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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어버드 Jun 17. 2023

중독...

탈조선 기회비용 3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그리고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짙은 법이다. 


건강한 복지국 호주의 여유로움은 우울을 불러일으키고 그 우울이라는 병은 중독이라는 어둠으로 찾아온다. 

삶의 낙이 없어지고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개인은 술을, 도박을, 마약을 일삼는다. 그리고 정부 복지수당을 받는 날만을 기다린다. 돈이 들어오면 또다시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며 마약에 빠진다. 뫼비우스의 띠마냥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울한 복지국가의 개인들은 일종의 도파민 중독으로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가 이삼일에 한 번, 더 심해지면 매일매일로 잦은 횟수를 보이며 망가진다. 사실 먹고사는 게 힘들면 우울할 세도 없이 하루가 롤러코스터처럼 지나간다. 매일이 산전수전 공중전인데 언제 술을 마시고 놀며 도박을 하고 마약을 하란 말인가. 먹고 사느라 바빠 삶이 전쟁터인데 말이다. 총을 잡고 사투를 벌여야 하는 자에게는 술이며 도박이며 마약 따위는 안 중에도 없다. 


그런데 이런 삶을 호주사람들은 ‘사는 게 아니라 생존(It is surviving, not living)’이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낙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탐닉지수가 높은 호주사람들이다. 


대학원 시절 공부했던 호프스테드의 문화차원 이론(Hofstede’s cultural dimensions theory)에서도 우리나라보다 호주의 탐닉지수(indulgence)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프 참조)

참고로 www.hofstede-insight.com에 들어가서 나라별 비교분석을 해보면 재밌다. 

호프스테드 호주/한국 비교 그래프


통역일로 보름간 묵었던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도 술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았고 skol!(건배!)를 외치며 술을 권하는 분위기가 ‘사는 낙이 있어야지, 마시자, 건배!’ 뭐 이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호주사람들보다 좀 더 탐닉지수가 높다고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북유럽 특유의 멜랑꼴리함과 술의 조합은 어둠을 지나쳐 독(毒)이라고 느껴졌다. 


인간은 살아있음을 느껴야 하는데 생존투쟁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아닌 낙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호주사람들은 그렇게 즐거움을 탐닉하는 게 아닌가 싶다. 스포츠도 극강의 짜릿함을 위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 바다서핑도 큰 파도타기 대회까지 열면서 호주해안을 따라 지상최대의 파도를 찾아 목숨 걸고 탄다. 그럴 때 비로소 심장이 쿵쾅거리고 살아있음이 느껴진다며 그 역동감과 생동감에 인생 살 맛이 난다고 그렇게 좋아한다. 그런데 인생의 낙을 찾는 탐닉의 방향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바로 술, 도박, 마약이 아닌가 싶다. 


요즘 유독 호주 TV에 Gambling Helpline (도박중독 상담 서비스) 공익광고가 많이 보인다. 그리고 호주뉴스에서는 경기가 침체되는 요즘 도박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자꾸 들린다. 

1인당 최고 손실 도박금액 (출처: 시드니 모닝 헤럴드)


호주 보건복지기관에 따르면 (출처: www.aihw.gov.au 2018년도 기준), 로또 티켓과 동전으로 긁는 스크래치 복권(즉석복권)의 구매율이 대략 호주국민의 35%이며 파친코 도박률은 8%이다. 심지어 호주국민이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도박으로 잃은 금액이 대략 우리 돈 20조에 해당하는 $25 billion로 1인당 손실액 대비 세계 최고를 경신했다. 술도 술이지만 호주는 요즘 도박으로 몸살을 앓는 것 같다. 


무엇보다 도박의 종류가 참 다양한 호주사회다. 

Horse racing(경마), Harness racing(마차경주), Sport betting(스포츠 베팅), Lotto(로또), Poker machines(파친코), Greyhound racing(경견), Keno(키노), Bingo(빙고), Instant scratchies(즉석복권), Casino(카지노) 등등 풍성하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이런저런 도박에 돈을 탕진하기가 참 쉬운 사회이기도 하다. 


멜번컵 데이 플레밍턴 경마장 모습

그런데 경마장과 경견장은 재미로 꼭 한번 경험해 보면 좋다. 특히 호주 멜버른에서는 매해 봄(11월)이 되면 멜번컵(Melbourne Cup Carnival)을 개최하는데 정말 볼만하다. 멋진 말들과 기수, 사회 각계각층의 유명인사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장관을 이루며 경기가 시작되면 전국구 생방송으로 그날 오후는 그야말로 동네마다 환호성과 울부짖음으로 진풍경을 자아낸다. 돌아가신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토록 말을 사랑하고 경마를 즐겨했던 영향인지 대부분의 영연방 국가 국민들은 말을 참 품위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도 말발굽 소리를 내며 터그덕터그덕 뛰는 말의 모습을 보면 아드레날린이 치솟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아닐까. 개들도 마찬가지다. 그레이하운도 종견들이 뛰는 경견모습도 경마처럼 스케일이 크진 않지만 꽤나 심장이 쿵쾅거리며 재밌다. 


