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 May 09. 2023

무료 컨설팅 학생이 잠수를 탔다. 세 명이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어보고 싶다. 왜 그랬느냐고.


교육을 전공하고 나름대로의 바른 삶을 살아오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마음이 내 뜻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근 2주 사이 잠적해 버린 학생이 벌써 세 명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속된 말로 현타가 온다.


교육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교육학과에서 공부했었고, 그 꿈을 발전시키고자 사회학과에서 또다시 수학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이상과 현실이 다를 때에 실망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가장 잘하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 여겨 왔지만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여서 나의 선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않는 것 같다.


우리 입시제도는 교육의 기회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기회균형전형'이라는 것을 운영한다. 대학마다 대동소이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대체로 저소득층 자녀, 차상위계층 자녀들을 위한 TO를 별도로 두는 식이다. 그런데 이 기회를 알지 못해 대학 진학의 꿈을 쉽게 포기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을 돕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이었다.


2월부터 4개월째 모 입시카페에서 저소득층 컨설팅 학생을 모집하고 컨설팅을 했다. 감사 인사를 바란 것도 아니었고 유무형의 대가를 바란 적도 없다. 이에 수반되는 행정처리와 생기부 분석, 그리고 학교별로 상이한 입시제도와 지원자격까지 분석하는 것은 정말 오래 걸리는 일이다. 게다가 저소득층 학생이라면 거주지, 생활비 조달 방식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일반전형으로 지원하는 학생들 컨설팅보다 곱절은 힘들다.


어제저녁 9시였다. ZOOM을 켜고 학생이 들어오기를 기다렸으나 들어오지 않았다. 카카오톡도 읽지 않았다. 점심때까지 연락되던 아이가 잠수를 탄 것이다. 입시 카페에 노쇼 때문에 잠정적으로 무료 컨설팅을 중단한다는 글을 올리고 나서야 연락이 온다. 미리 말 못 해서 죄송하단다. '못 부정문'은 능력부정이라, 본인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을 때에 쓰는 말인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


2주 전 목요일 아침 커리어연세(모교 취업지원사이트)에서 취업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하기로 한 학생이 잠적한 일과 오버랩됐다. 목요일 오전 9시 30분으로 미팅 시간을 정해 두고 학생 자기소개서와 취업 공고까지 분석해서 자소서 수정본을 준비해 두었다. 오전 9시 5분, 핸드폰이 울린다. 커리어연세 담당 차장님이다. 밤늦게 갑자기 오전 면접이 잡혀서 컨설팅 못한다고 메일이 왔단다. 하루 전날 퇴근 시간이 지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는 경우는 없을 텐데 말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 조정 정도는 해 줄텐데. 차장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나도 당혹스럽다.


다른 아이는 시험 끝나고 연락 주겠노라 해놓고 잠적했다. 생기부 분석도 다 해두고 기다렸는데 연락 준다더니 시험 날짜가 한참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받을 방법이 없었는데. 취준생 시절도 선배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그 마음을 기억하고 건넨 호의는 내가 바라던 방법대로 돌아오지를 않는다. 이에서 내려놓기를 배우고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학교 신부님께서 빌려주신 김수환 추기경님 이야기도 읽어보고 불교 서적인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도 읽고 필사까지 해보았지만 상처가 쉬이 아물지를 않는다. 내가 어른이 되지 못한 탓이다.


나의 고등학교 은사님은 '율리아나(천주교 세례명)'로서 사랑을 베풀기 위해 내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다. 은사님은 다른 아이들이 못된 말을 할 때에도, 베푸는 삶에 속셈이 있을 거라 남들이 수군거릴 때에도 꿋꿋하게 나눔을 지속하셨다. 나는 어른이 아닌 것인지, 속이 콩알만 한 것인지 그러기가 참 어렵다. 선하게 살고 싶은데 아직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지 못한 탓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 저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날이 제일 좋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