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투는 보통 또박또박 하다는 평이 많다. 아마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군에서 일을 했기에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단어를 꽤 신경 쓰면서 분명히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문제는 이 말투에 날이 서기 시작하면 한없이 직설적이고 망설임 없이 상대에게 꽂힌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들 모두 말할 때 팩트인가 아닌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사여구가 가득한 말보다는 용건만 담긴 말을 선호해서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내 말투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오히려 약점을 감추려고 이 말 저 말을 덧붙이는 것보다 차라리 사실 그대로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솔직하고 진솔한 대화라고 여겼다. 말투는 사람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충 여기까지만 보아도 내가 곡선보다는 각이 더 많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얼마나 엄격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가 잡히면 정말 치열하게 내달려서 그게 운동이든지 지금 직업에서 필수적인 영어든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반드시 할당량을 채우고 만다.
반면에 그는 말투가 부드러웠다. 짧은 한 마디라도 상대의 기분을 살펴가며 말하고, 자신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기어이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뚝뚝 묻어나게 주어와 동사 사이 무수한 형용사가 빛을 발한다. 부드러운 만큼 성격 또한 둥글다. 좋게 말하면 여유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우유부단하다고 해야 할까? 어쩔 때는 치열하지 않게 쉬엄쉬엄 행동하고, 힘들수록 더 달리기보다는 천천히 능력 안에서 걸어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다른 둘이다 보니 단연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나는 이해가 안 되는 이유를 번호까지 붙여가며 길고 긴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도 왜인지 내 마음에 거슬리는 몇 가지 주제가 대화 중 흘러나오면 나의 감정이 요동치고 그날은 종일 뾰족한 말투와 표정이 드러나버렸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술이나 담배 문제로 상대에 대한 마음을 망설임 없이 정리하곤 했던지라 역시 이번에도 비슷한 것들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이런 내가 빡빡한 나만의 틀에서 조금씩 타협을 하게 된 건 오로지 그의 노고 덕분이었다.
내가 이렇게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널뛰고 있을 때, 그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니다 싶으면 기어코 입 밖으로 끄집어내서 또박 또박 문제 분석을 하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경청해 주었고 나보다도 훨씬 빨리 본인과는 다른 나의 성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공감을 참 잘했다. 일전에 한 강사가 매체에 나와서 남녀의 대화에서 남자가 아 진짜? 만 하더라도 여자의 대화 만족도가 현저히 달라질 거라고 했는데, 정말로 그의 공감은 효력을 발휘했다. 본인의 생각이 옳다고 강조하지도 않고, 다만 나와는 어떤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인지하는지를 내게 설명했다. 대화는 늘 서로 한 발자국 양보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돌이켜보면 그는 결과적으로 나를 위해 참 많은 부분을 바꿔나갔다.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자신의 일상에 변화를 주기 위해 그는 분명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었고, 그럼에도 내게는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도, 설득하지도 않았다. 그의 이런 포용력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그때를 회상하면서 이 글을 쓸 일도 없었겠지.
결혼 준비에서 소위 스. 드. 메 계약을 하고 여기저기 발품 팔면서 시간에 쫓기듯 일생 최대의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연애 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 한 상대와 나의 차이점을 알아가고 부딪혀도 보면서 서로 포용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갖는 것이다. 나는 이 남자 덕분에 비로소 고집스러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한결같이 얼음장 같은 내 손을 소중히 잡아주는 그의 손을 바라보면서 나보다 곱절은 넓은 그 마음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