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조선 기회비용 2
불편한 의료시스템에 이은 호주사회의 또 다른 어둠… 고액의 범칙금이다.
복지국가에 살면서 힘든 점을 꼽으라면 대개 높은 세율을 꼬집는다. 그런데 사실 호주사회의 어둠을 숯처럼 시꺼멓게 만드는 건 세금 폭탄이 아니라 벌금 폭탄이다.
호주정부는 납세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자에게 막대한 양의 범칙금을 부과한다. 소위 벌금 딱지라고 부르는 범칙금 고지서(Penalty Notice)가 집으로 날아오는데 명시해 놓은 기간 안에 벌금을 갚지 못하면 벌금령(The Fines Act) 위반으로 과태료 및 연체료가 더해져 금액이 점점 불어난다. 그래서 대부분의 호주사람들은 고액의 범칙금일 경우, 한 달에 한번 혹은 보름에 한번 지불가능한 소정의 금액을 다 갚을 때까지 자동이체 시켜놓는다.
실제로 주변 호주 지인들을 보면 세금 폭탄을 싫어하는 건 매 한 가지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안 내려고 하거나, 술수를 쓰거나 하지 않고 오랜 기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갚아 나간다. 왜냐하면 막대한 양의 벌금뿐만 아니라 종종 형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하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라 법이 그렇다. 호주사회는 철저한 법치국가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정의로운 신념을 바탕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복지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국가이다. 그런데 건강한 복지국가라는 찬란한 빛 이면에 드리워진 어둠은 다른 게 아니라 법치의 힘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막대한 금액의 벌금, 그놈의 돈이 뭐라고, 돈 때문에 비루해지는 사회, 어둡고 우울하다.
예를 들어 과속의 경우, 현행기준 11km/h 이하 287불, 11km 이상 20km/h이하 431불, 20km/h 이상 30km/h이하 646불, 30km/h이상 40km/h이하 1078불 이런 식이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리고 호주 OSR(Office of State Revenue: 일종의 세무청)이 아닌 법원(court)에서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올 경우 금액은 2000불, 3000불 단위로 엄청나다.
네 식구 중 한 두 명이 각각 300불가량의 범칙금 고지서를 받았다면 그 달은 약 600불가량의 생활비가 줄어든다. 쪼들리는 월 생활비로 식구들은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여느 가정이나 다름없이 다툼이 번진다. 고액의 범칙금으로 벌어지는 우울한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받았던 범칙금 고지서 중 가장 많았던 건 속도위반과 주차위반 벌금 딱지다. 과속이 아니라 고속도로 규정속도 100km/h보다 늦게 달려서 받은 벌금 300불, 사는 게 정신없던 시절 자동차 보험 만기일 놓치고 주차했다가 보험등록차량이 아닌 관계로 받은 벌금 700불, 주차시간 10분 오버해서 받은 벌금 200불가량, 신호위반으로 받은 벌금 200불, 운전 중 휴대폰 사용으로 받은 벌금 400불, 방학기간인줄 잘못 알고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 규정속도 40km/h 위반으로 받은 벌금 200불, 그 외 카페사업 중 알바생의 유통기한 표기 잘못으로 받은 1000불가량의 위생불량 과태료, 사업소득 세금 연체로 호주정부에서 고용한 채무업체(일명 the third party)에서 받은 과태료 10,000불, 아웃백 횡단여행을 하는데 북호주에서 퀸즐랜드 주로 넘어온 줄도 모르고 북호주 고속도로 규정속도인 130km/h로 달리다가 퀸즐랜드 주 경찰한테 걸려 받은 벌금 350불 등등 살면서 토해낸 범칙금들만 모아도 소형차 한 대 값이다.
처음에는 열받고 짜증이 나서 경찰한테 몰라서 그랬다고 따지기도 했었다. 그 당시 호주경찰이 나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뱅뱅 맴돈다. “Ignorance of the law is no excuse, ma’am.” (법을 모르는 게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탕!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사회의 규범인 ‘법과 절차(law and order)에 대한 나의 무지로 인한 벌금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모르는 게 유죄인 호주사회다. 법과 절차를 알아야 하는 것 역시 모범시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인 사회이다. 그렇지만 어둡고 우울한 구석임에 틀림없다. 특히 문화와 언어가 서툰 다민족 이민자는? 그리고 교육의 기회가 적어 배움이 모자란 블루칼라 직군 종사자는? 아는 만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모르는 만큼 법의 제재를 받는다? 조금은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렇게 호주 경찰들은 범법행위를 저지른 시민들을 암묵적 강압으로 제재를 하는 걸까? 무고한 시민이 아니라 무지한 시민을 상대로 어떠한 설득도 통하지 않을 터이니 그저 고액의 범칙금 고지서를 발급하는 수 밖에는 없는 걸까? 다시는 위법행동을 저지르지 않도록 제도하는 방식이 돈이라는 자본과 연결되어 일종의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우울하다.
