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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Feb 18. 2024

아파본 당신, 애쓰셨습니다.

작은 병도 병이다.

프롤로그)


내가 태어난 40여 년 전 산모 나이가 마흔이면 노산 중에서도 엄청난 노산이었다.

엄마는 여러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갖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았고, 나이 마흔에 기적처럼 다시 임신을 했다. 이번에는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였지만, 자연분만은 하지 못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으나, 얼마 뒤 자궁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한동안 입원을 했고, 아이는 한 달여간 친할머니와 동네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귀하게 얻은 자식이지만,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고 엄마는 노산으로 태어나 그렇다고 굳게 믿었다. 엄마 표현으로는 "제대로 생겨 먹지 못하고 태어났다"라고 했다. 어렸을 때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며 엄마 말을 되새기고, 믿게 되었다.


아파도, 너무 자주 아팠다. 다쳐도, 너무 자주 다쳤다.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줄 알았다. 다들 병원에 입원도 해보고, 수술도 해본 줄 알았다. TMI를 하자면, 난 입원 짐을 매우 잘 싼다.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진 20대 이후, 벼락 맞은 것처럼 깨달았다.


'내가 유별나구나. 다들 나처럼 아프고, 다치고, 병원에 가는 게 아니구나.'

23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한 일은 월급으로 보험에 가입한 거였다.

'언제든 난 입원할 수도 있고, 병에 걸려 수술하게 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고, 병원비가 많이 들면 감당하기 어려우니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암 진단과 함께 3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젊은 나이가 아깝다며 이미 초상집 분위기였지만 아빠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82세의 일기로 하늘로 돌아가셨다. 아빠가 생명을 붙잡고 살아준 그 시간은 나에게 감사하면서도 두려운 시간이었다. 아빠의 발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내가 20살까지만 아빠가 살아줬으면 했다. 20세가 되자 30살까지만, 내가 결혼할 때까지만 아빠가 살아줬으면 했다. 정말 나는 30살에 결혼을 했다. 아빠가 언제 가실지 모르니까.. 아빠에게 내 결혼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30살, 결혼식이 끝나고 내 소원은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까지 아빠가 봤으면 좋겠다로 바뀌었다. 그렇게 아빠는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까지 보고 졸업하는 건 보지 못하고 가셨다. 그 과정은 참 지난했지만, 아빠가 버텨줘서 든든했고, 감사했다.


하지만, 아빠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나에게 '죽음'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했다. 또한, 보험 하나 없었던 아빠는 투병기간 동안 모아둔 재산을 거의 다 탕진했고, 투병 후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늘 '돈'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봐왔던 터라 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지금 당장이라도 심장마비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라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늘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에게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재빠르게 정리해 버린다. 회사 책상도 가능하면 개인 물건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간식은 빼고. 내가 언제 어떻게 되었을 때, 뒤처리를 해야 할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이다. 깔끔한 사람으로 남고 싶기도 하고.


이런 나의 모습에는 아빠의 암투병이 한 몫했지만, 사실은 나의 잦은 병치레가 가장 큰 원인이다. 골고루도 아파왔기에, 언제 죽든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뱉었다면, 지금은 가능하면 표현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불안해하니까... 내 남편이 불안해하니까... 모든 사람이 나처럼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걸 아이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걸 조금 생경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아픔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나만 유독 그런 건 아니라고. 그 정도는 누구나 아플 있는 거라고. 아팠다고, 아프다고 죽음을 쉽게 생각하는 아니라고. 그렇다고 내가 대단하게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아니다. 아... 뭐, 그럴수도 있지만, 그건 차차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또, 혹시 나처럼 자잘하게 아팠고, 지금도 아프지만 견뎌내었고 견디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명을 위협하거나,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큰 병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어떤 분들에게는 별 것도 아닌 시답잖은 잔병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는 고통을 느낀다는 알리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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