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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르녹 Sep 04. 2024

[짧은 픽션] - 부둣가의 절름발이

   



루벤 다이 마을, 햄프 루크셔 씨가 운영하는 정비소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참전 중 폭탄에 맞아 두 다리를 잃은 탓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이 바로 자동차 정비였다.

하루 많은 양의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였다.

엔진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차리는 정도였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어머니는 1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

가해자는 공교롭게도 루크셔 씨가 정비를 막 마친 트럭의 운전기사였다.

사고 직후 경찰 조사에서 경찰은 운전기사가 심각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것을 밝혀냈다.

그 역시도 루크셔 씨와 같은 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용사였다.


그리하여 루크셔 씨의 장남, 어린 꼬마 피터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매일 시내로 나가야 했다.

빵이며 우유며 하는 식량 사 오는 일을 장남인 그가 도맡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 홀로 시내를 도는 것이 못마땅했다.

동생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모든 걸 떠맡기는 아버지를 가끔은 미워하기도 했다.


피터가 밖을 떠돌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는 집에 있는 시간이 싫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다음날 먹을 식량을 한 손에 들고 매일 홀로 부둣가를 찾았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도 없었던 그는 부둣가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때웠다.

고요히 부딪히는 파도가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괴상한 일을 목격했다.


적어도 그가 사는 동네, 루벤 다이에는 그 부둣가를 찾는 사람을 여태껏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그곳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넓은 어깨와 키는 평균 이상의 훤칠한 신장 그리고 짧은 머리를 한 남성이었다.

그는 상의를 탈의하고 바지만 입은 채 저 멀리 수평선 어딘가를 응시하는듯했다.


피터는 그 장소를 누군가가 알아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공간을 일부 빼앗긴 듯한 이상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는 말없이 그의 뒤에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남자는 부둣가로 향하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고개는 45도 치켜세워 하늘을 향하고 두 손은 합장을 한 듯 앞을 향해있었다.

올곧은 척추선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뻗어있었고 두 발 역시 가지런히 모아진 상태였다.

피터의 눈에 그의 행동은 마치 다이빙을 하기 위한 준비 자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피터의 생각과 달리 올곧은 몸을 돌려 피터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피터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피터는 그와 눈이 마주치며 당황했다.


"..."


그 남자는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는 바닥에 놓인 옷을 주워 입고

피터가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걸었기 때문이다.

피터는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아...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몰래 지켜보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피터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 사는 꼬마로구나." 


남자가 말했다.


"네, 맞아요. 아저씨는요?" 


피터가 말했다.


"나는 오랜만에 잠시 들린 것뿐이야."


"이곳을 아세요?"


"그럼. 알고 말고."


피터는 남자에게 되물었다.


"어떻게요?"


남자는 피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힘겹게 몸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고 대답했다.


" 믿기지 않겠지만, 이곳은 전쟁터였어. 수많은 군인들이 총을 쏘아대고 싸우며 서로를 죽이는 전쟁터 말이야. 5년간 이어진 아주 끔찍한 전쟁이었지. 그래서 알아."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 수많은 군인들 중 한 명이 나였거든."


피터는 순간 아버지를 떠올렸다.

지금보다 아주 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전쟁은 정말 나쁜 것 같아요."


피터가 말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 모든 것을 비극으로 만들어 파괴시켜버리니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기기 마련이야. 도대체 그 권력이 뭐라고..."


"궁금한 게 있어요, 아저씨."


"응, 말해보렴."


"아까, 저 부둣가 끝에서는 그럼 뭘 하고 계셨던 거예요?"


"기도. 나와 같이 싸우다 죽은 수많은 전우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

15년 전 그 당시 나를 이곳에서 구해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는 짧은 기도."


"구해준 사람...?"


남자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를 대신해 폭탄을 온몸으로 막아준 사람이 있었어. 덕분에 나는 이렇게 두 발로 잘 걸어 다닐 수 있게 됐지만, 그 사람은 두 다리를 잃었거든. 우연히 이 마을에 산다는 말을 듣게 됐고, 바로 찾아온 거야. 어떻게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냐마는, 같은 상처를 품고 함께 살아간다는 건 또 다른 형태의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 결국 어떤 방식으로 묻어두는가에 달려있을 뿐, 너무 큰 상처는 삶과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


절름발이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들 사이로 노을의 그을음이 새겨지고 있었다.

흩어지는 목소리로 남자는 피터에게 말했다.


"햄프 루크셔, 그분의 성함이야. 혹시 알고 있니, 꼬마야?"


피터는 한동안 절름발이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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