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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Oct 23. 2024

결혼 전 이야기

늦깎이에 다시 시작하는 연애의 시작


[안녕하세요 ㅇㅇ씨!]

 첫 만남 이후부터 그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나는 왠지 그 메시지가 새삼 반가워서 재고 빼고 할 것도 없이 냉큼 대답을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만남은 가슴에 불이 질러진 것도 아니었고, 내 눈에서 스파크가 번뜩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에 알아두었던 장소가 만석이라 뙤약볕 아래에서 나는 비어있는 '아무 카페'를 눈을 번뜩이며 찾아야 했고 결과적으로는 50대 아저씨들이 바글바글 했던 아주 소란스럽지만 외관은 세상 핑크 핑크한 작은 저가 브랜드 카페로 들어가야만 했다. 절대 전형적이지도 않고, 로맨틱하지도 않고 어설픔이 가득했던 첫날이었음에도, 왜 나는 자꾸만 마음이 갔을까. 첫 날이 지난 뒤, 당시에 그는 나에 대한 마음을 조심스럽지만 명확히 표현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꼭 제대로 식사를 하자! 거나, 좋은 하루를 보냈는지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 외의 꽤나 많은 말들이 연신 휴대폰으로 전송되었고 한창 정신없이 5살짜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그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답문을 했다. 원래대로였다면, 그 시끌벅적했던 만남의 장소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1시간 정도 후 박차고 일어나고도 남았고, 처음 받아 든 문자에 정중히 [제 타입은 아닙니다.]라는 핵심 주제를 갖고 짧고 확실하게 조금은 말을 돌려서 답을 하고도 남았을 나였다.  그런데 나는 확실히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그와의 메시지 대화를 몹시 즐겼고 심지어 또 무슨 내용의 메시지가 올까 기대까지 했다.

 얼마 안 가서 우리는 두 번째 만남을 가졌고 그때는 정말 제대로 된 중식 식당에서 차분히 앉아 식사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그는 전 날 술자리로 인해 몹시 속이 안 좋은 상황이었음에도 나랑 있는 시간이 좋았어서 버티고 버텼다고 했다. 점점 안색이 파리해지더니 그런 와중에도 다음을 아주 확실히 기약하며 사라지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연신 키득 웃었다. 두 번째 만남 이후 만남의 횟수가 점차 늘었다. 세 번, 네 번 , 다섯 번, 강남역에서만 보던 약속 장소는 점점 서울 곳곳, 서울 외곽까지 확장되었고 대화의 범위 또한 눈에 띄게 변화했으며, 내가 빤히 보면 쑥스러워하면서 어쩔 줄 모르거나 왠지 붉어지는 얼굴은 정말 대놓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나는 신중해져야만 했다. 또다시 무덤덤하게 연애를 시작했다가 단 칼에 이별을 고할 것 같은 느낌인지 아닌지를 머리 터지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이지 처음 연애를 하는 20살 새내기 같았고, 뭐든지 아주 진솔했기 때문에 절대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전 사람들처럼 대했다가는 왠지 파사사삭 재가 되어 버릴 듯했달까. 그만큼 내 눈에 비친 그는 마음이 착하고도 여렸다.

 여느 때처럼 약속장소로 나아가던 날, 내 가방 속에는 다음 해 달력이 들어있었다. 다음 해에도 나와 함께 해달라고 당차게 고백을 할 계획으로 씩씩하게 나갔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와의 대화가 즐거웠고, 만나면서 하는 대화는 더 좋았고, 나를 배려하고 지긋이 지켜보는 그 눈을 자꾸만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고 당장에 고백을 할 심산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그러다가 왠지 보자마자 하는 고백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까지 나는 연신 짜잔!! 관계의 결론을 지을 타이밍을 계산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운전대를 잡고 앞을 주시하던 그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보통 이 정도 만나보면 어떤 결론이 내려지는 듯한데, 혹시 긍정적이 결론이 아니더라도, 그냥 지금처럼 같이 퇴근 후 이야기 나누고 밥도 먹는 밥 친구가 된다 하더라도 나는 괜찮아요.] 대충 이런 말이었는데, 듣는 순간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분위기상 꾹 삼켜야 해다. 밥 친구라니?!! 아니 이제까지 그렇게 좋다는 표현을 있는 대로 해놓고, 무슨 밥 친구. 진짜 밥 친구 하자고 하면 정말 가는 길에서 차와 함께 먼지가 되고도 남을 듯한데 무슨 이 대범한 척인가!!!!! 이 말이 하도 기가 차서 내가 그다음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어쨌든 나는 내년에도 함께 하자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담은 달력을 선물하고 차에서 내렸고, 집에 귀가해서 나의 선물과 메시지를 확인한 그는 이제 소개팅남에서 정말 애인이 되었다. 하.. 그 나의 고백의 메시지를 읽은 그 표정을 내 눈앞에서 봤어야 하는데 그건 지금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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