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3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나의 여동생은 나와는 성향이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데, 외향적이고 밖으로 다니기 좋아하는 나와 달리 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집에 머무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예술 쪽을 전공해서인지 어쩔 때 보면 자신만의 세계가 매우 확고해서 쉽게 그 안으로 진입하기가 어렵고 또 그 누구도 굳이 진입하려 하지 않는다.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는 편이라 이제까지 나의 친구들을 만날 때도 동생은 늘 네네~하면서 접시에 코를 박고 밥만 먹을 정도니 처음 형부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어색함은 상상 초월이었다. 둘이 처음 인사를 하게 된 자리는 상견례 자리었다. 미래의 형부뿐만이 아니라 그 사돈어른들까지 뵙는 자리이다 보니 동생은 전 날까지도 갈지 말지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식사를 하고 대화가 오가는 내내 동생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밥만 먹었다. 남편은 이제 처제가 될, 아내 될 사람보다 배로 가까이하기 어려운 내 동생을 향해 몇 마디 말을 건넸지만 아마 그때도 딱히 대화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어머니가 우리 처제 되실 분은 형부가 마음에 드려나요? 한 마디 질문을 하셨는데 동생이 '아 네 뭐..' 해서 시부모님은 그 이후로는 다른 말을 하시지 못하셨다. 남편 말에 의하면, 그날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밥 먹는 내내 처제의 정수리만 본 기억이 난다고 했다. 농담을 건네야 하나, 인사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하다 첫 만남은 끝이 났다.
결혼 이후, 종종 주말이면 친정에 들른다. 다른 남편들이 어떨지 잘 모르겠으나, 나의 남편은 종종 시간이 나면 나랑 같이 처가에 가자고 먼저 권한다. 초반에 남편과 친정에 가면, 아빠를 제외한 엄마와 동생은 늘 멀찌감치 아직은 익숙지 않은 사위이나 형부를 바라보곤 했다. 처음에는 내가 엄마 앞에서 손이라도 잡고 있으면 아주 따가운 시선이 옆에서 느껴졌다. 감히 장모 앞에서 손을 잡는다고 초반에 엄마는 나를 붙잡고 잔소리도 참 많이 했다. 그러면 그 어려운 처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남편의 까다로운 처제는 인사만 간단히 하고 우리가 집에 갈 때까지 웬만해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남편이 동생을 위해서 한참을 줄 서서 사온 베이글이나 유명한 제과점 디저트를 받고 고마워하긴 했지만 그 반응이 기대보다는 늘 뜻뜨미지근해서 그는 늘 슬픈 곰이 되어 집으로 귀가하곤 했다. 아마 남편에게 처제란 존재는 매우 낯설면서도 한 편으로는 또 다른 동생이 생긴 듯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려고 생일도 챙겨주고 카페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선물도 주는 그의 노력이 참 고마웠다.
이렇게나 어색하고 침묵까지 감도는 둘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강아지를 입양한 이후부터이다. 이후에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가 어떻게 왔고 얼마나 재밌게 지내는지는 다루어보겠다. 우리 강아지는 새하얀 스탠더드 비숑으로 대략 몸무게 7kg은 너끈히 나가는 큼직한 아이로 내 동생의 오랜 워너비 강아지였다. 늘 강아지 키우자고 노래하던 동생의 꿈을 언니가 대신 실현하고 나니 우리 부부가 강아지와 함께 등장을 하면, 생전 방에서 나오지 않던 동생은 무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기다렸다. 강아지를 끌어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하고, 우리 부부가 카페에 가자하면 당장에 곱게 단장하며 나갈 준비를 초스피드로 마치고 냉큼 따라나선다. 남편이 동생과 함께 카페에 갔을 때, 동생이 강아지를 보고 활짝 웃는 틈을 타서 말을 걸었더니 그 어떠한 어색함 하나 없이 까르륵 웃으며 대답을 해주자 도리어 남편이 깜짝 놀랐다. 그때를 시작으로 처제와 형부의 관계가 많이 좁혀졌다. 이제는 간혹 농담도 주고받고, 서로 마주하면 휴대폰만 바라보거나 먼 산을 보는 것이 아닌 정말로 마주 보면서 대화를 한다. [처제는 내가 집에 갈 때가 가장 기분 좋아 보여] 하며 시무룩했던 남편의 모습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처가가 조금씩 편해지기까지 걸린 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홀로 속으로 섭섭해하고 불편했을 남편이 조금은 편해진 듯하여 다행이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 준 것도 있겠지만, 우리 강아지가 이렇게 큰 역할을 수행할 줄은 몰랐다. 오늘도 내 안부보다는 강아지 안부를 먼저 묻는 그녀의 못 말리는 강아지 사랑. 그리고 처가에게 보내드릴 맛있는 거 뭐 없으려나 찾아보는 우리 남편의 착한 마음. 서로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맞추어 굴러가기 시작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