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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Nov 04. 2024

결혼 생활

어색하기만 한 새 동네, 높디높은 우리 집

 평생 서울의 교육열 넘치기로 유명한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걸어가면 코엑스가 있고 한강이 펼쳐지고 아파트가 빼곡한 곳에서 살다가 결혼을 하고 처음 경기권이라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말이 경기권이지 그래도 친정까지 차로 고작 30분 안팎의 거리이니 꽤 가까운 위치이다. 이 동네는 생각보다 조용한 곳이라서 저녁이 되면 차 소리도 많이 들리지 않고 평소에 오가는 사람들도 적은 곳이라 신기했다. 


 우리 집은 저층의 오래된 아파트인데 승강기가 없어서 처음에 많이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승강기 설치가 안 되어 있을 수 있는지.. 신혼에 이 정도 살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3층 이상이 되는 건물의 꼭대기까지 오르내리기는 사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제껏 승강기가 없는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았고 워낙 허리가 좋지 않았어서 내게 계단으로 오르내리기는 평소에도 하지 않았던 것이라 계단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 처음 이곳에 살기 시작하고 1달이 되었을 때, 나는 점점 이곳에서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게 될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대체 유모차는 어떻게 오르내릴 것이며, 아기가 몸무게라도 늘어난다 치면 내가 무슨 수로 애를 안고 짐을 짊어진 채로 병원이든 어디든 급할 때 계단을 뛰어내려 간단 말인지. 우리 집에 방문한 아주 소수의 친구들은 우선 이 계단을 보고 흠칫했다. 다들 후들 후들 다리를 부여잡고 올라오면서 [너... 절대 무릎이랑 허리 사수해라.. 가뜩이나 허리랑 무릎이 안 좋은데 젊어서 다 삭겠어] 하며 내 허리를 만져주곤 했다. [운동 삼아하는 거라 생각하면 괜찮아!!] 씩씩하게 웃어넘겼지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서 뜨끔했다. 하긴, 다들 임신하면 계단 피해 다니느라 에스컬레이터나 승강기부터 이용한다는데 나는 무조건 마주해야만 하니 애기 엄마인 친구들로서는 당연히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한 번 어느 힘든 날에는 계단에서 주르륵 미끄러져서 팔이 깊이 파이고 허리 통증이 어마어마했는데 허리를 두들기면서도 집에 오가려면 다른 방도가 없는 내 모습이 왠지 슬퍼서 나는 난간을 부여잡고 낑낑 내려오다가 울어버렸다. 남편은 다들 각자 상황에 맞게 적응해서 사는 것이라고는 했으나, 내가 이렇게 계단 오르 내리다 주저 앉고 굴러서 다치고 하는 이 모든 것까지 내가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란 건가. 아님 이런 것들은 모두 내 부주의 때문인 거고 다들 문제 없이 편하게 오르내리면서 사는 건인지..정말 피가 흐르는 팔을 부여잡고 그 간의 울분이 다 터져나왔던 것 같다. 이 계단이 꽤나 익숙해진 지금도 꿈에서 나는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고 비 오는 날이면 계단에서 굴러 내려온 내 모습이 떠올라 아주 조심스럽다. 아. 나는 온전히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 척을 잘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나만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 건지, 아님 몸 건강 지켜주려는 하늘의 뜻인지 아직 우리 가족은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를 꼭 닮은 강아지 하나뿐이다. 


 사는 건물 자체가 왠지 보기만 해도 진을 빠지게 하는 곳이라 생각했던 나의 비뚤어진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변 이웃분들 덕분에 조금씩 그 중심을 바로 잡아갔다. 새댁이라고 간혹 반찬 하는 방법이나 장 보는 위치를 알려주시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항상 무슨 고기를 사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내게 메뉴만 듣고 바로 적당한 육류를 꺼내주시면서 어떻게 보관하라고 자세히 알려주시는 정육점 사장님, 채소를 추천해 주시면서 마치 엄마처럼 내 장 바구니에 좋은 채소를 골라 담아주시는 아주머님들까지, 기존에 살던 곳에서는 다들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는데 이곳은 이런 정감이 아직 존재한다. 내가 가면 늘 옆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어주시는 카페 사장님들이 있고, 내가 피곤한 얼굴로 들어서면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고 서비스로 커피를 내려주시는 마음씨 좋은 편의점 사장님들까지.. 어찌 된 일인지 이곳에 이사 와서 나는 참 좋은 인연들을 많이도 만난다. 모든 것이 좋을 수 없고, 당연히 낯선 곳에서의 적응이 편할리 없지만 정말 다행히도 나는 주변 분들 때문에 이 동네에 정을 붙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창 밖을 바라보며 [저 집은 2층 살아도 계단 안 쓰겠지.. ] 홀로 부러워하게 되는 것은 아직 온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 한 내 욕심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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