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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Oct 31. 2024

결혼식 당일

드디어 끝나는 5개월 여정


 우리 결혼식 당일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저 도와주시는 이모님 손에 이끌리고 귀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행동했던 기억뿐이다. 아침 새벽부터 샵으로 향할 때도 내가 오늘 결혼을 하고 이젠 부모님 집이 아닌 다른 집으로 가서 산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머리와 메이크업 대기 때부터 나의 이름은 '신부님'이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또 다른 수십 명의 신부님들이 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칸막이라도 있을까 하던 나의 예상과 달리 그곳은 그냥 뻥 뚫린 공간에 '오늘의 신부'라는 제품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내는 느낌이었다. 머리에 스프레이가 뿌려지고 몽롱한 상태로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메이크업을 받고 나니 제법 그간 보아왔던 신부 같았다. 드레스를 입고 마지막 마무리 단계를 거치는데, 그때 우리 모습을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하는 후회를 지금도 한다. 내 주변 신부들은 이미 스냅 작가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다들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아름답게 변신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면, 나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단 한 가지만 존재했다.


바로 축가다!


 본래 결혼식을 간절히 바란 것도 아니고, 드레스에 대한 로망도 없었고, 정 결혼식을 한다면 꼭 교회에서 하고 싶었던 나였다. 그러나 이런저런 타협 끝에 일반 예식을 하는지라  단 하나라도 내가 원하는 걸 해보고 싶었다. 그냥 팔짱을 낀 채 노래를 듣고 손뼉 치는 신부보다는 내가 직접 부르고 신랑에게 박수받는 모습이 더 의미 있어 보였다.      그래서 예식 한 달 전부터 나는 축가팀과 짜고 연습을 시작했다. 이 남자에게는 당연 비밀로 했고 연습을 돕기로 한 친구 하나를 제외하고 가족들에게까지 비밀로 하였다.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녹음파일을 듣고 또 들으며 연습했고,  드레스를 입고 마무리를 하는 그 순간조차도 내 파트를 다시금 대뇌이느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예식장은 몹시 붐볐고, 나는 도착과 동시에 사진작가분과 한 몸이 되었다. 수없이 터지는 셔터소리와 하객들의 인사말에 답하면서 웃고 또 웃었다. 오랜 친구들부터 거의 십여 년 만에 만나는 동기들, 직장 동료들까지 보고 나니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다들 부모님과 눈 마주치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는 예상외로 굉장히 의연하셨다. 반면,  아버지는 생각이 많아 보이셨고 입장 직전 내 손을 잡으실 때 늘 따듯하던 아버지의 손은 긴장으로 서늘했다. 예식 시작까지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시작 3분 전을 알리는 안내도 듣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제 드디어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갈 시간.


 사람들이 그랬다. 그렇게 시종일관 활짝 웃으면서 입장하는 신부 처음 봤다고. 우리 친척들은 얘가 나이를 먹더니 그 정도로 결혼이 간절했나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사진을 보면 정말 나는 환하다 못해 입이 찢어져라 미소 짓고 있다. 분명 나는 결혼식을 하는 그 순간 기분이 좋았다. 5개월간 지겹도록 준비한 이 이벤트가 마침내 끝이 난다니 결혼 준비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 자유가 될 생각에 더 웃었다. 신부가 이렇게 좋아라 하고 있을 때 그녀의 평생 반려자는 긴장을 너무 한 나머지 입장하는 영상을 보면 마치 삐걱삐걱 관절마다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우리 아버지와 포옹을 하기보다 거의 폭 안겨버리는 모습이라 나중에 엄마랑 사진을 보고 한참 웃었다. 주례사가 시작됐고 내게 그 의미는 즉 내가 축가 부를 순서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듀엣을 해 주실 가수 분과 눈으로 표시를 하고 깊이 숨을 몰아쉬었다. 결혼식이 부모님 행사라고는 하나 정말 온전히 오로지 우리 둘만의 순간을 꼭 만들고 싶어서 남몰래 꾸민 계획. '이제 축가가 있겠습니다.' 안내가 나오고 심장이 터질 듯 쿵쾅 거렸다.


 내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 신랑은 어리둥절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때는 주변이 어땠는지 기억이 없다. 난 오로지 남편이 되는 한 남자의 눈빛과 표정만을 바라보면서 둘 만의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기 때문이다. 그날 새벽부터 준비하느라 정작 그를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는데 내게 마이크가 허락된 순간, 첫 만남부터의 순간이 영화처럼 지나가고 그제야 턱시도를 입고 나만을 바라보는 이 사람이 제대로 보였다. 이제는 애인이 아닌 남편으로서의 그가 보인다.


 결혼식의 본질은 서로 다른 삶을 살던 남녀가 공식적으로 앞으로의 삶을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는 자리이다. 필요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막상 해보니 예식을 하고 안 하고의 마음 가짐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부모님에게서부터 남편에게로 걸어 나가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며, 더 나아가 하객들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는 등 이 모든 단계를 내 발로 하면서 막연하기만 했던 '아내'라는 단어가 마음에 새겨진다. 더불어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묘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손을 맞잡고 입을 맞춘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그의 아내로서, 또 한 여자를 굳건히 책임질 그녀의 남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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