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라니, 안 보겠다니. 결론을 내리자니!!!!!] 집에 들어와서 데이트 잘했냐는 가족들의 질문에 '당연하지' 했지만, 내 마음은 심히 복잡했다. 처음에는 멍하다가 그다음엔 속이 부글부글했다가 마지막에는 앞으로 한 달이 세상 까마득했다. 그의 이 발칙하고도 예측 불가능했던 깜짝 계획은 괘씸하긴 했으나 실로 그날 밤부터 즉각 내게 효과를 보였다.아무 생각 없이 그저 헬렐레하던 연애를 하다가 처음으로 머리에 딱 두 글자가 아주 선명하게 새겨졌다. 결. 혼. 어릴 때는 뭣도 모르고 꿈꾸며 말했고, 20대 때는 사귀면 다 하는 줄 알았고, 30대가 되니 그 무게감과 책임감 때문에 차마 쉽게 입 밖으로도 내뱉지 않던 그 단어. 열심히 뺑뺑이 돌며 피했던 나도 이제는 마냥 도망칠 수 없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나를 내려주고 휭 떠난 그는 정말로 전화, 메시지 모든 걸 끊고 그야말로 코빼기도 안 보였다. 매일 아침이면 출근 중에 전화 통화하고 하루의 중간중간 메시지만 수십 회 보내던 시간이 사라져 버리니 피부에 느껴지는 공백이 더욱 컸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나의 기분은 한 없이 밑바닥을 기어 다녔다. 5살 아이들의 까르륵 웃는 소리도, 평소 같음 귀여워 어쩔 줄 모르고 마구 끌어안았을 아이들의 재롱과 애교에도 크게 감흥이 없는 채 조용한 휴대폰만 노려보았다. 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완전히 이 사람에게 익숙해지다 못해서 거의 일체화되어 있었다. 밤 잠을 설치고 하루 종일 멍하니 고민하는 나날이 지속되던 끝에 나는 어렵게 결심을 했다. 우선 부모님에게 이 사람은 완전히 오픈하기로! 그전까지 나는 가족들에게 데이트를 한다고는 했지만, 그 사람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었다. 자. 여기서 왜 부모님에게 그간 그렇게 찔끔찔끔 이야기를 흘리기만 하고 제대로 된 '애인'에 대한 주제의 대화를 피했는지 짧게 설명해 주겠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50년대 중반에 태어나신 분들이다. 전쟁 이후 한국이 정말 먹고살기 힘들고 다들 배를 곯고 학교에서는 굶는 아이들을 위해 옥수수 빵을 주었다고 하지만, 부모님의 어린 시절은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는 집안일을 해주시는 분들이 두 분 계셨고, 자동차가 있었고 차를 모는 기사님이 있었으며, 저명하다는 교수, 문학가, 법조인들은 우리 조부모님들의 절친한 지인들이셨다. 옥수수 빵 이야기보다 나는 바나나를 먹었다거나 외할머니가 오븐에 구워주신 피자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모두 명문대 출신에 여러 남매 중 막둥이로 성장하셨고 집안의 이쁨을 독차지하며 자라 셔서인지 자존감도 높고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기준이 현저히 높았다. 그래서인지 맏딸인 나에 대한 기대감이 컸고, 그 맏딸이 데려올 미래의 사위에 대한 기대 또한 크셨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나의 옛 남자친구들 중에 우리 부모님을 한 번에 통과한 사람은 없었다. 소개할 때마다 사람을 꿰뚫어 보듯이 예리한 눈으로 그들을 꼼꼼히 관찰한 뒤에 집에 돌아와서는 나를 붙들고 잔소리를 한 바탕하셨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나는 완전히 지쳐버려서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를 만나는지, 얼마나 만났는지 등의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게 내가 완전히 한 사람을 오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픈했을 때 예상되는 결과지는 두 개였다. 1. 그런 사람은 싫다. 2. 우선 데리고 와 봐라. 설령 2번으로 되었다 한들 분명 예전과 같다면 이 착한 남자는 우리 부모님께 신상이 탈탈탈 털려서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 귀가를 하게 되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날씨 좋은 어느 주말, 나는 우선 부모님과 함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았다. 커피는 향기로웠고,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고, 엄마와 아버지의 기분도 최상이었고... 그리고 나만 혼자 티 안 나게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교묘하게 끌어내면서 나는 이 어려운 말을 꺼낼 적절하고도 안전한 타이밍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그때! 