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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Mar 17. 2024

자궁수술이 비밀인 이유

왜 말을 못 해!

사방이 깜깜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감싸고 있었고, 피부 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는 수백 개의 바늘로 찔러대는 것 같았다. 한 발을 내딛으려 발을 떼면 바닥에 닿아 있는 발이 더 깊이 땅 속으로 들어갔다. 공기는 점점 형체화 되어 크고 작은 바늘로 바뀌어갔다.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사방에서 날아왔다. 어느 순간 바늘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은 듯, 방향을 바꾸었다. 저 높은 하늘에서부터 맹렬한 기세로 날아든 바늘들은 내 배로 향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무시무시하게 날아온 바늘들이 일제히 배에 꽂히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바늘들이 배를 뚫고 나갈 것 같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도와달라고, 나 너무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입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목구멍으로 돌아갔다. 수백 개인지, 수천 개인지 모를 바늘이 꽂힌 배를 바라보며 바닥으로 꺼져가는 몸을 빼내려고 발버둥 칠수록 깊이 빠져들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을 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악!!!! 아아아아!! 흑흑" 

 눈을 뜨니 내 방이다. 악몽을 꾸었나 보다. 얼마나 지독한 악몽이었으면 꿈에서 깨었는데도 감각이 남아있을까. '아니면, 아직 꿈속인가? 배가 왜 이렇게 아프지?'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느꼈던 고통이 똑같이 느껴지고 있었다. '엄마를 불러야겠다.' 그런데, 짧게 터져 나온 비명소리말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숨을 골라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방바닥을 기어 거실 중간까지 나왔다. "으흐흐흑, 아아. 어, 엄마아아.. 으흐흐흑" 말인지, 비명인지, 옹알이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소리가 터져 나왔고, 잠귀가 밝은 엄마가 쏜살같이 거실로 나왔다.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 딸을 본 엄마는 증상을 묻고는 택시를 불렀다. 아빠는 집에 안 계셔서 엄마가 나를 업다시피 하며 아파트 1층까지 끌고 내려갔다. 바닥에 질질 끌려갔던 그 느낌도 아직 생생하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이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온다. 왜 119가 아닌 콜택시를 불렀던 건지.. 그만큼 엄마도 정신이 없었던 거겠지.. 


응급실에 도착해서 여러 검사가 진행됐다. 복부 CT, 초음파, 엑스레이, 피검사 등등.. 일단 진통제를 맞고 나자 조금 나아졌다. 새벽 내내 검사 후 나온 결과는 '자궁내막증'이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일단 퇴원 후 외래 진료를 통해 수술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아침 8시, 퇴원했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수술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 엄마는 눈물을 짓고 있었다. 

"아이고, 선생님. 아직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자궁수술이라니요. 시집도 못 가면 어쩝니까. 애는 낳을 수 있나요? 아이고오.."

의사 선생님은 단호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그렇게 위험한 수술은 아니고요, 수술하고 나면 임신은 더 잘되니까 걱정 마세요."  

엄마의 눈물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고,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럼, 빨리 날짜를 잡죠." 

친구와 커피약속을 잡듯 수술날짜가 잡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자.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자궁수술한다면 아빠 기겁하신다."

이해되지 않는 처녀의 자궁수술의 비밀화. 

'창피한 일인가? 내 몸이 아픈 것보다 결혼도 안 했는데 자궁수술하는 게 알려지는 게 엄마는 부끄러운 걸까?'

고지식한 가부장적 시대를 살아온 엄마의 과거를 생각하며, 이해하고자 했다. 


1. 자궁내막증이란?
자궁내막증이란 자궁내막의 선(gland) 조직과 기질(stroma)이 자궁이 아닌 다른 부위의 조직에 부착하여 증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자궁내막증의 치료
자궁내막증에 대한 수술요법
생식능의 보존을 원칙으로 하며 따라서 신체조직에 가장 무리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골반경 수술이 일차적으로 시도되며, 개복수술은 질병이 심하게 진행되어 복강적 수술이 힘들거나 임신을 더 이상 원치 않는 경우 등에만 사용한다. 수술적 치료의 목적은 눈에 보이는 모든 병적인 부위를 제거하거나 파괴하여 없애고, 골반 내 장기와 조직들이 들러붙는 유착을 제거하여 정상 해부학적 구조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수술 후 약 50~75%의 환자에서 통증이 경감되며, 중증 이상의 자궁내막증과 연관된 불임이 발생한 경우 수술을 통해 약 35~60%에서 임신에 성공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수술 후에도 통증이 지속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하며, 이러한 경우 추가적인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수술 후 임신율은 1년 이내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1~2년이 경과해도 자연적인 임신에 실패할 경우 불임에 대한 치료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경과/합병증
 자궁을 완전히 적출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궁내막증은 치료 후에도 높은 재발률을 보여 매년 5~20%에서 재발하며, 5년 재발률은 40%에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궁내막증 [endometriosis]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아빠에게는 연수를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했다. 

복강경수술이기는 하나, 회복속도에 따라 최대 일주일 정도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간병하기 위해 병실에 와있을 수 없었다. 아빠에게 할 말이 없으니까. 낮에 잠깐씩 들렀다. 그때 꽤 서러웠던 것 같다. 피주머니를 차고, 한 손엔 수액을 맞으며 움직일 때마다 배가 아팠다. 하루 세 번 밥시간도 힘들었다. 밥을 침대까지 갖다는 주는데, 다 먹고 나면 다시 복도까지 내놔야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척 친절해서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곤 했다. 보호자가 있는 환자들이 참 부러웠다. 


그렇게 일주일의 병원생활이 끝나고 잘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때 내 나이가 29살. 30살에 결혼하여 31살에 소중한 아이를 낳았다. 제때 질병을 치료해서 소중한 아이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남편이 된 그때의 남자친구는 매일 병원에 들러 간병을 해줬다. 엄마는 남자친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직장의 남자 부서장님은 수술 다음 날 부서원들과 면회를 왔다. 여자분이었던 관장님은 다른 직원들에게 굳이 병명을 알릴 필요는 없겠다고 했다. 


자궁 관련 질환은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 그 중심에는 남자가 아닌 여자들이 있었다. 엄마, 직장 대표님. 남자친구, 남자였던 부서장님은 '아픔'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표현하지 않았서일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여자들이 여성질환을 터부시 하고, 쉬쉬하는 게 아닐까? 그 이면에는 어떤 인식들이 깔려있는 걸까? 남성중심사회를 살아오며 자연스레 자리 잡힌 편견일까? 이제는 '나 감기 걸렸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성질환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꾸 숨길수록 병은 악화되고, 치료받을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백한다.

 '저 자궁내막증 재발했어요!' 


아빠는 내가 자궁 수술한 적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엄마의 소원은 이루어져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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