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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어버드 Nov 23. 2022

언어는 제로(zero) 조건!

'0'순위라구!

탈조선의 첫 번째, 언어이다. 


해외생활의 기초이다. 워홀, 유학, 이민, 심지어 관광 등 조선땅을 벗어나는 순간 조선말이 통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아 망망대해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아무리 번역앱을 돌리고 현지인과 소통을 하려고 애를 써도 진이 빠지는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후~하고 한숨을 쉬게 된다. 현지에 도착하는 순간 혈연, 지연, 학연도 없는 소위 내 '나와바리'가 아닌 곳에서 집 보러 다녀야지, 일자리 구해야지, 학업 이어나가야지, 아프면 병원가야지, 말이 통하지 않으면 턱 하고 막히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우리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언어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탈조선을 하고 내가 정착할 곳의 언어와 관련해 냉정한 독설을 써보려 한다.

 

그 나라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Ground Zero, 그라운드 제로, 즉 제로 세팅이 된 출발 지점이다. 제발 ‘영어를 잘 몰라도 가능한 해외 유학/취업 성공비법’ 혹은 ‘스웨덴어를 몰라도 스웨덴에서 영어로 먹고사는 법’과 같은 허황된 캐치프레이즈 광고 문구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가서 오랫동안 정착하고 지내고자 하는 나라의 말을 구사할 줄 모르면 그건 지하 삼십 미터에서 출발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교육학에서 ‘출발점 행동’이라는 용어가 있다. 즉 학생이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가져야만 하는 선수 기능이나 지식을 말하는데 언어라는 출발점 행동이 없으면 지하 삼십 미터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다가 탈조선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너무 힘이 들어서 아마 헬조선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많은 해외 성공 취업자들이 정착을 못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오거나 재외동포들이 역이민을 결정할 때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들자면 그들이 탈조선을 계획할 당시 언어라는 출발점 행동이 완전하게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모든 일이나 학습은 제로 세팅이 된 상태에서 동등하게 출발해야 성취도가 생긴다. 출발 지점이 다르면 이미 불공정한 게임이어서 이길 수가 없다. 시작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 제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불공정 거래, 패기 하나로 뛰어들기엔 무모한 경기다. 

 

타국의 언어는 제로 조건이자 나의 생존 무기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곧 나의 생존 능력인 셈이다. 다시 말해 그 나라 언어를 나의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듣고, 쓰고, 말하고, 읽을 수 있다면 탈조선 생존 능력 만렙인 셈이다. 탈조선을 꿈꾸고 있다면 지금 당장 그 나라의 언어를 정복하는 게 순서다. 현지에 도착해서 막상 부딪히면 언어는 자연적으로 늘게 될 것이라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냉정하지만 헬조선에 있는 게 맞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늘지 않는 성인의 제2 언어 학습에서 자연적으로 언어가 는다는 건 있을 수가 없다. 스폰지같은 뇌를 가진 아동과는 달라서 성인의 뇌는 2언어 학습시 LAD(Language Acquisiton Device: 언어 습득 장치)를 탑재하기 위해 반드시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 (반구편중화, 결정적 시기 가설 등등 안타깝지만 수년간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언어학도로서 배운 내용이다. 고리타분한 노암 촘스키, 크라샨 등등 기라성같은 언어학자분들이 이미 성인의 2언어 학습 즉, SLA(Second Language Acquisition)이론에 관해 다 적어놓으신걸 난 그저 달달 외우며 공부했었다.) 


지하 삼심 미터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기 위한 발버둥은 나를 지치게 할 뿐이다.


무엇보다 언어가 부족하면 자연스레 문화적 이해 또한 부족하게 된다. 무슨 말이냐면 'Being bilingual is being bicultural', 즉 두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중 언어 생활자는 이중 문화 생활자라는 말이다. 더 확대하면 폴리글롯(polyglot), 일명 다중언어 생활자인 멀티링구얼(multilingual)들은 문화적으로도 멀티적인(multicultural)생활을 하기에 해당 언어를 쓰는 문화의 이해도 또한 높고 넓다. 