내가 아는 호주 지인 중 한 명은 퇴직하고 받은 수퍼(Supperannuation)로 생활을 하고 정부에서 주는 노인연금(보름에 약 800불)은 대부분 파친코에 가서 박고 종종 그레이하운드 경견장에 가서 탕진한다. 한 달로 치면 1600불(우리 돈 130만 원가량)을 도박금액으로 날리는 셈이다. 사는 낙으로 쓰는 비용치고는 꽤 많다. 그런데 이길 때도 있어서 재밌다고 한다. 농담으로 개들 달리는 맛에 산다며 웃는다. 미국과 달리 호주는 도박으로 딴 금액에 대해서는 1%도 세금을 떼가지 않는 게 원칙이다. 100% 순이익인 셈이다. 그래서 운이 좋아 돈을 따면 안 그래도 세금을 많이 내는 사회여서 불만인데 순전히 내 돈이 생겨 재미가 더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호주에는 ‘포키(Pokies)’라고 부르는 파친코가 동네 클럽마다 있는데 포커머신(poker machine)의 줄임말인 포키는 우리가 파친코 기계를 ‘빠찡꼬’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클럽(Club)이라고 하는 곳은 호주에서 주로 파친코와 레스토랑과 바를 합쳐놓은 개념으로 사회의 각 단체 (스포츠, 군인협회 등)에서 리그를 만들어 차려놓은 클럽들이 대부분이다. (예: footy club(럭비클럽), RSL club(제대군인클럽), yacht club(요트클럽) 등등). 누구나 연간 10불 안팎의 회원가입비를 내고 클럽 회원(18세 이상)이 되면 파친코부터 레스토랑 음식, 바에서 파는 각종 주류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클럽이 파친코와 술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한 과세는 호주 국세청을 배부르게 한다. 그래서 정부도 어느 정도의 제한을 둘 뿐 딱히 제재를 하지 않는 눈치다. 


솔직히 친목도모를 위한 오락으로 한두 시간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즐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 호주의 많은 도박꾼들은 하루종일 끼니도 거르며 파친코 앞에 앉아 한방을 노리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파친코 기계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호주 한인촌에도 알게 모르게 꽤 많은 한국사람들이 파친코를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말은 서로 안 하지만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이 어느 사회나 있기 마련이다. 


복지가 좋아 살기가 좋다 보니 사람들이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 곧잘 우울감에 빠지고 헤어 나오지 못해 병이 되어 가장 먼저 술을 찾는다. 그러다가 도박에 손을 대고 더 심하면 마약에 중독된다. 복지사회가 낳은 암덩어리이자 어둠 같은 현상이다. 탈조선을 하고 살아가는 이민자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어둠이자 중독현상이다. 특히 이민을 오고 삼사십 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다 일구어 놓은 노년층인 1세대들이 많은 경우 도박에 빠진다. 오스트레일리아 드림을 꿈꾸며 젊었을 때 생존투쟁을 하다시피 피땀 흘려 일구어 놓고 자식들은 2세가 되어 호주인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나면 정작 삶의 낙을 잃어 동네 클럽에서 파친코에 빠져 헤매시는 분들이 꽤 많다. 혹은 탭(TAB)이라고 부르는 경마, 경견 등의 도박권이나 마권을 판매하는 곳에 맥주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있기도 한다. 


참고로 호주 전역에는 TAB(Totalisator Agency Board)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정부가 독점권을 가지고 운영해 오던 마권판매소였다. 지금의 탭(TAB)은 민영화가 되어 운영되고 있고, 동네 시티나 타운마다 혹은 클럽 내부에도 TAB이라고 적힌 곳을 가면 스크린에 경마나 경견, 럭비 등의 스포츠 베팅 화면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맥주와 주전부리를 팔기도 하며 대부분 50대 이상 호주남자들이 집처럼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고 정부수당에만 의존하려는 복지병을 넘어 한방을 노리고 요행을 바라는 대박꿈병에 걸린 호주사회… 어둡다. 그 어둠이 탈조선을 하고 열심히 살아온 이민자들에게도 드리워진다. 캄캄하다. 단순하고 변화가 없는 안정된 삶이 너무 단조로워 우울해지는 사회…그 우울병이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사회… 칠흑 같은 밤처럼 어두운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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