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ver Young Oct 29. 2024

결혼 전 이야기

엄마와 딸

 우리 엄마는 나와 얼굴이 몹시 닮았다. 외가 할아버지들은 가끔 나를 보면서 엄마 이름을 부르시곤 했는데, 엄마 어릴 때 사진을 보면 나의 모습을 복사한 것처럼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는 외모 외에는 대부분이 정 반대인 모녀였다. 내가 활달하고 외부 활동을 즐기는 반면에 엄마는 집에서 조용히 공부하시는 것을 즐겼다. 엄마가 어느 정도로 공부를 하셨냐면, 내가 고3 시절에 수능 준비를 도와주신다고 수학의 정석을 대략 3번 정도는 마스터하셨다. 뿐만 아니라 수능 영어는 만점에 가까웠고 수리 영역까지도 문제없이 풀어버리는 엄마여서 나는 늘 엄마를 우러러보았다. (70이 머지않으신 요즘도 가끔 자막 없이 영어 영상을 보신다.) 완벽을 추구하고 정형화된 틀에서 생활하시는 분이라 그 기준을 맞추기 버거웠던 나는 꾸역꾸역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과거에 비해 많이 누그러진 엄마였지만, 전에 본 사람들과는 다른 스타일의 남자여서 엄마는 속으로 놀랐다. 주로 마르거나 운동으로 다져지고 키가 컸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는 체격이 컸고 둥글한 인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게 같은 질문을 한 100번은 물어보셨다. '너 진짜로 이 사람이 좋은 거야? 그간 너의 취향과 너무 다른데?' 사실 이 질문은 주변 지인들에게도 몇 번이나 들었던 질문이었어서 또다시 듣기도 싫었던 질문이었다. 아. 물론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그는 확 끌리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만날 수록 따듯하고 배려 깊고 귀여운 남자였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나니 외모는 노력으로 바꿀 수 있으나 내면은 죽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멋진 이 사람에게 더 애정이 갔다. 그러나 저 질문을 시작으로 엄마의 모든 관심이 그에게 초집중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집에서 마음 고생하느라 노이로제에 걸릴 판이었다. 왠지 엄마에게 그는 자신을 꼭 닮은 딸을 빼앗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내가 결혼 후에는 고생하지 않기를 누구보다 바라셨고, 특히 어린 시절 사고로 손이 좀 불편했기 때문에 아픈 딸의 손을 대신하여 일할 이모님을 쓸 수 있는 그런 삶이 가능하길 바라셨다. 아마 엄마도 쉽게 이루기 어려운 이상적인 모습인 걸 아셨을 테지만, 늘 겨울이면 통증이 심해지는 딸의 손을 만지고 또 만지며 눈물짓던 '엄마'였기에 그런 모습을 바라셨으리라.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에게 크게 대든 적도 없었고 서로 부아가 치미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결국에 나는 엄마의 말을 따르곤 했다. 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제대로 독립과 동시에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마당에 이전처럼 행동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마음에 내키지도 않았다. 언제까지 네~ 대답하는 딸의 모습으로 살 수 없는 노릇이고, 엄마의 마음에 온전히 찰만한 남자는 현실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사실 이미 과거에 지나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혼이고 뭐고 엄마에게도 이 남자에게도 상처만 주겠구나 싶어서 나는 중간에서 정말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내가 그의 곁에서 막아서는 자세를 취하자 엄마는 몹시 섭섭해하셨다. 어떤 날은 애틋하게 나와 함께 혼수 물품을 고르면서 꼭 붙어다니다가 도 또 어떤 날은 서로 날을 세우면서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으나 꽤나 험한 분위기의 시간도 보냈다. 아마 이 남자도 이러한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을 터. 그래서 초반에 특히 엄마와의 만남에서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본인도 속이 상하기도 했을 것이고, 나를 예뻐해 주시고 환대해 주시는 본인의 부모님에 비해 다소 차가운 나의 부모님을 향해 섭섭한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데이트 이후에 그의 손에는 우리 부모님께 드릴 디저트가 들려있었다. 정말 반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멋진 성품의 남자였다. 이 남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엄마에 대한 죄송함, 때로는 원망이 뒤섞인 시간이었고 이때의 마음고생으로 나는 살이 신나게 빠져서 44kg는 숫자를 찍고 만다. 결혼 전. 엄마와 나는 이처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떨어지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했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참 묘하다. 닮은 듯 안 닮은 듯. 친한 듯 하지만 세상 어려운, 고맙기도 안쓰럽기도 미안하기도 한 그런 마음이 떠오르는 관계. 결혼을 하고 난 뒤에 나는 그토록 이해하기 어려웠던 우리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가 얼마나 강인한 존재였고, 우리 가정을 지금의 형태로 이끌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셨는지. 나의 기억 속 엄마는 늘 책상 앞에서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계셨다. 정적이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시지도 않고,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처럼 '여유 넘치는' 생활이 부러웠다. 그런데 내가 집안일을 해보니 이건 해도 해도 할 일이 자꾸만 어디선가 샘솟기만 하고 끝나지가 않는 일이었다. 그뿐이랴. 학원 하나 보내지 않고 두 딸을 모두 본인이 직접 가르치셨으며 게다가 시댁 일에 아버지까지 챙겼던 엄마는 대체 얼마나 치열하게 사신 것일까. 바로 얼마 전에도 친정에 갔다. 이제 엄마도 나도 편안하게 살림 이야기나 서로 평소에 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는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엄마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내가 겪었던 그 힘겨웠던 몇 개월은 우리뿐만 아니라 그 모든 딸들이 한 번쯤은 겪을 열병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열병이 지나고 나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더 끈끈하고 더 애틋하고 더 마음이 가는 그런 엄마와 딸이 될 것이다. 

이전 07화 결혼 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