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크기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잴 수 없다.
"또 약 먹어?"
"이번엔 어디가 아파?"
"넌 안 아플 때도 있어?"
걱정이야? 불편이야?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주 아팠다. 가장 컨디션이 안 좋았던 어느 해는 1년 열두 달 중 열한 달을 동네 병원을 전전하며 약으로 버텼다. 한약, 양약, 섭생 등 아프지 않기 위해 먹고, 시도해 본 것도 꽤 다양하다. 나를 꽤 오래 알아온 사람들은 약을 하도 많이 먹어서 나중에 쉽게 죽지 못할 거라며 걱정한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면 서로 고생이라며 이제 약을 그만 먹으라고 슬쩍 권유하기도 한다. (나를 위한 건 맞는 걸까?라는 의심이 종종 든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병원을 하도 자주 다녀 (병이 있다면) 병을 미리 발견하는 득템효과로 병을 키우지 않아 좋겠다며 위로하기도 한다. 아픈 건 나이고,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내가 져야 하며, 꽤 많이 나오는 병원비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데 왜들 나의 건강에 그리 관심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처음엔 걱정이라 여겨 무척 감사했다.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 나를 그리도 걱정해 주니 참 따뜻한 세상이다 싶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라기보다는 핀잔처럼 느껴져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도 내가 '아프다.', '병원에 다녀왔다.'라 말하고, 식사 때마다 부스럭거리며 꺼내 먹는 약이 불편했던 건 아닐까? 직접 물어보고 싶지는 않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나의 질병이력을 남겨보기로 했다. 정말 내가 유난한 건지, 내 주변사람들이 유난히 건강한 건지 궁금해졌다.
나의 질병이력은 이렇다. 대학병원 내원 이력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내분비내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정도이고, 동네 의원은 의사와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친해진 정도이다. 다들 이 정도는 병원에 다니지 않나? 1년 병원비는 통원치료로만 일, 이백만 원 정도 나오기도 한다.
첫 번째 수술
아주 어릴 적은 기억이 안 난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병은 '편도선염'이었다. 감기에 한번 걸리면 천식 직전까지 터져 나오는 기침과 고열로 늘 병원신세를 졌는데 6살 무렵에는 열이 떨어지지 않아 종합병원에 입원했었다. 이때는 몇몇 장면은 떠오르나, 기억이 온전치 않아(어렸을 때라 기억이 많이 나지 않는다. 오해 마시길) 엄마의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병원에서는 주사와 약만으로 버티기에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편도선 절제술을 권유했다. 그렇게 인생 첫 수술을 받았다. 당시에는 연차휴가, 가족 돌봄 휴가, 자녀 돌봄 휴가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일을 그만두고 나를 간호할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6살이었던 나는 수술 후 입원기간 동안 병실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엄마는 밤에 와서 자고, 아침에 출근했다. 옆 환자 보호자분이 나를 자주 들여다봤던 게 기억난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면 간호사가 와서 달래주고, 엄마 회사에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게 해 줬다. 지금처럼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지정되어 간호사들이 돌봐줘야 하는 책임이 없었음에도 다들 참 친절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키워주신 것 같다.
따뜻한 분들의 돌봄 속에 나의 편도선 2개는 사라졌다. 그 뒤로도 감기는 계속 걸렸지만 편도선을 떼어냈기 때문에 덜 아팠을 거라는 엄마의 위로로 구경도 하지 못한 편도선에게 쿨하게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신체적 질병은 살아가는 데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질병이 일상을 방해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생활패턴이 무너진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정도는 개인마다 다른 것 같다. 두통, 복통 등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며 참는 사람들을 보면 약 한 알이면 해결될 일을 하루 종일 아파하는 걸 보면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예민하다'라고 한다. 그 정도 고통은 살아가며 누구나 겪는 건데 무슨 진통제를 그렇게 자주 먹냐고 한다. 예민성의 문제일까? 참을성의 문제일까? 약에 대한 선호도의 문제일까? 개인의 고통에 대한 처치방법도 어떤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지 고민해야 하는 건지 조차 고민이다.
나는 통증에 민감한 사람이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게 가장 싫다. 제왕절개 수술로 낳은 아이를 2일 후에 보러 갔다. 엄마는 '넌 모성애도 없냐? 어떻게 지 배 아파 낳은 애 보러도 안 가냐?'라며 타박했다. 하지만, 생살을 찢어놔서 걸을 수가 없는데 어쩌라는 건지 난감했었다. 2일 뒤에 신생아실 앞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어떤 산모가 마취도 안 풀린 채 휠체어를 타고 아이를 보러 온 모습을 보고 잠깐 생각에 잠겼었다. 내 결론은 모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통증에 대한 민감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후각, 청각, 시각이 다른 것처럼 통증을 느끼는 감도도 다른 것뿐인데 개인의 성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다.
회사 책상서랍과 우리 집에는 온갖 비상약이 준비되어 있다. 소화제, 진통제, 근육통약, 속 쓰림 약, 치통약, 붓기&멍든데 약(연고도), 비염약, 가려움증 약, 후시딘, 마데카솔, 파스(약 3가지 종류), 화상연고, 호랑이 연고, 피부질환 연고, 흉터제거연고가 비상약품함을 차지하고 있다. 유통기한을 넘기는 약도 있지만 대체로 잘 활용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도 통증에 민감하다. 이건 좀 가족력을 의심하게 되긴 한다.
사람은 각자 다르다. 생김새도, 생각도, 살아온 환경도, 살아갈 미래도. 각자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공감해 줄 때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주변에 통증에 민감한 사람이 있다면 타박하지 말고 비상약이라도 건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