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ver Young Oct 25. 2024

결혼 전 이야기

그의 프러포즈



프러포즈.

얘기가 나온 김에 내가 생각하는 프러포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 프러포즈는 그 의미 그대로 상대방에게 나와 평생을 함께 해달라는,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고도 정중한 제안이다. 요즘은 식장도 잡고 상견례까지 끝낸 뒤에 안정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다고 하지만, 나는 왠지 안전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받는 제안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연애 초반, 어떠한 결혼 준비 과정 없이 無 의 상태에서 용기 있는 프러포즈를 받고 싶다고 말했었다.


나의 Yes 이후, 그는 혼자 어떤 식으로 이 단순하지만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질문을 내게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요란한 것도 싫고, 화려한 것도 싫지만 진심은 듬뿍 담겨야 한다는 이 까다로운 조건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부터 그는 업무시간을 뒤로 미루고 나를 보러 온다고 했다. 굳이 이른 시간에 고작 2시간 보러 달려온다는 게 잠시 의아했으나, 전에도 이렇게 번개같이 만나는 경우가 있어서, 나는 편한 니트에 패딩을 휘릭 걸치고 맨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손을 맞잡고 들어간 카페는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몹시 조용했고, 재택근무 겸 나온 손님들만 몇 명 있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커피를 다 마실 즈음, 그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당황하여 허둥지둥했다. 정신 차려보니 그는 영화에서 남자들이 그러하듯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눈은 진지했고 따듯했고 나에 대한 마음과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긴장했는지 살짝 상기된 얼굴이었는데 그런 솔직한 모습이 참 좋았다. 그가 질문한다. [나와 결혼해 줄래요??]


 아. 잠깐 멈추고 이 아름다운 순간, 내 주변 상황이 어땠는지 간단하게 묘사해 볼까?

우리 주변 손님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다들 이어폰과 헤드셋을 끼고 하품을 하거나 멍한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 순간 그들의 눈이 번쩍했다. 다들 필사적으로 태연한 척하느라 애를 쓰며 돌아가고 싶은 고개를 온 힘을 향해 고정시키고 있었다. 주변에 울리던 타이핑소리가 일순간 멈춘 걸 보면 분명 그들은 우리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린 아르바이트생은 청소를 마무리지으려고 2층으로 왔다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나와 눈이 딱 마주치더니 총알 같은 속도로 쿵쾅쿵쾅 뛰어 내려갔다. 그 놀란 와중에도 일생에 한 번 뿐일 그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나는 짧은 몇 초동안 이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모두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특히 가장 긴장하고 있을 이 용감한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이 상황을 정돈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게 달렸다.


전혀 예상치 못 했던지라 나는 그저 소리 내어 웃었다. 남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던데 나는 세상 호쾌하게 하하 진짜? 오늘이야? 하하 웃다가 [좋아요!!] 냉큼 대답했다. 나의 손에 반지가 끼워졌다. 비록 내 손가락이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가늘어서 헐렁했지만, 사실 그런 건 내게 상관없었다. 그의 마음이 그저 고마웠고 뛸 듯이 기뻤을 뿐.. 이제 나는 자신의 큰 품에 꼭 안아주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로 공식적인 결심을 했다..


우리는 지금도 이때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는다. 그때 반지가 끼워지면서 마치 우린 서로에게 사랑의 종착지에 안착한 느낌이지 않았을지.. 사실 결혼 승낙은 전혀 새로운 국면의 사랑이 펼쳐지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이 때는 알지 못했다.

이전 05화 결혼 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