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프러포즈를 한 이후부터, 이제 우리의 목표는 '결혼식'이었다. 사실 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조금도 없었다. 단 1시간을 위해서 드레스를 빌리고 메이크업을 받고, 잘 알지도 못하는 손님들까지 인사드려야 하고 하객 입장에선 지루한 주례사와 뻔한 축가 등을 내 돈 써가면서 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필요하다면 그냥 딱 100명만 모시고 원피스같이 활동성 편한 옷을 입은 채 우리끼리 즐겁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둘 다 맏이이고 더군다나 그는 외동이었기 때문에 시부모님 측에서 는 꼭 제대로 예식장에서 식을 치르고 싶어 하셨다.
모두들 그랬다. 결혼식은 당사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을 위한 행사라고.. 나는 아닐 것이라 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차피 틀에 박힌 결혼식을 할 생각을 안 했던지라 식장에 크게 관심도 없었고, 그냥 교통 좋고 시간만 맞음 된다는 단순 명료한 조건으로 우리는 다른 곳은 가보지도 않은 채 처음 간 호텔에서 바로 계약을 했다. 식장 내부도 굳이 궁금하지 않았다. 호텔이면 아주 대충 하진 않을 테고 음식도 보통 이상은 될 것이니 까탈스럽게 이거 저거 따지지 말자고 생각했다. (물론 결혼식 당일이 코 앞일 즈음 뒤늦은 걱정을 하긴 했다.) 분명 나랑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나 혼자만의 결정만으로는 아니 되었을 이 모든 것에 동의하고 전적으로 의견에 동참하는 그가 참 고마웠다.
결혼반지를 고를 때, 하나같이 예약제라서 꽤나 골머리를 앓으며 몇 개의 브랜드를 골랐다. 왕방울만 한 다이아를 원하지도 않고 그냥 오래도록 유행 안 타고 일상복에도 어울릴만한 디자인으로만 선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자세히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우리 둘 다 처음 방문한 예물샵에서 대표님이라는 분의 설명에 홀린 듯이 고개를 무한 끄덕이다가 단숨에 계약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식장부터 예물까지 우리 둘의 선택은 뭐든 초스피드였다. 그래서인지 의견 충돌로 싸우고 말고 할 것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드레스를 고르던 날, 웬만하면 메이크업을 제대로 하고 오라는 플래너님의 말이 무색하게 내 얼굴은 화장을 했음에도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유치원 교사 12년은 내게 만성 허리 통증을 안겨주었는데 하필 드레스 투어 때 나의 요통은 절정이었다. 내 허리, 등에는 온통 부황자국이 가득해서도와주시는 이모님들이 모두 기겁했다. 내친구들은 제일 신났다던 공주놀이가 나는 고역이었다. 무거운 드레스를 입느라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온 신경이 곤두서고 허리와 좌골이 저릿저릿해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갈아입었다. 나중에는 뭐가 예쁘고 어울리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빨리 집에 가서 드러누워 쉬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드레스투어였다.
(몹시 앓고 있었던 예비 신부)
이리 대충, 빠르게 결정하는 나도 가장 심사숙고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웨딩스냅이다. 오랜 시간 남몰래 팬심으로 인스타그램으로만 보던 작가님이 있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꼭 이 분에게 우리를 부탁하고 싶었다. 오글거리는 스튜디오보다는 우리답게 자연스러운 사진이어야 오래도록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실제 3년 차인 지금도 이 스냅사진첩은 종종 바라보게 된다.) 거의 007 작전하듯 예약오픈 전 날부터 철저히 알람을 재확인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정보입력과 동시에 엔터를 눌렀다. 장마철이었고, 너무 무더운 7월로 낙찰되었지만, 왠지 시작 전부터 느낌이 좋았다. 촬영 당일은 새벽부터 거짓말처럼 비가 멎었다. 반지를 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메이크업을 받고 준비한 원피스까지 입고 나니 정말 결혼이라는 단어가 세상 가깝게 와닿았다. 샵 출발 전에 엄마 앞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서는데 왠지 모르게 벅차오르는 이 낯선 기분은 뭘까. 자타공인 딸 바보인 아버지가 나를 한참 바라보셨다. 아직도 신생아실에서 마주한 나의 얼굴이 떠오른다는 아버지 앞에 그 딸이 이제 부모님 손을 떠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서 있다. 그리고 이제 내 손을 새롭게 잡고 이끌 남자가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촬영 내내 우리는 화기애애했다. 작가님이 고맙게도 어색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셨고, 정말 내가 꿈꾸었던 우리 다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더운 날씨도, 오랜만에 힐을 신어서 아픈 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행복했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