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는 요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양식을 좋아하고 디저트에 특히 진심인 내게 밥과 국이 있는 상차림은 그저 차리기 귀찮고 굳이 챙겨 먹지 않아도 될 것에 불과했다. 보통 나의 아침은 시리얼, 점심은 한식, 저녁은 계란 혹은 계란과 과일 정도로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엄마가 저녁에 밥을 해주시면 반공기 안 되는 밥에 소량의 반찬만 먹고 끝냈다. 신혼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퇴근 후 먹을 첫 식사였다. 밥솥은 있는 데 사용법을 모르고, 칼로 써는 건 어찌하는 건지, 간은 뭐.. 간에 대한 감각은 그냥 제로였다. 그렇다고 삶이 달걀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는데 다행히도 남편이 저녁을 차린단다.
남편은 20살부터 자취를 해서 무언가를 직접 차려서 먹는 것이 익숙하다고 했다. 실제로 레시피를 쓱 보더니 순식간에 양념을 하고 밥을 무려 압력솥에 안치고 메인 반찬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만들어냈다. 세상에... 꽤나무뎌 보이는 그 커다란 손으로 엄마처럼 조물 조물 간을 하는 모습은 흡사 요리명장 같다.그날부터 그는 부엌살림을 도맡아서 했다. 채소가게에서 장을 보고 요리 유튜브를 보며 깨작거리는 아내에게 밥을 해먹일지 고민했다. 매운 음식을 못 먹고, 짠 음식도 안 먹고, 해물은 알레르기가 있는 나의 까다로운 체질과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그는 본인이 좋아하는 맵고 짜고 양 푸짐한 음식들을 포기했다. 아마 우리 집에서 그가 가장 마음 놓고 먹은 매운 반찬은 김치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저녁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남편은 내가 출근하고 먹을 점심까지도 도시락으로 싸주기 시작했다. 종종 새벽 5시부터 부엌에서 탁탁탁하고 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는데, 늘 피로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그는 매일 다른 내용물이 들어간 김밥을 싸주었다. 누가 들으면 내가 엄청 말랐을 줄 아는데 내 체중은 키 160이 조금 안 되는 키에 46 정도로 지극히 정상이다.
어느 순간부터 가만히 앉아 음식을 따박따박 받아먹기만 하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조금씩 칼을 쥐고 칼질을 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내 손은 온통 베인 곳 투성이었다. 채 써는 것이 그렇게 기술을 요하는 것인 줄 몰랐다. 내가 했던 첫 요리는 아마도 단순한 된장찌개였는데, 남편은 그때 멸치국물을 내는 내 모습을 보고 흠칫했다. 멸치를 어느 정도 넣는지 몰랐던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검색도 안 하고 그야말로 멸치가루를 부어버렸다. 어쩔 때는 너무 짜고, 어쩔 때는 너무 밍밍한 나의 간을 바로잡느라 그는 내가 다했다! 를 외치면 그때부터 조심스레 부엌으로 다가가 음식마다 간을 보며 최선을 다 해 심폐소생술을 했다. 칼이 익숙해지고, 기본양념 계량을 머리로 외우는데 대략 1년 정도 걸린 듯하다. 진짜 요리를 본격적으로 많이 하게 된 계기는 [엄마 밥]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평소 시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반찬은 너무 감사했지만 내 입에 짜거나, 혹은 맛이 있어도 그 양이 많아서 결국엔 물리거나 그게 아니면 장아찌류, 고추볶음, 멸치볶음 같이 내가 평생 살면서 잘 먹지 않던 것들이었다. 냉장고를 열면 나의 냉장고라기보다는 시댁 냉장고 같은 느낌이었다. 매일 다른 집 냉장고를 열며 내 입에 맞는 것을 애써 찾는 기분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엄마 반찬이 몹시 그리웠다. 그렇다고 체력 약하신 엄마를 졸라서 반찬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이리저리 연습해 보며 내 기억 속의 집 밥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해보면서 이게 얼마나 정성을 요하는 행위이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인지 온몸으로 체득하였다. 이런 노력을 그간 깨작거리며 먹었단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다. 또 한 편으로는 한 번도 힘든 내색 없이 아내를 위해 밥을 한 남편의 정성이 고마웠다.
내가 한 가지씩 음식을 식탁에 올릴 때마다 그는 늘 감사해하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음식 한 입마다 칭찬이 우르르르 쏟아지게끔 민망할 정도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아마 이건 고도의 전략일 수도..) 식구 먹이는 게 신이 난다는 의미가 이런 거였나. 이제 저녁뿐 아니라 남편의 도시락도 열심히 챙기는 내가 되었다.
나의 상차림
집에서 밥을 먹는 단순히 에너지 섭취만을 목적으로 두지 않는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온 사람에게는 힘든 사회 속 전쟁터를 잊고 가장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고, 밥을 하는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며 식탁에 마주 앉아 그 마음을 맛보는 시간이다. 매일 앞치마를 질끈 묶고 칼을 쥐면서 식사 때 환하게 웃을 남편을 떠올려본다. 집에 들어올 때 풍기는 집밥 냄새가 힘들었던 하루를 위로해 주기를, 나의 밥 한 입이 그의 고민을 잊게 만들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