다시말해 언어를 배우는 건 그 해당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를 학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가 모자라면 문화적 이해가 부족해 대개 이민자들의 커뮤니티에 의존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원치않는 사사로운 문제들이 불거지게 된다. 바다건너 낯설고 물선 곳에서 혈혈단신 나를 보호하려면 반드시 현지인들 만큼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와는 다른 현지인들의 문화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번역앱을 통해 혹은 2세인 자녀를 통해 심지어 통역사 등의 제3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간접적 문화 이해는 한 발 늦는 법이다.  

 

안 그래도 생김새가 다르고 문화가 이질적인 데다 소수인종으로 모범시민이 되어 타향살이를 해야 하는데 이방인 취급을 받고 간혹 인종 차별을 받는다면? 거기다 언어마저 잘 구사하지 못하면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소통의 기본인 언어라는 제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적 불통으로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기본이 충족되어야 내 자아를 숨 쉬게 하고 내 영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그다음을 기대하고 계획할 수 있다. 


북호주 아웃백 펍에서 만난 호주 사투리 점심 메뉴판


호주로의 탈조선을 감행한 나의 정복 언어는 영어였다. 영어학도였던 나는 이미 유창한 이중언어 사용자였고 다른 건 몰라도 내 영어실력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 나는 순수 국내파 영어학도였다. 90년대 초,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윤선생 영어교실 학습지로 처음 영어 알파벳과 파닉스를 공부했다. 영어 유치원, 조기유학, 원어민 과외 따위의 사치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당시 가정형편으로는 윤선생학습지도 버거워 내가 쓰고나면 지우개로 정답을 지워 동생이 다시 재활용했다. 그리고 학교영어책 (어찌나 소중했던지 영자신문으로 책뚜껑을 싸고 다녔다.). 그게 전부였다. 사실 영어라는 외국어가 신기하고 재밌어 학창시절 달달 외우기를 반복한 게 신의 한 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매일같이 교복주머니에 영어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외웠고 수학여행 비용은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어학원 6개월치 학원비로 썼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단과대학 수석에게 주어진 해외연수 혜택을 받아 6개월간 처음으로 '외쿡'이란데를 가보았다. 캐나다 벤쿠버로. 그동안 외우고 공부했던 모든 영어를 본토라는 곳에서 미친듯이 쏟아부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호주땅에 오고나서 나의 영어실력에 문제가 생겼다. 어린시절 윤선생 파닉스에서부터 학부 시절, 통사론, 음운론, 조음 음성학까지 전부 미국식 영어를 공부했던 나는 호주식 영국 영어가 잘 안들렸다. 처음 캐나다 벤쿠버에 갔을 때에는 영어가 그래도 들렸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달랐다. 적잖이 당황했고 황망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서호주 아웃백 시절, 현지인들의 실생활 호주 사투리는 정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도 하지도 못하게 되자 갑자기 만렙이라 믿었던 나의 생존능력이 제로가 되어 버렸다. 바보처럼 실소가 터졌다. 잘 안 들리기도 하고 영어처럼 들리기는 들리는데 뭔가 단어들이 생소하고 소리가 재밌는 호주 사투리 때문이었다. 마치 서울 사람이 제주도를 갔는데 현지 섬사람들이 매일 쓰는 제주도 사투리를 못 알아들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굳이 예를 들면 이런 대화내용이었다. 서호주 난민촌 일을 할 때 레오노라 사막마을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노란 조개모양 로고가 그려진 주유소(Shell Garage)인 Coles Express 편의점에서 캐셔알바를 할 때였다. 호주 원주민 손님이 들어왔고 담배 주문을 하는데 나는 도통 무슨말인지 못알아 듣고 매니저를 호출했었다. 


