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편은 연애 시절부터 감성이 넘치는 사람이다. 가끔 뜬금없이 아무 특별할 것 없는 상황에서도 사랑을 고백하고, 출근해서도 중간중간 고맙다. 사랑한다 는 표현을 정말 많이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연애 초반 한없이 순딩이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 남편에게 [나는 목석같아서 표현도 없고 붙어 있는 것을 싫어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요]라고 말할 정도로 무언가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다. 고마우면 그냥 고맙다고 한 마디면 됐지 구구절절 무슨 표현이 더 필요한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되었다. 한 번 [아니요]는 변경의 여지가 없는 세상 분명한 [No]여서 말이라도~ 아니면 적어도 한 번은 더 권하는 태도를 취한 적이 드물다. 신입사원 때, 팀 분위기가 몹시 안 좋았던 찰나에 고뇌하고 있는 팀장에게 다가가 [저 오늘 반차라서 갈 시간입니다]를 말하고 당당히 회사를 나오던, 한 마디로 공감이라곤 할 줄 모르는 돌아이 신입이기도 했다. [무심하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은근히 어렵다]는 늘 타인들이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였다. 도대체 이런 사람을 우리 남편 같은 감성멘털의 소유자가 무슨 용기로 좋아하게 된 건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물론 이런 애인이었기에 속앓이도 부단히 하고 때로 섭섭함이 뚝뚝 떨어지는 슬픈 곰돌이가 되어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나의 남편은 상대방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친한 친구가 문제가 있으면 진심으로 함께 마음 아파하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돕는다. 매스컴에 나오는 강사들이 남녀 간의 대화에서 [그랬니? 어머나.. 정말? 그랬구나.] 이것만 말해도 대화가 잘 굴러간다는데 남편은 이런 말을 중간중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안다. 게다가, 이건 자랑 같지만 자타공인 아내에 대한 사랑이 흘러넘치는 남자다. 올해부터는 단 한 번도 취해서 귀가한 적이 없지만, 작년만 하더라도 어쩌다 한 번있는 회식 때 취해서 돌아오는 길이면, 자기 없이 홀로 밥을 대충 때운 아내에게 미안해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현관에서 우리 여보는 밥도 제대로 안 먹었는데.. 하며 훌쩍이고 있는 모습은 마치 만화에 나오는 테디베어 같다.아내가 밥 굶는 게 속상해서 우는 남편은 처음 봤기에 나는 대체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했었다. 남편이 울 때, 그 원인은 늘 99.9% 나였다. 아내가 열이 높아서, 아내가 슬프다고 해서, 아내가 꿈에서 나쁜 말을 해서, 아내가 장거리 지하철 출퇴근 하는 것이 미안해서 등등. 심지어 드라마를 보는데 아내로 나오는 여배우가 죽거나 위험에 빠지면, 남편은 대번에 마치 그 배우가 나라도 된 듯이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삼킨다. 내가 교사일을 하면서 애들 달래는데 도사인데 이 특기를 결혼해서 이렇게 잘 써먹을 줄이야.. 정작 자기가 힘들거나 아플 때면 내 손을 꼭 잡고 [이거면 돼! 괜찮아!] 강한 척, 씩씩한 척하는 마음 여린 우리 남편.
이런 남자와 살다 보니, 나 또한 표현이 많아진다. 도시락 뚜껑에 메시지를 붙여놓거나, 출퇴근하는 남편을 꼭 안아주거나.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던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거의 나는 남편에게 꼭 붙어있는 시간이 많다. 컴퓨터 앞에 앉은 남편 등에 붙어있으면 그는 [음.. 내 전애인은 목석같은 여자였는데..]라고 한다. 내 생각엔 그는 가끔 그전여자친구가 사뭇 그리운 듯하다. 결혼 후에 변한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아내가 자기와 시간을 오래 보낼 줄 그는 꿈에도 예상치 못 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으니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보여주고, 그 마음을 내 입으로 말하고, 또 행동으로도 나타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남편을 통해 배운다. 마음은 아끼는 것이 아니고 겉으로 표현해야 정말 상대에게 와닿는 것임을 오늘도 깨닫는다.