 불러왔다.

"두껍아, 두껍아~ 자궁 줄게, 자유다오! 두껍아, 두껍아~ 자궁 줄게, 자유다오!"

마음속으로 불러오던 노래를 글로 적고 ~보니 살짝 섬뜩함이 느껴진다. 장기매매 이야기는 아님을 미리 말씀드린다. 예전에는 부끄럽게 여겨 숨기기 바빴던 여성들만 경험하는 생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환자분, 자궁내막증이에요. 내막이 두꺼워져서 약을 먹어보고 낫지 않으면 수술해야 해요."

6개월 만에 방문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내려졌다.

'수술이라고? 우와... 지금이 기회다!'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선생님, 당장 수술날짜를 잡죠. 약 먹어도 안 나을 것 같아요."

"수술하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환자분은 이미 여러 번 수술하면서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안 하는 게 좋아요. 전신마취 자주 하면 치매발병률이 높아져요."

"선생님, 자궁 쪽에 계속 문제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수술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렇게 하시죠. 이번에 자궁을 들어내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 당혹감과 황당함이 순식간에 번져갔다. 꽤 오랫동안 내 주치의인 이 분은 키보드 위에 놓여있던 손을 떼어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으시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로또에 당첨된 것 마냥 신나서 말하는 내 모습과 무척 상반되는 풍경이었다.

"안 돼요. 환자분은 아직 젊어서 자궁을 드러내면 후유증이 더 심하게 올 수도 있어요. 골다공증부터 호르몬 이상, 갱년기 등 감당해야 할 게 더 많아져요"

"선생님, 저는 생리가 너무 싫어요!!! 생리 안 하고 싶어요!! 제발 자궁 좀 들어내주세요"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난, 생리가 정말이지 너무나도 싫다. 극혐이다.

의사 선생님은 다시 당황하며 얼굴이 벌게지셨다. (남자분이다.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자, 그럼 이렇게 해봐요. 약을 처방해 줄게요. 피임약은 아니지만 자궁내막을 얇게 하는 효과가 있는 약이고, 이 약을 먹는 동안은 생리를 안 해요."

오랜 숙원이던 생리를 완전히 없애는 데는 실패했지만, 나름의 성과가 있는 협상테이블이었다.


월경이라고도 불리는 생리는 가임기 여성의 자궁내막이 주기적으로 분비된 호르몬에 의해 증식되어 배아의 착상을 준비할 때, 임신이 되지 않으면 저절로 탈락되는 현상이다. 거의 모든 여성이 가임기가 되면 생리를 시작한다.


 나의 생리와 첫인사를 나눈 그날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너무 아프고, 불편한 기억이어서인지 그날은 비디오 테이프를 넣으면 치지직 소리와 함께 나오는 영화처럼 생생히 재생되곤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2살 여름에 초경을 했다. 더운 여름날 티브이 앞에 앉아 만화영화를 신나게 보고 있는데 배가 아파왔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지만 만화영화 본방을 놓칠 수는 없어 배를 움켜쥐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아빠가 달려왔다. 아빠는 방바닥을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엄마 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엄마 올 때까지 참으라고 하셨다. 고통스러웠지만, TV속에서 재잘거리는 나의 만화영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눈을 뗄 수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후 엄마가 돌아왔다. 손에는 아기들이 쓰는 기저귀가 들려있었다. 엄마는 약국으로 달려가 진통제도 사 오셨다. 약 이름은 '펜잘'이었다. 당시에는 펜잘, 게보린이 진통제계를 주름잡고 있었고, 엄마의 선택은 '펜잘'이었다. 그렇게 나의 생리가 시작됐다. 


