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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용 Sep 08. 2020

척추 시술의 본질

시술하고 싶죠? 그렇지만 조심하세요! -수술 대 시술

척추 시술은 척추수술과 달리 조직을 적극적으로 제거하거나 임플란트 물질을 삽입하는 조작은 하지 않는다. 척추에 바늘 또는 카테터 등을 삽입하여 약물을 주입하거나 유착을 박리하거나 액체 등의 물질을 흡인하는 등의 일련의 치료 과정을 척추 시술이라고 말한다. 


통증 클리닉에서 시행하는 주사요법도 넓은 의미의 시술에 포함되나, 이 글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 주사요법과 시술을 분리해서 언급한다. 거의 대부분의 시술은 피부 절개 없이 경피적으로 이루어지며 영상학적으로 해부학적인 구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협의의 척추 시술의 공통점은 1) 시행하기 쉽다, 2) 대부분 비급여 항목이다. 그렇다면 효과마저 좋다면 이 얼마나 매력적인 치료법인가! 시술의 본질은 디스크병이 있거나 협착증이 있는 부위에 카테터 또는 얇은 관을 삽입하여 유착을 박리하고 약을 주입하고 또는 고주파 열을 가해 디스크를 줄이는 작용을 하는 것에 있다. 


과연 이러한 치료법들이 디스크병과 협착증에 일관성 있게 효과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다. 엄격한 적응증이 존재하는 것이다. 언제 효과가 있을까? 첫째, 급성 디스크병에서 시술을 통해서 자연소실을 돕는 일을 한다. 둘째, 비교적 초기 협착증 또는 경미한 협착증에서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치료를 권하고 실제 많이 시행하게 되는 걸까? 

일단,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다리가 저려서 검사를 해보니 허리 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주사요법을 했더니 효과가 있었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다시 저림 증상이 왔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가보았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아, 척추수술을 해야 한다고? 시간도 없고, 척추는 함부로 칼대는 게 아니라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용하다고 하는 (또는 광고를 보고)  그 병원에 찾아가게 된다. 근데, 이 의사는 친절한 데다가 내 걱정에 공감까지 해주네. 마음에 들어! 더구나 제시하는 치료법은 10분 남짓한 시술이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마음에 들어 그래 좋아질 거야 하고 시술을 하게 된다. 결과야 상관없이…

그리고 의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대학병원의 유명하신 (?) 교수님 입장에서 보면, 너무 환자가 많이 밀려있어 그런데 앞에 있는 환자의 검사 결과를 보니 명백하게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야. 병명을 말해주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어. 근데 환자가 도무지 이해를 못해. 더구나 수술해야 한다는 상황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거야. 나름 비교적 친절하게 설명하고 수술 고려하시라고 하고 약 처방 후 돌려보내. 

잘 나가는 개원가 원장님이나 봉직의 입장에서 보자. 어느 날 협착증 환자가 왔어. 대학병원에서 다짜고짜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서 왔다고 해. 속으로는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환자에게 친절해야 하고 공감해 줘야 해. 더구나 수술하라고 하면 다른 병원으로 가겠지. 그럼 안되지. 자 일단 돈 되는 시술 먼저 해보자. 물론 시술로 안되면 추후에 수술 고려하면 되지. 이것도 미리 말해두자. 이 환자를 놓치면 안 돼. 시술로도 좋아지는 경우도 많았잖아 더구나 수술은 위험성이 높잖아 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환자의 니즈와 의사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척추 시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니 남용되는 것이다. 그럼, 왜 척추 시술하는 병원에 환자들이 끊임없이 방문하고 치료하는 것일까? 실상을 따지고 보면 환자들은 비싼 주사치료를 하는 것이다. 즉, 시술을 권유받는 많은 수의 환자는 쉬고 약 복용하면 낫는 급성기 디스크 환자 거이거나, 일반적인 주사요법을 잘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는 경미한 협착증 환자인 것이다. 그 많은 척추 시술 환자 중 정말 그 시술의 적응증이 되는 환자의 비율은 단언컨대, 10% 남짓일 것이다. 

환자들에게는 디스크병은 디스크 병일뿐이다. 2주만 안정 취하면 자연 치유되는 급성기 디스크병도 디스크병이고, 응급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심한 디스크병도 디스크병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는 디스크병을 간단한 시술로 완치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왜냐하면 그 정도나 병기에 상관없이 디스크병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협착증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경미한 정도의 대부분의 초기 협착증도 협착증이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의 말기 협착증도 협착증이다. 의사들은 특히 시술을 주 무기로 삼는 의사들은 가벼운 협착증을 침소봉대해서 엄청난 치료를 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척추 시술로 디스크병과 협착증을 근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실은 사실 시술을 주 무기로 하는 의사들도 잘 알고 있다 (모르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니즈와 본인의 실적을 위해서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필자도 전문병원에서 근무할 때 그러한 자세를 갖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디스크병과 협착증이 다르고 같은 디스크, 같은 협착증 내에서도 그 정도와 병기에 따라 치료법이 다른 것이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평가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치료방침을 정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대이다. 주사로 고칠 병을 시술로 고치지 말고, 수술로 고칠 병을 시술로 낭비하지 말자. 시술이 만능이 아니다. 시술이 필요한 상태는 생각보다 적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즐겁게 시술을 권할 때는 일단 신중하자.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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