부모님이 '아 근데 그 만난다는 녀석은 왜 크리스마스에 안 보고 그렇게 미리 봤어?'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자자.. 정신 바짝 차리자... 나는 잘 해낼 수 있어!!] 남몰래 호흡을 가다듬고 나는 우리 집이 교회를 다니니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예배를 보라는 배려의 차원에서 미리 본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다음 아주 슬금슬금 이 사람이 보통 만나면 내게 어떻게 해주는지, 말투가 어떤지, 직업이 어떤지에 대해서 소심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속에 있는 사진을 보여드리고 그 사진을 가만히 보던 엄마가 물으셨다. [아. 이 사람은 대학은 그래서 어딜 나왔다니? 석사는 엄마 학교라며, 그럼 대학은? 전공은?] 앗차.. 올 것이 왔구나 생각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나 또한 이 사람이 무슨 대학이고 어느 공부를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건 내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현재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하지 대학이 뭐 그리 중한가 싶어서 물어본 적이 없었다. 우물 쭈물하다가 그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 모른다고 하자 갑자기 두 분의 눈이 희번뜩해지면서 엄마는 기가 차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셨다. 어떻게 그 나이에 생각 없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기본적인 정보는 알아야 정상이 아니냐며 평온하고 고요하고 화목했던 테이블이 한순간에 찬 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했다. 잠시 타임! 을 외치고 나는 휴대폰을 집어든 다음에 동굴 속에 꽁꽁 숨어서 어디 결론을 내보시지!! 하는 이 남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느 대학 출신인지, 정확히 일하는 부서 명칭이 뭔지 등등. 하나같이 직설적이고 팩트만을 요구하는 질문이었기에 분명 대답이 느릴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연신 울려대는 문자 소리와 함께 멀리멀리 빗나갔다. 그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출신 대학, 전공, 석사 대학 및 석사 확인증, 마지막으로 현재 직장의 재직 증명과 당월 월급 내역까지 아주 야무지게도 모아서 내게 날리고 또 날렸다. 자신의 사진이 박힌 온갖 증명서들을 쿨하게 전송한 뒤에는 [나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요. 다 대답할 테니!] 이와 같이 완벽한 문장으로 마무리까지 했다. 이리 속시원하게 자기를 활짝 오픈해주니 나는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즈음 되니 조금 당황한 것은 우리 부모님 쪽이어서 휴대폰으로 딸이 보여주는 온갖 증명서에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리셨다. 이제 내가 핵심만 말하면 된다!
[나 이 사람하고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아. 없으면 허전하고 여기서 놓치면 되게 후회할 것 같거든.] (최대한 강하고 또박또박 한 목소리로!)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번의 침묵은 과거 그 어떠한 침묵보다도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사실 두 분도 이제는 나이가 드셨고, 주변 지인들 모두 며느리나 사위를 본 뒤기도 했다. 항상 누군가 결혼한다고 하면 남몰래 집에서 퇴근 후에 핑핑 놀고 있는 나이 지긋한 딸을 보며 한숨을 쉬셨을 것이고, 이제는 제발 좀 누가 데려갔으면 하던 찰나에 결혼을 하겠다고 자식이 자기 입으로 이야기를 했으니 오히려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래라~ 누가 뭐라고 했니? 네가 좋으면 하는 거지. 네가 좋다고 하는데 그럼 하는 거지.]
세상에..... 난생처음으로 첫 관문을 통과하다니... 난 진짜 나이가 들어서야 결혼 문턱이라도 닿을 운명이었던가. 이 대화를 하는 내내 또박또박 온갖 침착한 척은 다 하고 있었으나 심장은 요동을 치고 반면에 손과 발은 얼음장에다가 몸이 달달달 떨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이렇게라도 용기를 낸 보람이 있었다!
이제.. 동굴 속에 숨어 들어서 답을 기다리는 저 커다란 곰 하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