생리통은

생리 전 또는 생리 중 쥐어짜는 듯한 양상의 복통이 동반될 수 있고, 그 외에도 편두통, 복부 팽만감, 메스꺼움, 유방 압통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감정적으로는 우울하거나 예민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식욕이나 성욕의 변화도 나타날 수 있다. 생리 중 떨어져 나오는 자궁내막세포에서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이 생리통의 발생 기전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로 생각되고 있다.
이 물질은 자궁 수축을 유발하여 떨어져 나온 자궁내막조직을 자궁 밖으로 배출하도록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조직에 산소가 부족하게 되어 쥐어짜는 양상의 통증이 발생하게 된다. 증상의 경감을 위해서 비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 등을 복용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진통제는 생리통이 있는 기간 동안에만 일시적으로 사용하며 비마약성 진통제이므로 부작용은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경 [menstruation]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생리는 보통 30일 이내 주기로 하며 생리통이 있기도, 없기도 하다. 생리양도 차이가 많다. 나는 나쁜 조건은 다 갖춘 생리를 만났다. 생리주기는 40일 정도였으나, 기간이 열흘이상 지속되었고 양도 많았다. 가장 심각한 건 생리통이었다. 초경 이후 생리를 할 때면 학교조차 갈 수가 없었다. 진통제를 하루에 5~6알씩 먹으며 엄마가 만들어준 이불더미 위에 불편하게 누워 버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생리예정일 즈음에는 아무 약속도 잡지 않았다. 약속을 잡았더라도 생리가 시작되면 무조건 취소다. 나와 함께하는 생리통은 참 독하다. 아랫배가 쪼여오며 아파 허리를 펼 수가 없다. 오른쪽 허벅지가 저리며 통증이 온다. 그거뿐이면 다행이다. 허리통증과 구토까지 동반되며 온 얼굴에는 뽀루지가 고개를 쳐든다. 생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왜 이런 독한 놈에게 걸린걸까. 노산으로 나를 낳은 엄마를 잠깐 탓해보기도 했다. 엄마도 늘 말씀하신다. "나이 많은 채로 낳아서 그런지 덜 만들어져서 나왔다"라고... 어릴 때는 듣기 싫던 그 말이 지금은 신빙성 있어 보인다.


그렇게 한 달, 한 달을 버텨 30년이 지났다. 대략 360개월을 버텨냈다. 생리할 때마다 진통제를 한통씩은 먹었으니 적게 잡아도 3,600개는 먹은 것 같다. 펜잘을 하도 오래 먹었더니 내성이 생겨 효과가 없어져 꽤 힘들었는데 최근에는 액상형 진통제부터 생리통 전용 진통제도 시중에 많이 나와 호강 중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생리통을 없애기 위해 한약도 먹어보고, 면생리대로 바꾸기도 해봤다. 최근에는 생리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생리팬티를 비싸게 사서 써보기도 했고, 여성호르몬에 좋다는 여러 영양제도 먹어봤다. 그럼에도 나의 독한 생리통은 여전하다. 출산 이후에 조금 약해져 진통제를 반 통 정도만 먹어도 되는 정도로 나아지기는 했다. 출산의 고통은 심했으나, 생리통을 약하게 해 준 효자라며 아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봤었다. 물론 1년만에 원상복귀했지만 말이다. 


  6개월 전, 산부인과 진료에서 약의 효과가 미미하여 약을 끊고 상태를 지켜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고슴도치가 되어 반격했다.

"선생님! 저는 생리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자궁적출술 날짜를 잡아주세요!"

그렇게 6개월분의 약을 다시 받아왔다. 생리가 없는 세상은 천국이다. 여행도, 나들이도 내 마음대로 갈 수 있다. 나의 작은 소망은 이렇다. 지금 먹는 약을 폐경기까지 쭉 먹는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폐경기가 오면 얼마나 자연스러운 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가끔 상상한다. 지니의 요술램프가 나타나 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빌라고 한다면 첫번째로 생리를 안하게 해달라고 빌거다. 물론 로또 당첨, 가족의 건강, 승진, 사업의 성공, 명예와 명성 등 빌고 싶은 소원은 많다. 하지만 난 생리만 하지 않는다면 내 노력으로 더 많은 걸 이루어낼 수 있을거라 믿는다. 이해가 안가는 분들도 있을테지만 질병은 각자 느끼는 감도와 정도가 다르다. 생리통은 삶의 질을 한없이 낮추는 질병이다. 카페인을 많이 마시고, 관리를 하지 않아 생리통이 있는게 아니다. 외부 요인들이 고통의 정도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타고난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질병조차 개인의 탓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질병 또한 개인의 고유성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살아가는 생리와 생리통을 쉬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리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당당하게 쉼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녀차별의 문제로 보지 않고, 고통을 겪는 인간의 문제로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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