원주민 손님: "Oi, Winnie Rer!"   
나: "Sorry?"
원주민 손님: (담배박스를 가리키면서)"ther! get a twinnie, mate"
나: "I am sorry, I don't understand... (매니저 호출 번호를 누르면서 말했다)"


글로 써진 활자만 봐도 무슨 말인지 어려운데 입에 뭘 잔뜩 문것처럼 웅얼웅얼 속도의 호주 사투리 억양으로 휘리릭하고 말하는데 도통 무슨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니저 알렌이 도착하고나서 알았다. 호주 담배 이름 중에 Winfield라고 있는데 그중에 Red라벨로 그리고 두 곽이 같이 붙어있는 Twin Pack으로 달라는 주문이었다. 환장할! 뭐든 빼고 줄여서 말하는 호주 사투리였다! 거기다 문맹률이 높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원주민의 토종 발음이어서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매니저 알렌은 웃으면서 나에게 You'll get used to it (곧 익숙해질거야)라고 말하며 어깨를 툭툭쳤었다.  


또 한 번은 아웃백 펍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한 친구가 늦게 도착했는데, 전형적인 호주식 사투리가 연타 튀어나왔다. 


친구 1: Far out! Ya dawdling bugger! (실화냐! 굼벵이같은 자식!)
친구 2: Sorry, mate. was flat out, bloody choc a bloc. (미안, 친구. 존나 바빴다고, 꽉 차가지고.) 
친구 3: must've been busy, I bet. Here's your stubbie, mate. (바빴나보네. 여기 맥주나 받아, 친구.)
친구 2: Ta, wanna rage tonight? (고마워, 오늘 달리는 거야?)
친구 1&3: Bloody oath! (말해뭐해!/당근이쥐!)     


활자로 읽기만 해도 쉽지 않은 호주 사투리다. 그런데 오롯이 귀로만 들을 경우 더 환장한다. 개인차가 있지만 말하는 사람의 웅얼거림의 정도가 크면 더 알아듣기 힘들다. 중요한 점은 이런 호주 사투리가 호주인들을 더 단단히 묶어주는 독특한 문화라는 점이다. 마치 내 고향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도말을 쓰며 연대하고 의지하며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과 다를바없다. 

  

결국 나는 당시 같이 근무하던 호주 동료 친구들의 도움으로 작은 사투리부터 외우고 따라 하면서 극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는 호주식으로 사람을 부르거나 응원구호를 외치거나 할 때 자주쓰는 "Oi!"라는 표현도 우리나라 말처럼 "어이!" 또는 "야!"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장난으로 Why are ya freaking oying me?(너 왜 나한테 씨발 '야'라고 하는데?)" 라며 되받아치며 으하하 웃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어렸을 때 육지에서 온 외지인이 제주도 사투리를 잘쓰면 친척 삼촌 이모들이 '자인 이디 사름 다 됐져게' (저 사람은 여기 사람이 다 됐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언어가 소통이 되니 문화 또한 소통이 된다는 제주도 삼춘들 나름의 인정이었다. 나 역시 호주말을 알아듣고 따라하면서부터는 차별과 텃세를 덜 느꼈다. 덕분에 지금은 같이 웃으면서 떠들고 웬만해선 다 알아듣고 못 알아들으면 되물을 배짱도 생겼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학습하는 일은 너무나 재밌는 노력이었다. 나의 영혼이 숨을 쉴 수 있는 즐거운 노력,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덕에 나는 학교에서 배운 미국식 영어가 아닌 호주 아웃백에서 익힌 호주식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생존 무기 만렙을 장착한 ‘탈조선러’가 되었다.      


  


덧 1. 언어보다 긍정적인 자세 혹은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탈조선 꿈돌이, 꿈순이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대략 이렇다. 언어가 부족해서 이런저런 문제들을 객지에서 그것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민정착지에서 겪다보면 아무리 좋은 자세로 시작하고 버텨보려해도 무너지는 순간들이 오고 그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게 여간한 멘탈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다. 되려 우울감에 휩싸이거나 자존감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정작 나라는 본질적 자아는 여전한데...그래서 냉정하게 언어를 '0'순위라고 적어보았다. 탈조선을 하고 싶고 해외에서 정착해서 살고싶은 꿈을 가진 꿈돌이, 꿈순이라면 You must own the damn language, m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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