복지사회를 유지해야 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어쩔 수 없는 법치방식인 걸까?
어쩔 수 없다면 법을 준수하는 것만이 최선책이리라. 모르는 게 유죄인 사회에서 고액의 범칙금 고지서를 받지 않으려면 무조건 잘 알아야 한다. 호주 정부가 규정해 놓은 벌금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출처: www.lawaccess.nsw.gov.au )
Traffic offences (교통법규 위반) – 음주운전, 과속, 운전 중 휴대폰 사용, 안전벨트 미착용, 좌∙우회전 시 방향지시등 무사용, 미등록 차량 운전, 신호위반, 교차로 반경 10m 내에 정지 혹은 주차 등
Public transport offences (대중교통법 위반) – 무임승차, 좌석에 발을 올려놓는 경우, 쓰레기 투척, 흡연, 기물파손 등
Local council fines (지역의회벌금) – 주차위반, 애완동물 오물/배설물 미처리, 공공수도 과사용, 공공건물파손, 쓰레기 무단투척 및 환경오염, 애완동물 미등록, 계속적으로 짖는 개를 데리고 다닐 경우 등
Other offences (기타 위반) – 절도 및 폭행 등의 경범죄, 무허가 낚시, 식품위생법 위반 등
Non-payment of a toll notice (통행료 미지불) -호주 고속도로 통행료 미지급 시 행정료를 포함한 범칙금이 부과되는 게 통상관례다.
이런저런 종류의 다양한 벌금들은 거둬들인 호주정부는 OSR(Office of State Revenue: 일종의 세무청)이라고 하는 곳에서 복지예산 등의 정부살림 비용으로 사용한다. 좋은 순환 구조이다. 그런데 재밌었던 일이 있었다. 코로나 봉쇄기간 동안 호주정부가 발행한 벌금의 총액이 연간 3300만 불이 넘어갔었다. 정말 어이없는 경우들도 부지기수였다. 2인 이상 집합금지 규정을 어겨서 받은 벌금, 1.5m 사회적 거리 지키지 않아서 받은 벌금, 1인쇼핑을 어겨서 받은 벌금 등등 벌금들이 난무했었다. 코로나가 정상화되면서 수백 건들이 대법원을 통해 무효라고 판결이 나 이미 지불한 벌금을 되돌려 받기도 했다.
사실 호주가 건강한 복지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건 사회정의 구현을 할 수 있는 법의 힘과 기능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동의한다. 건강한 복지국이 찬란한 복지의 빛을 비추려면 공정성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기에… 그렇지만 사회정의 구현의 기능을 하는 법이 자본이라는 힘과 결탁되면서 착하고 어느 무지한 개인에게는 비루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순간 우울해진다. 돈 때문에…이 망할 놈의 돈 때문에… 돈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면 정말이지 우울하다.
그래서일까?
호주사람들은 푸른 제복의 경찰을 참 무서워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정직하게 법을 꼭 지키려고 한다. 고액의 범칙금 때문에 나 자신이 혹은 내 가족이 비루해지는 꼴을 보기 싫어서다. 살면서 겪기 싫은 감정이다. 이쯤 되면 법이 무서운 건지 돈이 무서운 건지 알 길이 없는 어두운 호주사회다.
덧 1. 참고로 호주 도로교통법 위반은 벌금뿐만 아니라 벌점을 매긴다. 일반운전자는 연간 13점이 주어지는데 (버스, 택시, 트럭 등 전문 운전직 종사자는 14점), 예를 들어 과속으로 마이너스 2점 벌점을 받으면 12점에서 2점이 마이너스된 10점만 남게 된다. 그리고 감점된 벌점은 약 3년이 넘어야 복구가 된다. 12점이 다 사라지면 그야말로 면허정지가 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등 공휴일은 double demerit (벌점 두 배)가 적용돼 2점 벌점을 받았다면 마이너스 4점이 감점된다. 개인적으로 6점까지 벌점 감점을 받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